성장률보다 규제 비용이 먼저 갈라놓은 2026년 플랫폼 경쟁
[KtN 전성진기자]베트남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는 2024년 12월 25일부터 새 인터넷 규제 체계 안으로 들어갔다. 시행령 147호는 기존 시행령 72호와 27호를 대체·통합하며 실명 인증, 서비스 현황 보고, 불법 콘텐츠 차단, 수사 협조 의무를 디지털 플랫폼 전반에 적용했다. 베트남 OTT 시장은 2026년 성장률보다 규제 대응 비용이 먼저 플랫폼의 체력을 가르는 국면에 들어섰다.
베트남 VOD 시장 매출은 2024년 5억4,580만 달러에서 2029년 7억7,470만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7.26%로 제시됐다. OTT 시장 규모도 2025년 24억6,900만 달러에서 2034년 44억7,850만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추산됐다. 하노이와 호찌민을 중심으로 모바일 시청 습관이 정착했고, 2025년 초 인터넷 보급률은 약 78%까지 올라섰다. 넷플릭스, FPT Play, VieON, TV360, Galaxy Play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비 기반은 이미 만들어졌다.
성장 전망만 놓고 보면 베트남은 한국 콘텐츠 기업이 계속 주목할 시장이다. 도시화와 가처분 소득 증가, 스마트폰 보급, 젊은 소비층의 모바일 중심 시청 습관은 OTT 사업자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독점 오리지널 콘텐츠, 광고 없는 시청 환경, 고화질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 베트남 소비자는 과거 불법 다운로드와 무료 영상 소비에 익숙했지만, 프리미엄 콘텐츠와 편의성을 이유로 유료 구독을 선택하는 층도 늘고 있다.
시행령 147호는 성장 기대 위에 새 비용 구조를 얹었다. 베트남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현지 휴대전화 번호나 정부 공인 문서를 통한 이용자 실명 확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 베트남 내국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계 사업자 가운데 현지 6개월 평균 월간 방문자 수가 10만 명 이상이거나 현지 데이터 보관 서버 임대 서비스를 쓰는 기업은 매년 11월 25일까지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라디오·방송·전자정보국에 서비스 현황과 트래픽 지표를 보고해야 한다.
현지에 지사나 대표사무소를 둔 사업자는 불법 정보 차단 의무도 진다. 공안부 산하 사이버안보국이 수사 협조를 요구하면 24시간 안에 콘텐츠 삭제나 가입자 데이터 제출에 응해야 한다. 해외 앱스토어 사업자도 베트남 법령을 위반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당국 요청이 접수될 경우 24시간 안에 플랫폼에서 제거해야 한다. 규제 대상은 넓고, 대응 시간은 짧다.
규제 문구는 국내외 사업자에게 함께 적용되지만, 실제 비용은 플랫폼의 기반에 따라 달라진다. 비엣텔 같은 현지 통신사는 이동통신 가입자의 휴대전화 번호 데이터와 결제망을 이미 갖고 있다. 실명 인증과 가입자 관리 체계를 새로 세워야 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 반면 해외 OTT는 현지 통신 인프라와 연동되는 인증 시스템, 현지 법인 또는 대리 조직, 콘텐츠 삭제 대응 체계, 당국 보고 절차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베트남 서비스 조정은 규제 환경 변화가 이미 집행 단계에 들어갔음을 드러냈다. 2024년 12월 베트남 라디오·방송·전자정보국은 넷플릭스가 영화·드라마 배급사로 등록돼 있다는 점을 들어 TV 프로그램과 리얼리티 쇼 제공 중단을 요구했다. 넷플릭스는 ‘피지컬: 100’, ‘솔로지옥’, ‘투핫’ 등 비각본 콘텐츠를 같은 달 23일부터 베트남 서비스에서 제외했다. 시행령 147호 전면 발효를 앞두고 외국계 플랫폼의 서비스 범위가 이미 조정된 셈이다.
베트남 로컬 플랫폼은 규제 전환을 비용 부담이 아니라 경쟁 우위로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TV360은 비엣텔의 이동통신망과 결합한 데이터 무과금 요금제를 앞세워 월간 활성 이용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FPT Play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며 프리미엄 구독자층을 묶고 있다. VieON은 ‘복면가왕 베트남’, ‘1박 2일 베트남’ 같은 현지화 예능과 오리지널 콘텐츠로 자국 시청자층을 다지고 있다.
글로벌 OTT가 콘텐츠 라이브러리로 승부하던 시장은 통신망, 요금제, 실명 인증, 결제 데이터, 현지 규제 대응 능력이 함께 작동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TV360이나 FPT Play 이용자는 통신요금 결합과 데이터 혜택을 통해 체감 비용을 낮출 수 있다. 해외 플랫폼 이용자는 월 구독료 외에 모바일 데이터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표면상 요금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이용자가 실제로 느끼는 비용은 달라진다.
유료 전환도 여전히 미완의 영역이다. 베트남 이용자의 74%는 무료 기반이거나 광고가 적은 모델을 선호한다. 플랫폼은 이용자를 모으는 일과 결제를 유지시키는 일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광고 기반 무료 시청 모델만으로는 프리미엄 스포츠 중계권과 고품질 오리지널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렵고, 구독형 모델로 바로 이동하기에는 소비자 저항이 남아 있다. 베트남 OTT의 성장은 이용자 수 확대가 아니라 무료 이용자를 유료 이용자로 옮기는 속도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불법 스트리밍은 유료화의 가장 큰 변수다. 베트남은 2022년 기준 약 1,550만 명이 불법 스트리밍을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고, 경제적 손실은 연간 약 3억5,0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주요 불법 영화 사이트 200여 곳은 월 약 1억2,00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불법 축구 중계 사이트 70여 곳은 2022~2023년 누적 방문 15억 회 이상을 끌어모은 것으로 추정됐다. 정식 OTT 사업자가 가입자를 늘려도 불법 유통이 계속되면 매출 성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2026년 스페셜 301조 보고서에서 13년 만에 처음으로 베트남을 지식재산권 보호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베트남 총리실은 2026년 5월 공안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범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저작권 침해 단속 캠페인을 지시했다. 집중 단속 기간에는 영화·음악·모바일 게임 불법 유통 사이트의 배후 서버 폐쇄, 광고 수익금과 결제 계좌 추적, 형사 처벌 강화가 추진됐다. 불법 스트리밍 단속은 정식 플랫폼의 유료 전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단속 효과가 지속되지 않으면 시장 수익화는 다시 흔들릴 수 있다.
한국 콘텐츠 기업에는 베트남 시장의 진입 공식이 달라졌다. 완성작을 팔고 자막을 붙여 공급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자 플랫폼 진출은 실명 인증, 현지 법인, 트래픽 보고, 콘텐츠 삭제 요청 대응, 가입자 데이터 제출 의무를 직접 떠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베트남 OTT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협상력은 작품 한 편의 인기보다 현지 플랫폼의 가입자 유지, 유료 전환, 불법 유통 차단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지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2026년 베트남 OTT 시장은 성장 시장이면서 동시에 비용이 높아진 시장이다. 이용자는 늘고, 모바일 시청 기반은 넓어졌지만, 시행령 147호는 외국계 플랫폼의 운영 조건을 바꿨다. 저작권 단속은 유료화의 문을 넓힐 수 있고, 로컬 통신사 플랫폼은 가입자 데이터와 결제망을 앞세워 경쟁 우위를 키우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베트남 진출 전략은 작품 수출보다 먼저 현지 플랫폼 구조, 통신 인프라, 규제 대응, 저작권 보호 체계를 함께 놓고 다시 짜야 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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