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텍스·실리콘·페인트 시트까지 끌어들인 ‘The Call of the Void’, 고급 원단보다 변형의 공정에 놓인 가치

[KtN 박인경기자]Schiaparelli FW27 오트 쿠튀르 ‘THE CALL OF THE VOID’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소재의 위계였다. 실크와 새틴, 울처럼 쿠튀르가 오랫동안 권위를 쌓아온 원단은 중심에서 물러났고, 라텍스와 실리콘, 페인트를 굳혀 만든 시트가 몸 위의 형태를 만들었다.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는 이번 시즌 고급 원단의 귀함보다 재료를 전혀 다른 상태로 바꾸는 상상력과 공방의 손을 앞세웠다.

오트 쿠튀르는 전통적으로 희소한 원단, 장시간의 수작업, 신체에 맞춘 구조를 통해 가치를 증명해왔다. Schiaparelli의 이번 시즌은 같은 기준을 부정하기보다, 기준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값비싼 직물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뤘는가보다,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의복의 형태로 바꿨는지가 전면에 놓였다. 라텍스의 탄성, 실리콘의 피부 같은 질감, 굳은 페인트의 단단한 표면은 쿠튀르가 더 이상 부드러운 직물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페인트를 굳혀 만든 시트는 원단의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흔든 재료다. 페인트는 보통 옷감 위에 더해지는 색이나 표면 처리로 쓰이지만, 이번 컬렉션에서는 형태를 세우는 재료로 이동했다. 몸을 따라 흐르는 직물 대신, 굳은 표면을 조각하고 실루엣으로 세우는 방식이 선택됐다. 쿠튀르의 표면은 그림처럼 칠해진 바탕이 아니라, 착장의 구조를 결정하는 물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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