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114억달러·생산업체 1만5342곳…OEM·ODM 성장 뒤 독자 소재·특허·전달기술로 옮겨간 이익과 협상력
특별기획 | K-뷰티의 미래는 원료 전쟁
[KtN 임우경기자]2026년 상반기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70억달러로 역대 상반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3% 늘었다. 2분기 수출액만 39억달러로 1분기보다 25.8% 증가했다. 미국 수출이 14억50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중국 10억1000만달러, 일본 5억8000만달러가 뒤를 이었다. 기초화장품은 54억8000만달러로 상반기 전체 수출의 78%가량을 차지했다.
연간 기록도 이미 한 단계 올라섰다. 2025년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달러, 무역수지 흑자는 101억달러였다. 한국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에 올랐다. 국내 생산액은 17조9382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수출국도 202개국으로 넓어졌다.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섰고 일본과 아랍에미리트, 폴란드, 영국, 캐나다 등으로 판매망이 분산됐다.
화려한 수출 기록 아래에는 훨씬 촘촘한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2025년 생산실적을 신고한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1만5342곳이었다. 2024년 1만3976곳보다 약 9.8% 늘었다. 1년 사이 1300곳이 넘는 업체가 추가됐다. 생산액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한 기업은 37곳에 그쳤다. 수많은 중소 브랜드와 소수 대형 기업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긴 꼬리 구조가 한층 선명해졌다.
브랜드를 만드는 속도는 빨라졌다. 제조사를 찾고, 기존 원료군에서 처방을 정하고, 용기와 상표를 얹은 뒤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하는 과정이 과거보다 짧아졌다. 소셜미디어와 전자상거래는 해외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비용도 낮췄다. 제품을 직접 생산할 공장과 대규모 설비를 갖추지 않은 기업도 수개월 안에 화장품을 출시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형성됐다.
한국 OEM·ODM 기업이 구축한 생산 체계가 출발점이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를 비롯한 제조사는 처방 개발과 원료 선정, 품질관리, 대량생산, 국가별 규제 대응을 함께 제공해왔다. 2025년 생산실적 기준 코스맥스는 1조6104억원, 한국콜마는 1조3012억원, 코스메카코리아는 3531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ODM 상위 3개사의 생산실적을 합치면 3조2600억원을 넘는다.
OEM·ODM은 끝나지 않았다
‘OEM 시대 종료’라는 문장은 한국 화장품 산업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든다. 완제품을 일정한 품질로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은 수출 확대의 기반이며, 국가별 규제와 납기, 품질관리까지 감당할 수 있는 제조사는 여전히 많지 않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축적한 연구개발·생산 역량은 신생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산업 인프라로 작동한다.
달라진 부분은 제조 능력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격차의 폭이다. 뛰어난 ODM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생산 역량은 특정 브랜드만의 독점 자산으로 남기 어렵다. 한 제조사가 개발한 제형 문법과 원료 조합, 감촉 기술은 계약과 제품 조건에 따라 여러 고객사로 확장될 수 있다. 용기와 향, 색상, 성분 함량을 달리한 제품이 짧은 간격으로 시장에 쏟아지는 배경이다.
브랜드도 같은 압력을 받는다. 신제품이 인기를 얻으면 유사한 콘셉트와 성분 조합을 앞세운 후속 제품이 빠르게 등장한다. 틱톡과 아마존, 쇼피, 올리브영 같은 유통망은 신생 기업의 진입을 돕지만, 소비자의 이동 속도도 높인다. 한때 강한 검색량과 판매 순위를 확보한 브랜드가 다음 유행에서 밀려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브랜드 이름과 광고비, 유통망은 여전히 기업가치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소비자 신뢰와 반복 구매가 없는 원료 기술은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다만 브랜드만으로 방어막을 세우기 어려워졌다. 브랜드·제조·유통에 독자 원료와 특허, 공정 데이터가 결합돼야 경쟁사가 따라오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
제품은 바뀌어도 원료 매출은 남는다
완제품 기업은 하나의 브랜드와 제품을 팔아 매출을 만든다. 원료기업은 여러 브랜드와 제조사에 같은 소재와 기술을 반복 공급할 수 있다. 스킨케어에서 검증된 원료가 선케어와 헤어케어, 클렌징, 색조 제품으로 확대되면 고객사와 제품군이 함께 늘어난다. 생산설비와 규제 문서를 갖춘 원료는 국가별 처방에 반복 적용되고, 특허와 계약 구조에 따라 기술사용료도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 화장품 소재기업의 사업 범위는 성분 판매를 넘어섰다. 크로다(Croda)는 활성물질을 필요한 제형에 적용하기 위한 전달 시스템과 복수 원료를 결합한 맞춤형 솔루션을 사업 영역으로 두고 있다. 에보닉(Evonik)은 피부·모발용 활성물질뿐 아니라 전달 시스템과 보존, 제품 안정화 기술을 함께 제공한다. BASF는 원료와 제형 설계, 사용감, 환경성을 하나의 처방 체계로 묶는다. 지보단(Givaudan)은 향료 사업에 바이오 기술 기반 활성 화장품 원료를 더했다.
글로벌 소재기업이 판매하는 상품은 분말이나 액체 한 통에 머물지 않는다. 원료 규격서와 안전성 정보, 권장 함량, 배합 조건, 제형 예시, 효능 시험, 국가별 규제 대응 문서가 함께 움직인다. 고객사는 원료를 구매하면서 개발 기간을 줄이고 실패 가능성을 낮춘다. 공급사는 원료가 처방에서 빠질 때 발생하는 재시험과 제형 변경 부담을 협상력으로 바꾼다.
특정 활성물질이 유명해지는 과정에서도 원료기업의 몫이 커진다. 브랜드는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이름으로 제품을 설명하지만, 산업 내부에서는 표준화된 함량과 제조 공정, 순도, 입자 크기, 안정성, 전달 방식이 거래 조건을 결정한다. 같은 식물 이름을 쓴 제품이라도 추출 부위와 용매, 지표 성분, 정제 수준, 배합 안정성이 다르면 동일한 산업 원료로 취급하기 어렵다.
원료의 명성보다 제조 방식
천연물은 산지에서 채취한 상태로 화장품 산업의 자산이 되지 않는다. 수확 시기마다 성분 함량이 달라질 수 있고 토양과 기후, 건조 방식에 따라 색과 냄새, 불순물도 변한다. 농약과 중금속, 미생물 관리가 필요하며 매번 같은 품질로 생산할 수 있는 표준 공정도 갖춰야 한다.
제형에 넣은 뒤에는 더 복잡한 검증이 이어진다. 물이나 오일에 녹는지, 온도 변화에서 분리되지 않는지, 빛과 산소에 노출됐을 때 성분이 유지되는지, 다른 원료와 반응해 점도와 색이 변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수십 그램을 만드는 공정과 공장에서 수백 킬로그램을 생산하는 공정도 다르다. 생산량이 커질수록 교반 속도와 가열 시간, 투입 순서, 냉각 조건이 제품의 상태를 바꾼다.
원료기업의 자산은 식물 이름보다 재현 가능한 제조 방식에 쌓인다. 지표 성분을 일정 범위로 맞춘 규격,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제 공정, 난용성 물질을 분산시키는 기술, 활성물질을 보호하는 캡슐과 리포좀, 장기 안정성 시험, 대량생산 조건이 하나의 묶음을 이룬다. 특허도 식물 자체보다 추출법과 조성물, 용도, 전달체, 제조 공정에서 권리 범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특허의 수도 곧바로 사업 가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등록된 권리가 실제 경쟁 제품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넓은지, 해외 주요 시장에서도 권리가 유지되는지, 특허 공정을 상업 규모로 반복할 수 있는지, 고객사가 비용을 지불할 만큼 효율이 높은지 따져야 한다. 논문과 특허만 있고 생산설비와 영업망이 없으면 원료 매출은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특허가 없는 처방이라도 영업비밀과 공정 노하우, 공급망 통제로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에 원료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화장품 산업을 ‘원료가 전혀 없는 제조 강국’으로 규정하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대기업 연구소와 ODM 기업, 바이오 소재기업, 대학 연구실에서는 천연물과 발효, 펩타이드, 세라마이드, 미생물, 캡슐 제형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탈모 화장품 분야의 국제 특허 출원을 분석한 결과에서 한국은 천연물과 바이오 물질 출원 비중이 각각 50.0%와 56.4%로 집계됐다. 주요 출원인 상위권에는 바이오 소재기업 케어젠과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이 포함됐다. 화장품 원료와 바이오 소재에서 한국 기업이 기술 기반을 축적해온 대목이다.
산업의 빈칸은 연구의 존재보다 사업화의 연결에서 나타난다. 국내 식물 추출물 가운데 상당수는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소량 납품되는 범용 소재에 머문다. 원료를 국제 시장에서 통용되는 규격으로 만들고, 독성·안전성 정보를 정리하고, 여러 국가의 규제 문서를 갖추고, 수년간 같은 품질로 대량 공급하는 단계까지 올라선 기업은 제한적이다.
브랜드와 ODM은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제품에 반영하는 데 강하다. 글로벌 원료기업은 하나의 소재를 오랜 기간 연구하고 여러 제품과 국가에 적용해 반복 수익을 만드는 데 익숙하다. 한국이 확보한 빠른 상품화 능력에 장기 원료 연구와 공정 표준화가 결합되지 않으면 완제품 수출이 늘어도 소재와 기술에서 발생한 부가가치 일부는 해외 공급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신영미 (주)에스와이멤코스매틱 대표는 K-뷰티가 더 성장하려면 완제품 수를 늘리는 데 앞서 새로운 원료와 적용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원료를 찾는 일보다 제형 안에서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반복 생산하는 과정이 산업적 가치를 결정한다는 판단이다.
안전성 평가가 바꾸는 공급망
국내 규제 환경도 원료 정보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화장품책임판매업자가 제품별 안전성 평가 자료를 작성하고 안전성 평가자의 검토를 거쳐 보관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됐으며,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2026년 7월 8일에는 안전성 평가 자료의 작성 방법과 평가자 자격 등 세부기준도 공개됐다.
안전성 평가가 정착되면 브랜드와 제조사는 원료 이름만으로 제품을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원료 조성과 불순물, 독성 정보, 사용 농도, 노출량, 포장재 적합성, 완제품 안정성까지 확인해야 한다. 원료기업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 책임판매업자가 별도의 시험과 문서 작업을 부담해야 한다.
원료 규격과 안전성 문서를 갖춘 공급사의 가격이 단순 추출물보다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은 원료 한 통이 아니라 개발 시간과 규제 대응, 품질 위험을 줄이는 체계를 구매한다. 유럽과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의 기준이 달라질수록 국가별 문서를 지원할 수 있는 공급사의 영향력도 커진다.
원료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조사와 책임판매업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관행은 안전성 평가 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 2026년에는 제조·수입업체와 책임판매업체가 원료 조성, 독성, 안정성 정보를 원활하게 교환하도록 협의 체계도 가동됐다. 완제품 기업이 원료 공급망을 얼마나 깊게 파악하고 있는지가 수출 대응 속도와 비용에 직접 연결되는 구조다.
매스틱도 효능보다 공정에서 갈린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매스틱 활용 기술도 같은 산업 흐름 안에 놓여 있다. 매스틱은 그리스 키오스섬에서 생산되는 천연 수지지만, 수지의 명성과 화장품 원료로서의 가치는 별개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물성과 특유의 점도·향·색을 처리하고, 다른 성분과 결합한 뒤에도 안정성을 유지해야 미스트와 크림 같은 물 기반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
확보된 사업 문서에는 미스트와 크림, 폼클렌저, 선블록, 시트마스크, 덴탈 제품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려는 구상이 담겨 있다. 수용화·액상화 기술과 조성물 특허를 사업 자산으로 삼겠다는 계획도 제시돼 있다. 다만 ‘세계 최초’, ‘흡수율 극대화’, 특정 효능과 관련한 표현은 비교 시험 조건과 특허 권리관계, 완제품 인체적용 결과가 확인되기 전까지 단정할 수 없다.
산업적으로 주목할 부분은 매스틱의 명성이 아니라 제조 공정이다. 난용성 수지를 물 기반 제형에 넣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함량과 점도, 사용감, 장기 안정성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천연물이 반복 판매 가능한 원료로 바뀐다. 실험실 샘플을 넘어 동일 품질로 대량생산하고 안전성 문서와 원료 규격까지 확보해야 기술이 매출로 연결된다. 매스틱은 국내 천연물 개발 움직임 가운데 하나이며 K-뷰티 원료 산업 전체를 대표하는 소재로 확대할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브랜드 수보다 반복되는 기술 매출
2025년 생산액 17조9382억원 가운데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생산실적을 합하면 약 6조9441억원이다. 두 기업이 전체 생산액의 38.7%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시장에서는 1만5000곳이 넘는 업체가 제품과 유통망, 가격을 놓고 경쟁한다. 브랜드 숫자가 늘어날수록 소비자의 선택지는 많아지지만 개별 기업이 이름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어력은 약해진다.
원료와 공정 기술은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든다. 독자 소재가 여러 브랜드와 국가, 제품군에 들어가면 완제품의 유행이 바뀌어도 거래가 이어질 수 있다. 고객사가 원료를 교체하려면 처방과 안정성, 효능, 규제 문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공급사가 가진 데이터와 기술 지원 역량이 높을수록 교체 비용도 커진다.
브랜드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수요를 만들고 원료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며 유통을 확보한다. ODM은 기술을 대량생산 가능한 제품으로 구현한다. 원료기업은 여러 브랜드와 제조사를 가로질러 반복 매출을 만든다. 세 영역 가운데 하나만으로 세계 시장을 장기간 지키기 어려워졌다는 산업 변화가 수출 신기록 뒤에서 진행되고 있다.
2026년 상반기 70억달러라는 수출액은 K-뷰티가 판매 시장을 넓히는 속도를 확인시켰다. 국내 원료산업의 성장을 가늠하려면 완제품 수출액과 별도로 독자 원료 매출, 해외 기술사용료, 국제 특허의 권리 범위, 원료 규격과 안전성 문서, 상업 생산 규모를 함께 살펴야 한다.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오래 지탱하는 자산은 제품의 개수가 아니라 다른 회사가 곧바로 대체하기 어려운 원료와 공정, 데이터에 쌓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