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서 다듬은 고채도 색채, 크리스토발의 코쿤·자루형 드레스와 결합…가슴과 허리 대신 어깨·등·밑단으로 옮긴 부피

[KtN 박인경기자]라임색 재킷은 엉덩이를 덮은 뒤 곧게 떨어졌다. 무릎 아래에서는 짙은 바이올렛 깃털이 바닥까지 이어졌다. 위쪽은 매끄럽고 단단했으며 아래쪽은 걸음마다 흔들렸다. 두 색이 갈리는 선을 따라 재킷 길이와 하의의 부피도 또렷하게 나뉘었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발렌시아가에 가져온 색은 옷 위에 덧붙인 장식이 아니었다. 재단과 소재가 바뀌는 자리를 색으로 구분하고, 커다란 옷의 구조를 한눈에 읽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1999년 발렌티노에 합류한 피치올리는 액세서리 부문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와 함께 2008년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고, 2016년부터 단독으로 컬렉션을 총괄했다. 2024년 발렌티노를 떠날 때까지 25년 동안 기성복과 오트 쿠튀르를 다뤘다. 긴 드레스와 선명한 색, 아틀리에의 손작업은 발렌티노 시절부터 이어진 피치올리 디자인의 중심이었다.

발렌시아가는 2025년 5월 피치올리를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했다. 임기는 같은 해 7월 10일 시작됐다. 발렌시아가는 선임 발표에서 피치올리의 오트 쿠튀르 경험과 장인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강조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의 유산을 잇는 동시에 뎀나(Demna)가 10년 동안 구축한 성과를 이어간다는 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전임자의 발렌시아가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인사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디자인을 연결하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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