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이름, 장식선과 짧은 행갈이… 그림 옆 설명이 아니라 한 면의 질서를 먼저 세운 문장
드로잉보다 앞에 놓인 글의 배열, 스크랩북은 인물 스케치와 함께 기록과 보존의 형식까지 품고 있었다

[KtN 박준식 기자] 날짜와 프랑스어 문장, 이름, 장식선이 들어간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책의 성격이 달라진다. 인물 드로잉을 모아 둔 소형 화첩으로 보이던 스크랩북이 기록과 배열의 형식을 함께 가진 책으로 넘어간다. 글은 그림 옆에 붙은 설명처럼 놓여 있지 않다. 한 면의 질서를 먼저 세우고, 뒤이어 나오는 드로잉의 읽는 방식까지 바꿔 놓는다.

한 면 안에는 날짜와 문장, 굵은 가로획, 장식선이 함께 들어 있다. 문장은 줄글처럼 길게 흐르지 않는다. 짧은 행으로 끊기고 아래로 내려가며 리듬을 만든다. 어떤 획은 길게 눌려 있고, 어떤 획은 중간에서 멈춘다. 빈칸도 남는 자리가 아니다. 다음 문장을 받기 전 잠시 멈추는 간격으로 작동한다. 이 페이지는 내용을 적은 메모라기보다, 기록을 한 면 안에 배열한 페이지에 가깝다.

장식선의 역할도 분명하다. 문장을 꾸미는 부속물이 아니라 행과 행 사이의 질서를 정리하는 기준으로 들어와 있다. 글의 내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과 간격, 눌림과 멈춤이다. 프랑스어 필기 페이지를 보고 나면 이 스크랩북은 글을 담은 책이 아니라 선으로 면을 조직한 책처럼 읽힌다.

구독자 전용 기사 입니다.
회원 로그인 구독신청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