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Hertz Whales’와 ‘SCORE’ 연작, 들리지 않는 주파수와 악보의 질서를 회화 안으로
윤이상 ‘Fluktuationen’과 악보의 질서, 달의 시간을 회화 구조로 옮긴 2026년 국제 일정
[KtN 박준식기자]임하나(LIMHANA) 작가가 2026년 베니스와 스코페에서 이어지는 국제 전시 일정에 이름을 올렸다. 8월 3일부터 11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팔라초 피사니-레베딘(Palazzo Pisani-Revedin)에서 열리는 ‘VENICE PAVILION: Korean Contemporary Art 2026’에 참여하고,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의 ‘OSTEN 비엔날레 스코페 2026’ 개인 참여 부문 파이널리스트 명단에도 포함됐다.
베니스 전시는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현지에서 마련되는 한국 동시대미술 병행전이다. ‘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한국현대미술 작가 전’과 ‘Beyond Borders: Korean Contemporary Artists Exhibition’을 함께 내걸고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베니스의 관람 환경 속에 소개한다. 라 비엔날레 디 베네치아가 주최하는 공식 본전시·국가관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전시로,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도시 곳곳에서 이어지는 병행 전시 흐름 안에 놓인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In Minor Keys’를 제목으로 2026년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베니스 일대에서 열린다. 임하나가 참여하는 전시는 공식 본전시와 같은 제도권 행사는 아니지만, 베니스 전역에 국제 미술 관계자와 관람객이 모이는 시기와 맞물려 열린다. 베니스 현지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별도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전시 일정의 의미를 볼 수 있다.
전시장인 팔라초 피사니-레베딘은 베니스 산마르코 권역에 자리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8월 초 베니스의 전시 동선 안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이 한자리에 놓이고, 임하나는 ‘52-Hertz Whales: 유동(流動), Fluktuationen’으로 참여한다.
‘52-Hertz Whales: 유동(流動), Fluktuationen’은 52헤르츠 고래의 파동 단면을 동양 산수화의 어법으로 옮긴 작업이다. 윤이상의 관현악곡 ‘Fluktuationen’에서 출발한 소리의 구조도 작품 안에 함께 들어온다. 규격이나 재료보다 먼저 보아야 할 부분은 고래의 주파수, 윤이상의 음악, 산수의 선이 하나의 회화적 질서로 묶이는 방식이다.
52헤르츠 고래는 다른 존재에게 쉽게 닿지 않는 음역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임하나는 이 주파수를 현대 사회의 단절과 소통 부재를 비추는 장치로 가져온다. 들리지 않는 소리는 산수의 능선처럼 번지고, 보이지 않는 파동은 나이테 같은 층위를 만든다. 작품은 소리를 직접 재현하지 않고, 파동이 남기는 흔적을 회화의 선과 결로 옮긴다.
작품 안의 산수는 자연 경관을 옮긴 풍경화와는 거리가 있다. 산맥처럼 이어지는 선들은 실제 지형보다 주파수의 단면, 시간의 퇴적, 견딘 흔적에 가깝다. 윤이상의 음악이 청각적 배경으로 들어오면서 동양 산수의 형식은 소리와 기억을 받아들이는 장치가 된다. 고래, 주파수, 산수, 윤이상의 음악은 각각의 소재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감각 구조를 만든다.
임하나의 근작은 ‘신진경산수화’, ‘Mind Map’, ‘Interactive Playground’, ‘Tea Therapy’, ‘SCORE’ 연작을 지나며 회화를 감각과 기억의 구조로 넓혀왔다. 감정의 경로, 회복의 리듬, 관람자가 머무는 시간은 임하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진 요소다. 음악, 차, 향, 설치, 회화가 함께 들어오는 작업에서는 전시장 안에서 각 요소가 어떤 순서와 강도로 전달되는지가 작품의 밀도를 좌우한다.
KLOINM의 ‘SCORE: Caprice & Sonnet’은 임하나의 최근 작업을 읽는 또 다른 축이다. KLOINM은 평면회화, 설치, 조형, 미디어, 음악을 오가는 아티스트 듀오다. ‘SCORE’는 우선 악보를 뜻한다. 점수라는 뜻도 제목 안에 들어 있지만, 중심에는 소리를 적고 연주의 시간을 붙잡는 악보의 질서가 놓인다. 점수의 의미는 예술과 개인을 평가하는 현대 사회의 언어로 뒤쪽에 겹쳐진다.
‘SCORE: Caprice & Sonnet’은 음악을 설명하는 회화라기보다 소리를 적는 회화에 가깝다. 캔버스와 물감, 원형 조형, 여백, 선의 흐름은 악보의 마디처럼 놓인다. 관람자는 작품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보지 않고 리듬과 간격을 따라 읽게 된다. 회화는 소리의 시간, 연주의 호흡, 문학적 형식이 지나가는 기보의 장으로 확장된다.
임하나는 작곡 과정에서도 독자적 기보 방식을 사용해온 작가다. 기존 오선보가 음의 높이와 길이, 박자를 기록한다면, 임하나의 기보는 소리의 결, 감정의 속도, 여백의 간격, 반복의 방향까지 붙잡는 방식에 가깝다. ‘SCORE’ 연작에서 회화와 설치가 악보처럼 읽히는 이유도 이 작업 방식과 닿아 있다. 작품은 음악을 설명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소리를 적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놓인다.
KoN의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와 임하나의 ‘신진경산수화 新眞景山水畵 Score: Sonnet 1’은 KLOINM의 ‘SCORE’ 연작을 이루는 두 축이다. KoN의 작업은 카프리스(Caprice)의 즉흥성과 연주의 순간을 회화로 남긴다. 임하나의 작업은 ‘열두 달’의 순환과 소네트(Sonnet)의 정형성, 동양 음계의 구조를 원형 조형과 여백으로 풀어낸다.
카프리스는 빠른 전개, 강한 기교, 정해진 형식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 장르다. KoN의 작업에서는 무대 위에서 사라지는 바이올린 연주의 순간이 선과 물감의 움직임으로 남는다. 임하나의 ‘Sonnet’은 반대로 정형의 구조를 끌어온다. 소네트의 14행, ‘열두 달’의 12, 9음 음계의 열린 순환이 회화와 설치 안에서 맞물린다.
임하나의 ‘신진경산수화 Score: Sonnet 1’은 신진경산수화 시리즈의 ‘열두 달’ 안에서 읽어야 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산이 아니라 달이 놓인다. ‘열두 달’은 시간의 순환, 달의 위상, 12라는 수의 구조를 함께 품는다. 달은 매달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고, 계절은 12개의 시간 단위를 지나 다시 처음으로 향한다. 원형 조형과 여백은 이 순환의 감각을 회화 안으로 들여오는 장치다.
소네트는 14행과 운율, 문제 제기와 전환의 구조를 가진 정형시다. 임하나는 소네트의 문학적 형식을 회화와 설치 안으로 옮기면서 ‘열두 달’의 순환 구조를 함께 끌어온다. 9음 음계는 완전 5도를 여덟 번 쌓아 올려 형성되는 기보학적 전개로 제시된다. 12음으로 닫히기 전의 9음은 완결된 원보다 계속 이어지는 순환에 가깝다. 12의 시간과 9의 전환이 한 작업 안에서 서로 맞물린다.
OSTEN 비엔날레 스코페 2026 파이널리스트 진입은 임하나의 2026년 일정에 또 다른 축을 더한다. OSTEN은 1945년부터 ‘아트 온 페이퍼’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국제 예술 플랫폼이다. 2026년 비엔날레는 종이 기반 작업을 중심에 두면서 회화, 오브제, 설치, 섬유예술, 사진, 비디오아트, 멀티미디어아트까지 포괄한다.
OSTEN 비엔날레 스코페 2026 개인 참여 부문 파이널리스트 명단에는 여러 국가 작가들이 포함됐고, 한국에서는 임하나가 이름을 올렸다. 앞서 선정 작가 명단에는 조주연(Juyoun CHO), 김성찬(Sungchan KIM), 김예지(Yeji KIM), 임하나가 한국 작가로 함께 포함됐다. 파이널리스트는 수상 확정 단계가 아니라 국제 심사로 넘어가는 절차다. 7월 원작 접수 절차 이후 8~9월 심사가 진행되고, 수상 작가 발표는 9월 30일로 예정돼 있다.
베니스 병행전과 OSTEN 비엔날레는 전시 성격과 제도적 조건이 다르다. 베니스 현지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국제 관람 환경 속에 소개하는 자리이고, OSTEN은 종이 기반 예술과 동시대 시각예술의 확장을 함께 다루는 심사형 비엔날레다. 두 일정 모두 국제 노출의 기회지만, 전시 형식과 심사 구조, 이후 평가 방식은 같지 않다.
한국 동시대미술의 젊은 작가층도 단일한 시장 언어로 묶이기 어려워지고 있다. 단색화와 블루칩 작가 중심의 흐름과 별도로, 젊은 작가들은 한국적 이미지를 전면에 앞세우기보다 한국적 사유와 감각의 구조를 회화, 설치, 사운드, 문학적 형식으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 전시 참여가 곧바로 시장 성과나 제도 평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작업 언어가 다른 관람 환경에서 어떻게 읽히는지는 이후 전개를 가늠하는 지점이 된다.
임하나의 2026년 일정은 8월 베니스 병행전, 8~9월 OSTEN 비엔날레 심사, 9월 30일 수상 발표로 이어진다. 베니스에서는 ‘52-Hertz Whales: 유동(流動), Fluktuationen’이 소개되고, 스코페에서는 OSTEN 비엔날레 국제 심사 절차가 진행된다. 악보의 질서, 달의 시간, 들리지 않는 주파수를 회화 안으로 옮겨온 임하나의 작업은 서로 다른 국제 전시 환경 속에서 관람 반응과 심사 결과를 차례로 마주하게 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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