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점 미술관 회고전이 넓힌 홍콩 관객층…3년 뒤 센트럴 상설 전시에서 이어진 작가 인지도
[KtN 임민정기자]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노란 호박 두 점이 2022년 11월 홍콩 서구룡문화지구 M+에 놓였다. 높이 3m가 넘는 대형 조각은 미술관 지상층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회고전이 끝난 뒤에도 호박과 대형 설치 작품은 M+에 남아 쿠사마의 이름을 홍콩의 일상적인 문화 풍경에 새겼다.
M+가 개최한 ‘Yayoi Kusama: 1945 to Now’는 2022년 11월 12일부터 2023년 5월 14일까지 이어졌다. 일본 밖 아시아 지역에서 열린 쿠사마 회고전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회화와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기록물 등 200여 점이 출품됐고 28만명 이상이 전시장을 찾았다.
쿠사마의 70년은 3년 뒤 홍콩 센트럴에서 다시 펼쳐졌다. 소더비 메종 1층 살롱은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제작된 회화와 종이 작업, 실크스크린 판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서구룡의 공공 미술관이 대형 회고전으로 넓힌 작가 인지도가 금융·명품 소비의 중심지인 센트럴의 경매회사 상설 공간으로 이어졌다.
M+ 회고전은 2021년 11월 개관한 미술관의 첫 특별전이었다. 개관 1주년을 맞아 쿠사마를 선택했고 준비에 4년을 들였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미술관 및 개인 소장품, M+ 소장품과 작가 소장품을 함께 모았다.
전시는 ‘Infinity’, ‘Accumulation’, ‘Radical Connectivity’, ‘Biocosmic’, ‘Death’, ‘Force of Life’ 등 여섯 주제로 구성됐다. 1945년 종이 작업부터 1960년대 뉴욕 활동기, 일본 귀국 이후의 회화와 조각, 2022년 신작까지 연대기와 주제를 함께 따라갔다.
쿠사마를 호박과 물방울무늬의 작가로만 소개하지도 않았다. 반복되는 그물과 점, 생활용품을 돌출물로 덮은 어큐뮬레이션(Accumulation), 신체와 퍼포먼스, 죽음과 생명에 관한 작업이 함께 나왔다.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진과 기록물도 전시에 포함됐다.
M+를 위해 제작된 신작 세 종류도 공개됐다. ‘Death of Nerves’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는 길고 부드러운 형태에 반복 무늬를 입힌 대형 설치였다. ‘Dots Obsession—Aspiring to Heaven’s Love’에는 거울과 물방울무늬, 공중에 매달린 대형 풍선이 사용됐다.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제작된 ‘Pumpkin’ 두 점은 미술관 지상층에 설치됐다.
M+ 전시 입장권은 성인 기준 240홍콩달러였다. 일반 관람권보다 높은 별도 특별전 가격이 책정됐지만 6개월 동안 28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홍콩 시민과 해외 방문객이 함께 집계된 수치다. 쿠사마가 현대미술 전문 관객을 넘어 가족 단위 관람객과 관광객까지 모을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회고전이 끝난 뒤 모든 작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M+는 대형 설치 ‘Death of Nerves’와 ‘Dots Obsession—Aspiring to Heaven’s Love’, 호박 조각을 계속 공개했다. 지상층의 호박은 별도 특별전 입장권 없이도 볼 수 있도록 했다. 한시적인 흥행 전시가 끝난 뒤에도 쿠사마의 대표 도상이 미술관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M+에서 형성된 관람 경험은 소더비 메종 전시를 받아들이는 배경이 됐다. 2026년 홍콩 관객에게 쿠사마는 새로 설명해야 하는 해외 작가가 아니다. 대형 회고전을 통해 초기 작업과 뉴욕 활동기, 반복과 증식의 개념을 접한 관람객이 이미 존재한다.
소더비는 같은 작가를 전혀 다른 규모와 방식으로 보여준다. M+가 200여 점과 대형 설치, 기록물을 동원했다면 소더비 살롱은 벽에 거는 회화와 종이 작업, 판화에 집중했다. 미술관에서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했다면 소더비에서는 개별 작품을 가까이서 비교하는 관람이 중심을 이룬다.
전시 주제도 달라졌다. M+는 무한과 축적, 연결, 죽음과 생명 등 쿠사마가 평생 다룬 개념을 앞세웠다. 소더비는 자연과 성장, 동식물, 도시와 팝으로 구획했다. 꽃과 포도, 호박, 핸드백처럼 알아보기 쉬운 소재를 따라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두 전시의 차이는 기관의 역할에서 나온다. 공공 미술관은 여러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작품을 빌리고 기록과 연구를 더해 작가의 활동을 해석한다. 경매회사는 작품 감상과 수집, 거래가 가까운 공간에서 전시를 운영한다. 같은 쿠사마를 다루더라도 작품을 고르는 기준과 관람 동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술관 관람객 28만명이 곧바로 미술품 구매자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전시 관람과 작품 구매 사이에는 가격과 정보, 소장 환경이라는 높은 문턱이 있다. M+ 관람객 수만으로 소더비의 거래 가능성을 계산할 수도 없다.
다만 대형 회고전은 작가에 관한 지식과 친숙함을 도시 안에 축적한다. 관람객은 호박의 외형만 기억하는 데서 벗어나 초기작과 인피니티 네트, 어큐뮬레이션을 함께 알게 된다. 경매회사가 초기 종이 작업이나 비대표 도상을 선보일 때 별도의 설명에 필요한 거리도 줄어든다.
소더비 메종의 위치는 M+와 또 다른 관람객을 만난다. M+는 서구룡문화지구의 미술관을 찾아간 관람객을 맞는다. 랜드마크 채터는 금융회사와 업무시설, 명품 매장 사이에 있다. 전시 관람을 목적으로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뿐 아니라 센트럴을 오가는 직장인과 쇼핑객, 관광객이 소더비 전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다.
홍콩은 미술관과 경매회사가 가까운 시기에 같은 작가를 반복해 보여주는 도시가 됐다. M+는 쿠사마를 전후 현대미술사 안에 배치했고, 소더비는 제작 시기와 매체가 다른 작품을 상설 공간에 걸었다. 공공 전시가 작가를 해석한 뒤 상업 전시가 개별 작품으로 관심을 이어가는 흐름이다.
쿠사마의 대중성에는 밝은 색과 알아보기 쉬운 도상이 큰 몫을 한다. 거울과 반복 무늬를 이용한 대형 설치는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경험하고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다. 호박은 한눈에 작가를 알아보게 하는 표식이 됐다. 소더비는 높은 인지도를 활용하면서도 초기작과 종이 작업을 함께 배치해 대표 이미지에 집중된 관심을 넓혔다.
미술관과 시장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구분도 필요하다. M+ 회고전의 28만 관람 기록은 공공 문화기관이 축적한 성과다. 소더비의 전시는 경매와 프라이빗 세일, 고객 상담을 함께 운영하는 공간에서 열린다. 미술관의 관객 수를 경매회사의 사업 성과로 직접 연결해서는 안 된다.
M+가 남긴 영향은 거래 실적보다 홍콩 관객의 이해에서 먼저 나타났다. 200여 점을 통해 쿠사마의 생애와 작업을 접한 관람객은 3년 뒤 센트럴에서 초기 종이 작업과 판화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소더비도 이미 형성된 대중적 인지도 위에서 대표작 이외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홍콩에서 시작된 M+ 회고전은 2023년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 2024년 포르투갈 세랄베스미술관으로 이어졌다. 홍콩에서 기획한 쿠사마 연구와 전시가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M+의 국제적인 역할도 넓어졌다. M+는 전체 순회 관람 규모가 80만명을 넘었다고 집계했다.
2026년 소더비 메종 전시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서구룡에서 28만명을 모은 미술관 회고전과 센트럴의 상설 전시는 규모와 목적이 다르지만, 쿠사마를 홍콩에서 반복해서 만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M+가 작가의 70년을 연구와 대형 설치로 펼쳤다면 소더비는 개별 회화와 판화를 가까이 놓으며 다음 관람층을 만났다.
홍콩에 축적된 쿠사마의 인지도는 전시 종료 뒤에도 남는다. M+의 대형 작품은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고, 소더비는 초기작과 비대표 도상을 새로운 공간에 소개했다. 공공 미술관이 넓힌 관객층과 경매회사의 상설 전시가 어떤 간격을 유지하며 이어지는지가 홍콩 미술시장의 다음 흐름을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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