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어, 한국문화 교육…설날 체험, 허브아일랜드 견학도
ㆍ체불임금 해결부터 취업도…"양주 회사까지 가서 체불해결“
ㆍ조영식 대표, 대통령상 수상한 교육전문가‧ 언론인
[KtN 최경인기자] 인도에서 온 빌루 씨의 한국은 한동안 악몽에 가까웠다. 밤낮없이 일했지만 임금은 밀리고, 가족에게 보내던 송금도 끊겼다. 위장병까지 얻어 “한국에 온 선택이 틀린 건 아닐까” 흔들리던 어느 날, 포천 ‘세계인의 날’ 행사장에서 집어 든 한 장의 전단지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한국어 무료교육’이라 적힌 종이 한 장은, 한국어 수업을 넘어 체불임금 해결과 안정된 일자리, 그리고 다시 웃을 수 있는 일상을 선물하는 초대장이었다.
체불임금에서 취업까지, “교실 밖으로 나간 한국어 수업”
한국어 네트워크의 교실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간 날, 빌루 씨는 한국어보다 먼저 자신의 사연부터 꺼냈다. 몇 달치 임금이 밀렸지만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몰라, “다음 달에 준다”는 말만 믿고 버티던 시간들. 이 이야기를 들은 조영식 대표는 곧장 회사에 수차례 전화를 걸고, 직접 양주의 사업장을 찾아가 사장과 마주 앉았다. 언성을 높여야 할 때는 단단하게, 이해를 구해야 할 때는 낮은 목소리로 설득을 이어간 끝에, 그는 3건, 약 240만 원의 체불임금을 돌려받게 됐다.
조 대표의 역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장 큰 불안은 직장의 끊김”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아예 지역 기업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채용을 제안했다.
포천의 한 대형기업 대표를 설득해 빌루 씨의 성실함을 소개했고, 회사는 결국 그를 정규 인력으로 받아들였다. 체불임금이 ‘과거’를 정리해 주었다면, 이 일자리는 한국에서의 ‘미래’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글로벌 트렌드: ‘언어+정착지원’ 통합 모델의 등장
전 세계적으로 이민과 이동이 일상이 된 시대, 한국어 교육은 더 이상 문법과 회화만 가르치는 교과과목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 정부 역시 외국인 근로자 지역정착 지원사업과 이민자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한국문화 교육과 노동·생활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통합형 정착지원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대학과 지자체, 가족센터, 외국인 주민 지원센터가 연계해 문화체험과 취업정보, 생활법률 교육을 결합하는 프로그램도 빠르게 늘고 있다.
포천의 한국어 네트워크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은 TOPIK 중심의 한국어 교육과 더불어 설날 세배, 떡국 나눔, 한복 체험, 허브아일랜드 야간 관광 등 ‘현장형 문화체험’을 결합해 언어 장벽과 문화 장벽을 동시에 낮춘다. 여기에 체불임금 상담, 취업 연계, 가족과의 영상통화 콘텐츠 제작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이주정책의 키워드로 떠오르는 ‘언어+정착지원+커뮤니티 네트워크’ 모델을 민간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교실 풍경: “한국어를 배우면, 가족에게 보여줄 얼굴이 생깁니다”
한국어 네트워크의 수업 시간은 교과서만 넘기는 전통적인 어학당과 다르다. 유아용 교구를 활용해 알파벳처럼 한글 자모를 익히는 파키스탄 근로자, “안녕하세요”보다 먼저 “근로계약서”, “임금”, “퇴직금” 같은 단어를 확인하는 네팔 청년, 한국의 겨울 풍경을 찍어 가족에게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 각도를 연습하는 브라질 출신 교육생까지. 이들에게 한국어는 시험이 아니라 생존이고, 가족에게 안심을 전하는 언어다.
허브아일랜드 산타마을의 화려한 야경 앞에서 “월급이 들어오면 딸에게 이 풍경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던 빌루 씨는, 실제로 그날의 영상을 가족에게 전송했다.
조 대표는 교육생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 ‘한국에서의 하루’를 담은 짧은 클립으로 만들어 주고, 멀리 떨어진 가족들은 영상통화 속에서 눈시울을 붉힌다. 한국어 수업이 한 사람의 노동과 감정, 가족을 동시에 잇는 플랫폼이 되는 순간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안전망: 민간 ‘현장 중개자’의 의미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공식적인 경로—노동부 진정, 법률구조, 대지급금 제도—는 분명 존재하지만, 한국어가 서툴고 제도 이해가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다. 이 지점에서, 조영식 대표 같은 ‘민간 현장 중개자’의 존재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 제도와 현장의 간극을 메우는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한다.
조 대표는 행정기관 대신 임금체불 현장을 찾아가 협상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사정을 통역하며, 인권 침해 상황을 미리 감지하는 비공식 게이트키퍼 역할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조영식 대표가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사범대 국어교육과 출신의 대통령상 수상 교사이자, 교육부 장학사와 중앙아시아 한국교육원장을 거친 교육전문가이며, 동시에 케이트렌디뉴스 취재국장과 복지TV 경기북부 보도본부장으로 활동하는 언론인이라는 점이다.
교육과 미디어, 지역 네트워크를 교차 활용하며 이주민의 현실을 ‘교실 안’과 ‘뉴스 화면 밖’으로 동시에 끌어올리는 이 복합적인 정체성은, 이민 시대 로컬 액티비스트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우리는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꿈을 키우는 불쏘시개”
한국어 네트워크에는 브라질, 인도, 파키스탄, 네팔, 몽골 등 국적도, 직업도, 체류 사유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꿈’의 언어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한국에서 오래,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조영식 대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어는 수단일 뿐”이라며, 자신과 한국어 네트워크가 “외국인의 꿈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빌루 씨가 다시 웃게 된 이유는 단지 월급을 제때 받게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어 네트워크의 교실에서, 그는 더 이상 ‘이름 모를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학생이자 동료, 그리고 한국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이웃으로 호명된다.
포천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는, 다문화 도시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조용하지만 강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