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성 높아진 미술시장 속 다시 중요해진 작가의 지속성…2014년 ‘순간’에서 2026년 ‘행복으로’까지 12년의 변화

[K-ART, 구승희①] 노란 머리와 작은 꽃, ‘행복’은 어떻게 그림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ART, 구승희①] 노란 머리와 작은 꽃, ‘행복’은 어떻게 그림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세계 미술시장은 팬데믹 이후의 과열을 지나 다시 작품을 고르는 단계로 들어섰다. 2025년 글로벌 경매시장은 거래 건수가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시장의 성격은 이전과 달랐다. 고가 작품에 자금이 집중되던 흐름은 약해지고 구매층은 넓어졌으며, 시장은 투기성보다 작품과 작가를 보다 선별적으로 판단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국 역시 재편되는 아시아 미술시장 안에서 입지를 다지는 지역으로 언급됐다.

시장이 작품을 다시 골라 보기 시작할수록 한 작가에게 남는 것은 유행보다 오래 지속된 자기 언어다. 구승희의 작업을 이 흐름에 곧바로 편입시키거나 시장성을 미리 평가할 근거는 없다. 다만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이어진 작품을 함께 놓으면 반복해온 몇 가지 형태가 분명히 드러난다. 노란 곱슬머리의 여성, 크게 강조된 눈, 꽃, 강한 색채다. 같은 이미지가 장기간 되풀이됐다는 사실과 그 이미지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승희, ‘순간’, 장지 채색, 162×130cm, 2014.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순간’, 장지 채색, 162×130cm, 2014.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4년 ‘순간’에서 여성은 붉은 공간 안에 멈춰 있다. 얼굴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오른 노란 머리가 인물을 에워싸고, 고개와 눈은 한쪽 위를 향한다. 몸의 행동은 크지 않고 꽃 역시 머리와 옷 가까이에 머문다. 이후 구승희 작업에서 반복되는 인물의 기본적인 형태가 이미 자리하지만 외부 공간으로 뻗어가는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순간’은 이번 출품작 가운데 제작연도가 가장 앞선 작품군에 놓인다.

노란 곱슬머리의 출발은 밝고 낙관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육아와 작업을 함께 이어가던 시기, 작업을 더 계속하고 싶은 마음과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맞물리면서 생긴 조급함과 복잡한 심리가 머리카락의 반복으로 옮겨졌다. 관람객들이 오히려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면서 노란 머리는 이후에도 계속 등장했다.

따라서 노란색 자체를 곧바로 행복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생활에서 출발한 감정이 반복을 거치며 작가의 시각적 표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구승희 역시 노랑과 빨강, 주황처럼 밝은 색을 특별한 상징체계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색으로 설명했다.

구승희, ‘행복’, 장지 채색, 99×66cm, 2017.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 장지 채색, 99×66cm, 2017.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3년 뒤인 2017년 ‘행복’에서는 꽃이 훨씬 적극적으로 들어온다. 인물의 품에는 여러 색의 꽃이 모여 있고, 노란 머리 안에도 꽃과 작은 형태가 촘촘히 박혀 있다. 일부 형상은 머리의 가장자리를 벗어나 붉은 공간으로 흩어진다. ‘순간’에서 머리와 옷 가까이에 머물던 꽃이 인물의 몸을 채우고 주변으로 번지는 변화다.

작은 꽃은 구승희 작품을 읽는 데 중요한 단서다. 멀리서는 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하나하나가 꽃으로 구분된다.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이 꽃에 담아왔고, 큰 꽃에는 사람마다 다른 행복의 색을 연결했다.

꽃을 의미만으로 읽으면 작품의 절반만 보게 된다. 작은 꽃은 행복을 가리키는 기호이면서 동시에 그림을 실제로 구성하는 단위다. 하나의 꽃은 작지만 수십, 수백 번 반복되면서 머리와 옷의 밀도를 바꾸고 빈 공간을 줄인다. 구승희가 말하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제작 과정에서 하나씩 더해가는 행위가 이 지점에서 겹친다.

구승희는 옷의 문양과 작은 형태도 한꺼번에 처리하기보다 선과 색을 반복해 채우는 방식을 이어왔다. 반복은 작품에 시간을 축적하지만 항상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세밀한 형태가 화면의 밀도를 높이는 작업이 있는 반면 비슷한 꽃과 얼굴이 계속 등장하면서 장식적 친숙함이 먼저 느껴지는 작업도 생길 수 있다. 구승희 회화를 볼 때 ‘얼마나 많이 채웠는가’보다 반복된 요소가 작품마다 어떤 다른 관계를 만드는지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1년 ‘담아서’에서는 변화가 손에서 시작된다. 흰 꽃은 인물의 머리나 옷에 붙어 있지 않고 두 손 사이를 움직인다. 한쪽에 모였다가 위쪽으로 흩어지고, 얼굴과 시선도 같은 방향을 따른다. 이전 작품에서 몸 가까이에 머물던 꽃이 인물의 행동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행복의 의미도 이 시기에 단순한 소유에서 벗어난다. 구승희가 작업 과정에서 정리해온 행복은 큰 성공이나 특별한 사건보다 가족과 이웃, 물 한 잔과 바람처럼 가까운 생활 속 감각에 가깝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멀리서 찾던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이동했고, 어려웠던 육아의 시간도 지나고 난 뒤에는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게 됐다.

‘담아서’의 손은 이런 생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행복은 머리에 머무르거나 품에 안긴 상태에서 그치지 않고 모이고 이동한다. 손이 등장하면서 인물과 주변 공간 사이에 구체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눈동자는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된 요소다. 구승희는 코와 눈썹을 줄이는 대신 눈을 크게 강조해왔고, 눈동자 안에는 꽃이나 별을 연상시키는 결정 형태를 넣었다. 눈을 내면의 진심과 연결하고, 과거 접했던 물의 결정 이미지를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조형적 모티프로 가져왔다.

눈의 작은 결정, 크게 팽창한 머리, 손을 따라 이동하는 꽃을 함께 놓으면 작품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눈 안에 응축된 형태는 내면에 머물고, 노란 머리는 얼굴 바깥으로 넓어지며, 꽃은 손을 따라 주변으로 움직인다. 같은 인물을 반복하면서도 감정이 머무는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구승희, 행복은 여기에 장지 채색 162×130cm 2024.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은 여기에 장지 채색 162×130cm 2024.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4년 ‘행복은 여기에’라는 제목은 구승희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행복관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2017년에는 ‘행복’이라는 명사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2024년에는 ‘여기에’라는 위치가 붙었다. 산 너머에서 찾기보다 자신의 주변에서 행복을 발견하려 했던 작업의 흐름이 제목까지 들어온 셈이다. ‘행복은 여기에’는 이번 출품작 가운데 2024년 대형 장지채색 작업으로 포함돼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된다는 점은 구승희 작업의 성격을 만들면서 동시에 경계해야 할 부분도 만든다. ‘행복’, ‘행복이란’, ‘행복은 여기에’, ‘행복으로’, ‘행복의 순간’, ‘행복의 시작’처럼 비슷한 제목이 이어진다. 제목만 달라지고 조형 변화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하나의 주제가 반복되는 데 머물 수 있다. 반대로 인물의 행동과 꽃의 위치, 주변 공간이 계속 변한다면 같은 단어는 장기간 이어진 작업의 축이 될 수 있다.

구승희, ‘행복으로’,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으로’,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행복으로’에서는 몸의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검은 공간에 거대한 노란 초승달이 놓이고, 여성은 작은 흰 강아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이동한다. 꽃은 달을 채우면서 검은 공간으로도 흩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혼합매체로 제작된 두 대형작 가운데 하나다.

2014년 ‘순간’에서는 시선이 움직였고, 2017년 ‘행복’에서는 꽃이 인물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담아서’에서는 손이 꽃의 이동을 만들었다. 2026년 ‘행복으로’에서는 몸 전체가 공간을 가로지른다. ‘행복’이라는 정지된 명사에서 ‘행복으로’라는 방향을 가진 제목으로 옮겨간 변화와도 맞물린다.

12년 동안 노란 머리와 큰 눈, 꽃이 사라진 적은 거의 없다. 새로운 재료와 인물의 행동이 더해졌지만 익숙한 얼굴과 색채가 반복되면서 작품 사이의 긴장이 약해지는 부분도 있다. 구승희 작업을 평가할 때 식별하기 쉬운 이미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같은 형식을 오래 이어왔다는 지속성과 그 안에서 얼마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최근 미술시장이 보여주는 변화도 이 대목과 연결해 볼 수 있다. 2025년 시장은 유명세와 높은 가격만으로 움직이던 과열 국면에서 벗어나 작품을 보다 선별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재편됐고, 동시에 새로운 구매층은 넓어졌다. 한 작가가 오래 활동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축적된 작업 안에서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환경이다.

구승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노란 머리 자체만은 아니다. 복잡한 생활에서 시작한 머리의 반복, 가까운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꽃, 내면을 담은 눈, 꽃을 움직이게 한 손과 이동하는 몸이 시간차를 두고 겹쳐졌다.

‘순간’에서 ‘행복으로’까지의 12년은 하나의 완성된 양식을 선언하기보다 같은 언어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움직여온 과정에 가깝다. 노란 머리와 작은 꽃이 앞으로도 계속 등장한다면 작품의 차이는 색이나 제목보다 인물이 맺는 관계와 행동, 주변 공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까지의 작품은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과 반복이 익숙함으로 굳을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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