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형 차체에 탄소섬유·510마력 엔진 적용

원형 재현보다 제작자와 주문자의 취향 앞세운 레스토모드

루이비통과 싱어가 2026년 8월 미국 페블비치에서 공개한 클래식 쿠페와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 두 차량은 964형 포르쉐 911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사진=루이비통
루이비통과 싱어가 2026년 8월 미국 페블비치에서 공개한 클래식 쿠페와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 두 차량은 964형 포르쉐 911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사진=루이비통

[KtN 김상기기자]사프란색 포르쉐 911의 지붕에는 트렁크와 스키, 서프보드를 실을 수 있는 전용 랙이 올라갔다. 대시보드 중앙에는 차에서 떼어 탁상시계로 쓸 수 있는 기계식 시계가 들어갔다. 좌석과 계기판, 운전복과 가방은 같은 색과 소재로 맞췄다.

옆에 선 흰색 카브리올레는 510마력 트윈터보 엔진을 품었다. 좌석 뒤 수납공간과 앞쪽 트렁크, 엔진 공간에는 클래식 모터보트의 갑판을 연상시키는 광택 목재가 쓰였다. 차량에 꼭 맞게 제작한 여행가방과 손목시계, 운전복과 헬멧도 함께 공개됐다.

루이비통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동차 복원업체 싱어가 2026년 8월 12일 미국 몬터레이에서 선보인 두 대의 911이다. 정식 명칭은 ‘포르쉐 911 리이매진드 바이 싱어–클래식’과 ‘포르쉐 911 리이매진드 바이 싱어–클래식 터보’다.

출발점은 오래된 964형 포르쉐 911이다. 싱어는 기존 차량을 해체해 차체를 보강하고 엔진과 외판, 서스펜션과 제동장치, 실내를 다시 구성했다. 루이비통은 외장 색상과 가죽, 계기판과 시계, 의류와 여행가방 제작에 참여했다.

완성된 두 차량은 출고 당시의 964형을 충실히 되살린 복원차와 거리가 있다. 원래의 강철 모노코크 위에 탄소섬유 외판을 얹고 출력과 주행장치를 현대화했다. 실내에는 1990년대 포르쉐에서 볼 수 없던 가죽 문양과 금속 스위치, 탈착식 시계가 들어갔다.

오래된 자동차를 보존하는 작업과 오래된 자동차를 이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작업 사이에 두 대가 놓였다.

원형을 되살리는 대신 다시 설계했다

사프란색 클래식 쿠페와 흰색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 같은 964형 911에서 출발했지만 엔진과 차체 형식, 소재를 다르게 구성했다. 사진=루이비통
사프란색 클래식 쿠페와 흰색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 같은 964형 911에서 출발했지만 엔진과 차체 형식, 소재를 다르게 구성했다. 사진=루이비통

자동차 복원은 통상 낡거나 손상된 차량을 출고 당시 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는 작업을 가리킨다. 원래 사용된 엔진과 외판, 색상과 실내 부품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존하거나 재현했는지가 평가 기준이 된다.

싱어의 작업은 방향이 다르다. 차량 소유자가 제공한 964형 911에서 외판과 실내, 엔진을 포함한 기계 부품을 들어낸다. 강철 모노코크만 남은 상태에서 차체를 점검하고 세척·보강한 뒤 탄소섬유 외판과 새 동력계, 현대식 서스펜션과 제동장치를 장착한다.

기반 차량의 차체와 차대번호는 남지만 완성차의 성능과 소재는 출고 당시 사양에서 크게 달라진다. 자동차 업계에서 레스토모드로 불리는 방식이다. 복원을 뜻하는 ‘리스토어’와 개조를 뜻하는 ‘모디파이’를 합친 말로, 오래된 차량의 형태를 살리면서 성능과 편의성을 현대화한 차를 가리킨다.

루이비통·싱어 차량은 레스토모드의 변경 범위를 의류와 시계, 여행용품까지 넓혔다. 차를 고치는 작업이 아니라 주문자의 취향에 맞춘 자동차와 소지품 일체를 새로 구성한 프로젝트에 가깝다.

같은 964형에서 390마력과 510마력으로

사프란색 클래식 쿠페에는 4.0ℓ 자연흡기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 들어갔다. 964형에 사용된 M64 메츠거 엔진을 발전시킨 동력계로, 최고출력은 390마력이고 최고 회전수는 분당 7500회다.

6단 수동변속기와 후륜구동 방식을 유지하면서 탄소세라믹 브레이크와 올린스 조절식 댐퍼를 적용했다. 17인치 푹스 스타일 휠에는 앞 225㎜, 뒤 265㎜ 타이어를 끼웠다. 탄소섬유 차체 뒤쪽에는 주행 속도에 따라 작동하는 날개를 설치했다.

클래식 쿠페의 지붕에 루이비통 트렁크를 실은 모습. 전용 랙에는 스키와 목재 상감 장식 서프보드도 장착할 수 있다. 사진=루이비통
클래식 쿠페의 지붕에 루이비통 트렁크를 실은 모습. 전용 랙에는 스키와 목재 상감 장식 서프보드도 장착할 수 있다. 사진=루이비통

흰색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에는 3.8ℓ 트윈터보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가변 터빈 방식의 터보차저 두 개와 수랭식 인터쿨러를 사용해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450파운드피트를 낸다.

6단 수동변속기를 통해 뒤쪽 바퀴를 굴리고, 높아진 출력에 맞춰 보쉬와 개발한 트랙션 컨트롤과 전자식 차체자세제어 장치를 넣었다. 964형이 출고되던 당시에는 없던 동력계와 주행 제어 기술이다.

두 차량은 오래된 911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성능은 당시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클래식 쿠페는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으로, 카브리올레는 510마력 트윈터보 엔진으로 갈라졌다. 원래 차량의 역사보다 완성차에 바라는 성격이 사양을 결정했다.

순정 부품의 자리 차지한 가죽과 금속

클래식 쿠페의 실내. 루이비통 가죽제품에서 가져온 자연색 소재와 말타주 문양, 코발트 블루 계기판을 적용했다. 사진=루이비통
클래식 쿠페의 실내. 루이비통 가죽제품에서 가져온 자연색 소재와 말타주 문양, 코발트 블루 계기판을 적용했다. 사진=루이비통

클래식 쿠페의 실내에는 루이비통 가방의 손잡이와 테두리에 사용되는 가죽에서 착안한 자연색 소재가 들어갔다. 좌석과 앞쪽 트렁크, 뒤쪽 엔진 공간에 새긴 마름모꼴 무늬는 루이비통 트렁크 안쪽의 말타주 문양을 따랐다. 좌석 통풍 구멍은 모노그램 꽃 형태로 가공했다.

문손잡이 가장자리에는 가죽제품의 단면을 처리하는 염색법을 적용했다. 조절 손잡이와 스위치, 잠금장치, 환기구는 금속으로 새로 제작하고 상당수 표면에 로듐 도금을 입혔다.

계기판은 코발트 블루 바탕과 밝은 주황색 글씨로 구성했다. 속도계와 회전계, 보조 계기의 바늘과 눈금에는 루이비통 탕부르 손목시계의 디자인을 반영했다.

클래식 쿠페 대시보드에 설치된 탈착식 기계식 시계. 차량에서 분리하면 탁상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루이비통
클래식 쿠페 대시보드에 설치된 탈착식 기계식 시계. 차량에서 분리하면 탁상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루이비통

대시보드 중앙의 기계식 시계는 루이비통 시계 제조 부문인 라 파브리크 뒤 떵 루이비통이 스위스에서 제작했다. 차량에서 분리하면 탁상시계로 쓸 수 있다. 베젤에는 루이비통을 구성하는 12개 문자를 새겼다.

실내를 구성하는 기준이 포르쉐의 출고 사양에서 루이비통의 제품 체계로 이동했다. 원래 부품과 색상을 재현하는 대신 가죽과 문양, 시계와 금속가공 기술로 주문자의 취향을 드러냈다.

자동차 밖에서도 같은 구성이 이어졌다. 루이비통은 차량별로 탕부르 오토매틱 손목시계와 운전복, 가죽 레이싱 재킷, 장갑, 신발, 탄소섬유·유리섬유 헬멧을 제작했다. 트렁크와 실내 수납공간에는 크기와 형태를 맞춘 가방을 넣었다.

복원의 결과가 자동차 한 대에서 끝나지 않고 운전자가 입고 차고 들고 다니는 물건으로 확장됐다.

911 터보에 모터보트를 섞은 카브리올레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싱어와 함께 디자인한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 흰색 차체에 금색 장식과 광택 목재를 적용했다. 사진=루이비통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싱어와 함께 디자인한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 흰색 차체에 금색 장식과 광택 목재를 적용했다. 사진=루이비통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는 니콜라 제스키에르 루이비통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가 싱어와 함께 디자인했다. 초기 911 터보인 930형의 차체와 클래식 모터보트의 소재를 결합했다.

차체는 파리 일대 건축물에 사용된 석회암에서 이름을 가져온 ‘칼케르 뤼테시앵’ 흰색으로 마감했다. 금색 장식을 더하고 뒤쪽에는 초기 911 터보를 연상시키는 넓은 웨일 테일 형태 날개를 달았다.

좌석 뒤 수납공간과 앞쪽 트렁크, 뒤쪽 엔진 공간에는 광택 목재가 들어갔다. 범퍼에도 목재 요소를 사용했다. 클래식 모터보트의 갑판을 자동차 안팎으로 옮긴 구성이다.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의 뒤쪽. 넓은 웨일 테일 형태 날개와 목재로 마감한 엔진 공간이 보인다. 사진=루이비통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의 뒤쪽. 넓은 웨일 테일 형태 날개와 목재로 마감한 엔진 공간이 보인다. 사진=루이비통

좌석 뒤에는 차량에 맞춘 가방과 접은 소프트톱을 보관한다. 앞쪽 트렁크에는 세 개의 전용 케이스가 서로 맞물려 들어간다. 차체 앞뒤 덮개는 핀 버클을 단 가죽끈으로 고정했다.

대시보드 시계와 짝을 이루는 40㎜ 탕부르 오토매틱 손목시계도 제작됐다. 세라믹과 옐로골드를 사용한 모델이다. 두 시계는 루이비통이 1896년 처음 선보인 ‘코프레 트레조르’를 바탕으로 제작한 보관함에 각각 넣을 수 있다.

1990년대 포르쉐의 원형을 보존하는 대신 제스키에르가 선택한 색과 소재, 루이비통의 시계와 트렁크 제작법이 차량의 성격을 결정했다.

연식·순정성에서 제작자·주문 사양으로

전통적인 클래식카 시장은 연식과 희소성, 순정 부품의 보존 상태를 중시해 왔다. 출고 당시의 엔진과 차체, 색상과 실내가 얼마나 남았는지가 차량 이력과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레스토모드는 다른 기준을 내세운다. 원래 부품을 얼마나 남겼는지보다 누가 차체를 보강하고 엔진을 개발했는지, 어떤 사양과 소재를 적용했는지가 앞에 놓인다. 오래된 차의 가치를 과거의 상태에서 찾기보다 현대 기술과 주문자의 취향을 더한 결과에서 찾는 방식이다.

Louis Vuitton and Singer Unveil Two Bespoke Porsche 911 Restorations.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Louis Vuitton and Singer Unveil Two Bespoke Porsche 911 Restorations.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루이비통·싱어 911에서는 제작자의 범위도 넓어졌다. 자동차 복원업체가 차체와 성능을 맡고 패션 하우스가 가죽과 시계, 의류와 수하물을 구성했다. 자동차의 연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이력이 더해졌다.

변경 범위가 넓어질수록 ‘무엇을 복원했는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클래식 쿠페의 390마력 엔진과 카브리올레의 510마력 트윈터보 엔진, 탄소섬유 외판과 현대식 전자제어 장치는 964형의 출고 사양을 재현한 결과가 아니다. 가죽과 계기판, 목재 수납공간도 원래 차량에 없던 요소다.

두 차량에 남은 것은 964형의 강철 모노코크와 911의 기본 윤곽이다. 나머지는 현대 기술과 제작자의 해석, 주문자의 취향으로 채웠다.

루이비통·싱어 911은 낡은 자동차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린 사례보다 클래식카를 새로운 고가 주문품으로 바꾸는 흐름에 가깝다. 오래된 차체는 보존 대상인 동시에 새로운 기술과 브랜드를 올리는 기반이 됐다.

누구를 위한 복원인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출고 당시의 964형을 남기려는 소유자에게는 원형에서 멀어진 개조차다. 현대 도로에서 더 높은 성능과 개인 취향을 원하는 주문자에게는 오래된 911의 형태를 이용한 새로운 자동차다.

루이비통과 싱어가 공개한 두 대는 어느 한쪽의 기준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클래식카의 가치가 연식과 순정성에서 제작자와 주문 사양으로 이동하는 지점에 서 있다.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는 레스토모드 시장이 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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