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들어왔지만 업무와 권한은 그대로
글로벌 리더 86% “일상 업무 적용 준비 부족”…6곳 중 1곳은 최고경영진 책임자도 없어
[KtN 최기형기자]기업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이 인공지능을 업무에 투입하고 있지만 비용과 매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확인한 기업은 두 곳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술 도입 속도를 업무 절차와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AI 투자가 개별 직원의 작업을 돕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맥킨지가 2026년 2월 발간한 ‘조직의 현주소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조직의 88%가 적어도 일부 업무에 AI를 도입했다. 그러나 81%는 손익에서 의미 있는 개선 효과를 보고하지 못했다. 미국 기업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별도 조사에서도 생성형 AI 도입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1%에 그쳤다. AI를 활용해 매출을 5% 넘게 늘렸다는 응답도 19%였다.
상당수 기업은 보고서 작성, 자료 검색, 회의 요약, 코드 생성처럼 개인의 작업 시간을 줄이는 데 AI를 활용한다. 여러 부서가 관여하는 업무 전체를 다시 설계하거나 AI 에이전트를 핵심 절차에 투입하는 작업은 계획 또는 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맥킨지는 AI가 기존 조직에 덧붙이는 범용 도구에 그쳐서는 생산성 향상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영업이나 구매, 재무, 고객관리 같은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고 사람과 AI가 담당할 부분을 새로 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존 절차를 유지한 채 일부 단계만 자동화하면 앞단에서 줄인 시간을 검토와 재입력, 승인 과정에서 다시 소모할 수 있다.
기업 스스로 평가한 준비 수준도 낮았다. 조사에서 리더의 86%는 소속 조직이 AI를 일상 업무에 적용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AI 도입을 명확하게 책임지는 최고경영진이 없는 조직도 6곳 중 1곳이었다. 경영진이 분명한 전략과 실행계획을 갖고 AI 도입과 실험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AI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은 기술 성능에 국한되지 않았다. 관련 문항에 응답한 3763명 가운데 46%는 편향과 지식재산권, 일자리 대체 등 AI 자체에 대한 우려를 장애물로 꼽았다. 규제·윤리·법률 문제는 44%, 변화관리 등 조직 문제는 39%였다. 데이터와 모델을 확보하더라도 책임과 권한, 업무 기준을 정하지 못하면 전사 확산이 어렵다는 의미다.
AI 투자와 조직 운영을 따로 추진한 데 따른 부담도 나타났다. 경영진은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요구하지만 현업은 기존 업무를 수행하면서 AI 사용법까지 익혀야 한다. AI가 만든 결과를 검증하고 오류 발생 시 책임질 주체도 정해야 한다. 직무기술서와 평가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직원이 검증되지 않은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유인은 줄어든다.
보고서는 기술 전환과 조직 전환을 함께 추진하는 ‘이중 전환’을 제시했다. AI 모델과 데이터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업무 흐름, 역할, 의사결정권, 인재 운영방식을 바꾸는 접근이다. AI를 개인용 보조 도구로 배포하는 단계를 넘어 부서와 기능을 가로지르는 업무 전체를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투자 배분도 기술 중심에서 조직 중심으로 넓혀야 한다. 보고서는 AI 전환 과정에서 기술에 1달러를 쓸 때 사람에게 5달러를 투입해야 한다는 기존 연구를 인용했다. 교육비뿐 아니라 직원이 AI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역할을 바꾸고, 관리자의 책임을 조정하며, 현업이 실험에 참여할 시간을 확보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
성과 측정은 이용자 수나 생성된 문서 수를 넘어야 한다. 업무 처리시간, 오류율, 고객 응답시간, 매출, 운영비처럼 도입 전후를 비교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인력이 줄지 않았더라도 같은 인원으로 처리량과 품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측정해야 한다. 절감한 시간을 기존 업무량 확대에만 사용했는지, 새로운 제품과 고객 서비스 개발에 투입했는지도 성과를 가르는 요소다.
AI 도입 기업 가운데 일부는 기대효과를 비용 절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업무 전반에 들어오면 직무와 관리자 역할도 바뀐다. 행정 업무에서 벗어난 관리자는 인력 육성과 판단, 부서 간 조정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신입 직원이 맡던 기초 업무가 자동화되면 숙련 인력을 길러내는 경로도 새로 마련해야 한다. 단기간의 인건비 절감과 장기적인 역량 축적이 충돌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사는 2025년 6월부터 9월까지 직원 1000명 이상 조직의 리더와 관리자 1만1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미국 3017명을 비롯해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중국 등 16개국 응답자가 참여했다. 한국은 조사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응답자가 자사 조직의 준비도와 성과를 평가한 조사라는 한계도 있다. AI 도입 효과를 기업 재무제표와 직접 대조한 실증 분석은 아니다. 전체 조사 인원은 1만18명이지만 AI 장애물처럼 일부 문항은 별도 응답자 집단을 대상으로 했다. 보고서 도입부에는 조사 범위가 15개국·16개 산업, 부록에는 16개국·17개 산업으로 달리 표기돼 있다.
국내 기업의 성과는 AI 투자액과 운영비, 업무시간, 오류율, 매출 변화를 도입 전후로 비교해야 드러난다. AI 모델 도입에 앞서 성과 책임자와 대상 업무, 측정 지표를 정한 기업만 기술 투자를 재무성과로 연결할 수 있다. 책임과 업무 재설계가 빠진 AI 투자는 도입 건수만 늘린 채 손익계산서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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