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 위해 만들어진 향이 가장 오래 남는 것과 만날 때…메종 마르지엘라 REPLICA가 건드린 기억과 소비의 역설

[향수, 기억을 팔다①] 메종 마르지엘라 REPLICA, 향료 대신 ‘시간과 장소’를 상품으로.  사진=Maison Margiel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향수, 기억을 팔다①] 메종 마르지엘라 REPLICA, 향료 대신 ‘시간과 장소’를 상품으로.  사진=Maison Margiel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향수는 이상한 사치품이다. 가방처럼 형태가 남지도 않고, 보석처럼 대를 이어 물려줄 수도 없다. 피부에 뿌리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몇 시간이 지나면 향은 옅어지고, 병 속 액체도 사용할수록 줄어든다. 그런데 사람은 때로 오래 간직한 물건보다 한순간 스쳐간 냄새를 더 정확하게 기억한다. 어느 계절의 공기, 한 사람의 옷깃, 다시 갈 수 없는 방의 냄새가 향 하나로 돌아온다.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역설이 향수의 본질에 가까이 있다.

오랫동안 향수 산업은 꽃과 나무, 수지와 향신료를 다루는 기술로 성장했다. 장미의 품종과 재스민의 산지, 우드의 깊이와 머스크의 질감이 한 병의 가치를 설명했다. 조향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를 비율과 시간으로 조율했고, 향수는 피부 위에서 전개되는 하나의 구성으로 평가받았다. 좋은 향수를 말할 때 원료와 농도, 지속력과 잔향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지금 향수를 둘러싼 언어는 그보다 훨씬 멀리 나간다. 향료를 설명하는 대신 아침을 말하고, 장소를 말하고, 어떤 방의 온도와 한때 존재했던 분위기를 말한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REPLICA는 흐름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Lazy Sunday Morning’, ‘Jazz Club’, ‘By the Fireplace’. 꽃이나 나무의 이름 대신 일요일 아침과 재즈클럽, 벽난로 앞이라는 시간이 향수 이름이 됐다.

‘Lazy Sunday Morning’에는 플로렌스의 밝은 아침과 갓 세탁한 리넨이 놓인다. ‘Jazz Club’에는 뉴욕의 늦은 밤과 술, 음악이 따라붙는다. ‘By the Fireplace’는 샤모니의 겨울과 장작불의 온기를 불러낸다. 소비자가 먼저 마주하는 것은 향료의 배합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살아본 듯한 한때의 삶이다.

향수는 여기서 냄새를 넘어 시간의 매개가 된다. 플로럴인지 우디인지 판단하기 전에 어느 시간에 머물고 싶은지를 선택하게 한다. 깨끗한 향을 사는 대신 아무 일도 없는 일요일 아침을 고르고, 따뜻한 향을 고르는 대신 문을 닫은 재즈클럽의 늦은 밤을 선택한다. 구매의 단위가 향조에서 생활의 순간으로 옮겨간다.

기억은 본래 상품이 될 수 없는 영역에 가까웠다.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조차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음악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빛을 기억하며, 다른 사람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냄새 하나를 오래 품는다. 기억에는 객관적인 원본도 없고 완벽한 복제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제 있었던 일과 지금 기억하는 일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기억에 ‘REPLICA’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묘하다. 복제할 수 없는 것을 복제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병 속에는 실제 플로렌스의 일요일도, 뉴욕의 밤도, 샤모니의 벽난로도 없다. 화학과 천연 원료로 구성된 향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름과 향이 만나면 존재하지 않았던 개인의 기억까지 움직이기 시작한다.

플로렌스에서 늦잠을 잔 적 없는 사람도 ‘Lazy Sunday Morning’을 자기 기억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뉴욕의 재즈클럽에서 위스키를 마신 적이 없어도 ‘Jazz Club’이라는 밤을 상상할 수 있다. 기억을 재현한다기보다 기억할 만한 삶의 형태를 미리 제공하는 방식이다. 향수는 지나간 시간을 불러내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빌려주는 물건이 된다.

현대 소비가 욕망을 다루는 방식도 여기에 겹친다. 과거의 사치가 희귀한 물질을 소유하는 데 가까웠다면 지금의 사치는 원하는 삶의 분위기를 선택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느 도시에서 어떤 아침을 보내고 싶은지, 어떤 음악이 흐르는 방에 머물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가 상품에 붙는다. 물질보다 경험이 앞서고, 경험보다 이미지가 먼저 도착하는 시대다.

향수는 이런 소비에 유난히 잘 맞는다.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물건보다 상상의 여지가 크다. 향수병을 손에 쥐어도 안에 든 향은 형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더 그렇다. 직접 맡을 수 없는 상품을 팔려면 언어와 이미지가 먼저 향을 대신해야 한다. ‘머스크와 알데히드를 사용한 향수’보다 ‘갓 세탁한 침구에서 보내는 일요일 아침’이라는 말이 훨씬 빨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향수가 기억을 파는 순간에는 위험도 생긴다. 서사가 너무 아름다우면 향 자체는 그 뒤에 숨을 수 있다. 도시 이름과 음악, 여행과 사랑의 기억을 정교하게 붙였다고 조향까지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향수는 결국 피부에서 냄새로 존재해야 한다. 이름이 먼저 만들어놓은 세계를 실제 향이 견디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잘 만든 문장과 예쁜 병뿐이다.

REPLICA가 흥미로운 이유는 향과 서사의 관계를 한 번 더 뒤집는 데 있다. 브랜드가 기억을 완성해 소비자에게 건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플로렌스와 뉴욕, 샤모니의 기억으로 시작하지만 향수를 오래 사용하면 원래의 설정은 조금씩 밀려난다. 여행지에서 계속 뿌렸다면 다른 도시의 향이 되고, 특정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사용했다면 어느 관계의 향이 된다. 매일 출근 전에 뿌렸다면 몇 년 뒤에는 직장과 계절, 당시의 자기 모습을 불러내는 냄새가 된다.

브랜드가 만든 기억 위에 개인의 기억이 다시 쌓이는 것이다.

같은 병에서 나온 같은 향인데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산업은 동일한 제품을 수만 병 만들 수 있지만 동일한 기억까지 생산할 수는 없다. 대량생산된 향수가 개인에게 들어가는 순간 다시 하나뿐인 물건이 되는 역설이 생긴다.

향수가 다른 명품과 구별되는 부분도 여기 있다. 가방과 시계는 시간이 지나면 흠집과 마모가 사용자의 시간을 기록한다. 향수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 액체는 줄어들고 향은 사라진다. 대신 사용자의 몸과 기억 쪽에 흔적을 남긴다. 물건이 시간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간을 보존하게 만든다.

그래서 빈 향수병은 묘한 물건이다. 내용물은 사라졌는데 병을 열면 아주 희미한 냄새가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그 작은 잔향이 몇 년 전의 계절을 되살린다. 당시 듣던 음악과 자주 만나던 사람, 입고 다니던 옷까지 따라올 수 있다. 향수가 소유의 물건이면서 동시에 상실의 물건인 이유다. 사용할수록 없어지지만 없어질수록 기억은 늘어난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향수를 넘어 핸드크림과 캔들까지 REPLICA의 영역을 넓히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By the Fireplace’가 캔들이 되면 피부에 머물던 겨울의 기억이 방 전체로 옮겨간다. ‘Up At Dawn’이 핸드크림이 되면 새벽의 장미라는 설정이 손을 씻고 다시 크림을 바르는 일상적인 행동과 결합한다. 향을 만나는 순간이 외출 전 몇 번의 분사에서 생활의 여러 시간으로 늘어난다.

향수를 둘러싼 산업의 욕망도 읽힌다. 기업은 하나의 향을 더 오래, 더 자주 소비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같은 이야기를 향수와 캔들, 바디케어로 확장하면 소비자가 브랜드와 만나는 횟수도 많아진다. 기억이라는 가장 사적인 영역이 반복 구매를 만드는 산업의 자산으로 바뀌는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마케팅으로 환원하면 향수가 가진 특수성을 놓친다. 기업은 기억의 이름을 만들 수 있지만 소비자가 그 향과 어떤 시간을 살아갈지는 정할 수 없다. 브랜드는 ‘Lazy Sunday Morning’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어도, 몇 년 뒤 그 향을 맡은 사람이 누구를 떠올릴지는 통제하지 못한다. 시장이 기억의 입구를 만들 수는 있어도 기억의 결말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바로 그 틈에 향수의 매력이 남는다.

우리는 시간을 소유할 수 없다. 지나간 아침을 다시 살 수도 없고, 떠난 사람과 같은 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사진과 글은 그때의 모습을 남기지만 당시의 공기까지 그대로 데려오지는 못한다. 향은 드물게 그 거리를 무너뜨린다. 논리적으로 기억해내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본다.

향수 산업은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상품화한다. 꽃을 파는 데서 분위기를 팔고, 분위기를 파는 데서 기억과 정체성을 파는 쪽으로 넘어왔다. 향수 한 병은 더 이상 ‘무슨 향이 나는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시간을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까지 묻는 상품이 됐다.

그래도 끝까지 남는 것은 향수의 오래된 역설이다. 기억은 살 수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향수병을 산다고 플로렌스의 어느 아침이나 뉴욕의 어느 밤을 소유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몇 시간 동안 피부에 머물다 사라질 향뿐이다.

그런데 때로 그 몇 시간이 몇 년보다 오래간다.

기억을 파는 시대의 향수가 가장 값비싸게 다루는 것은 결국 향료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향수는 시간을 붙잡아두지 못한다. 다만 사라지는 냄새 하나를 남겨두고, 언젠가 기억이 다시 그 길을 찾아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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