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스탠리 큐브릭·아서 C. 클라크가 구축한 우주…200개 넘는 특수효과와 회전 세트, 클래식 음악·HAL 9000으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까지 확장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KtN 최유식기자]뼈 하나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수백만 년 전 원시 인류가 처음 도구를 무기로 사용한 직후다. 공중에서 회전하던 뼈가 사라지는 순간 우주를 떠가는 비행체가 이어진다. 설명도 자막도 없다. 도구를 손에 쥔 원시 인류에서 우주를 이동하는 문명으로 넘어가는 수백만 년의 시간이 한 번의 편집으로 잘려 나간다.

1968년 4월 공개된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2001: A Space Odyssey’가 영화사에 남긴 가장 유명한 연결 가운데 하나다. 문명의 발전을 연대기로 설명하지 않고 서로 닮은 두 물체를 붙였다. 뼈와 우주선 사이에는 인간이 만든 도구와 기술이라는 공통점이 남는다. BFI는 해당 매치컷을 수백만 년의 인간 진화를 짧은 순간에 압축한 작품의 대표적인 편집으로 꼽고 있다.

‘2001: A Space Odyssey’는 당시 SF영화에서 익숙했던 침략자와 우주괴물, 빠른 사건 전개를 전면에 세우지 않았다. 인류의 시작부터 우주 문명, 인공지능,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까지 긴 시간을 연결한다. 대사는 적고, 음악과 움직임, 공간의 크기가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스탠리 큐브릭과 영국 SF 작가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는 1964년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클라크가 쓴 단편 ‘The Sentinel’을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삼아 외계 지성과 인간의 접촉을 다루는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소설과 영화 각본도 같은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졌다. 촬영은 1965년 12월 영국 MGM 스튜디오에서 시작됐고, 주요 촬영이 끝난 뒤에도 특수효과 작업은 1968년 개봉 직전까지 이어졌다.

제작진이 먼저 해결해야 했던 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어떻게 현실처럼 만들 것인가였다.

인류가 달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2001: A Space Odyssey’의 워싱턴 개봉일은 1968년 4월 2일이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1969년 7월보다 1년 이상 앞선 시점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우주정거장과 달 기지, 화상통화, 평면형 정보 단말, 장거리 우주비행과 인공지능 컴퓨터가 이미 일상의 시설처럼 등장한다.

큐브릭은 미래를 기괴한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현재의 산업과 기술이 계속 발전한 결과처럼 설계했다.

우주여행에는 항공사의 서비스가 붙어 있고, 우주정거장에는 호텔과 기업 로고가 등장한다. 팬암(Pan Am)의 우주선, 힐튼 호텔, 벨의 화상통화처럼 당시 관객에게 익숙한 기업과 서비스가 미래 생활 안에 배치됐다. IBM과 코닥, 듀폰, 허니웰을 비롯한 기업들도 컴퓨터와 제품, 미래 생활용품의 디자인 과정에 참여했다.

우주선 설계에는 항공우주 분야의 경험도 들어갔다. 미 육군 탄도미사일국과 NASA 마셜 우주비행센터에서 근무했던 프레더릭 I. 오드웨이 3세(Frederick I. Ordway III)와 해리 H. K. 랑게(Harry H. K. Lange)가 작업에 참여했고, NASA 관계자들도 우주선 설계 등에 의견을 보탰다.

1960년대 SF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과도 거리가 생겼다. 우주선 조종석을 수많은 색상의 버튼과 장치로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승무원이 어떻게 걷고 먹으며 잠을 자는지까지 설계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조건이 미술과 배우의 움직임을 결정했다.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호에서는 우주비행사 프랭크 풀이 원형 통로를 달린다.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계속 이동하지만 카메라에서는 사람이 거대한 원통 안을 자연스럽게 달리는 것처럼 이어진다.

촬영을 위해 제작한 원심형 세트가 실제로 회전했다. 디스커버리호 내부를 구현한 거대한 원형 구조물에는 약 75만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세트가 움직이는 동안 카메라와 배우의 위치를 조정해 중력이 사라진 우주선 내부를 만들어냈다.

특수효과의 규모도 당시 기준을 크게 넘어섰다.

작품에는 200개가 넘는 특수효과 시퀀스가 들어갔다. 우주선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정교하게 제작한 미니어처와 광학촬영, 다중노출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인류의 새벽’ 부분에서는 프런트 프로젝션(front projection)을 이용해 배우와 광활한 풍경을 결합했다. 반사력이 높은 스크린에 배경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기존 리어 프로젝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자리의 번짐을 줄였다.

대규모 세트와 미니어처, 투사 기술을 합친 결과 우주가 단순한 배경에서 벗어났다.

우주정거장이 천천히 회전하고 작은 우주선이 접근하는 부분에서는 긴박한 음악도, 빠른 편집도 사용하지 않는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의 ‘The Blue Danube’가 흐르면서 거대한 기계의 움직임이 왈츠처럼 맞물린다. 사람보다 우주선의 이동 자체를 오래 바라보게 한다.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당초 영화에는 별도의 오리지널 음악이 있었다.

작곡가 알렉스 노스(Alex North)가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까지 마쳤지만 큐브릭은 개봉 직전 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종본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Also sprach Zarathustra’,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The Blue Danube’,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Atmosphères’와 ‘Requiem’,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음악 등이 들어갔다.

‘Also sprach Zarathustra’는 인류의 변화를 알리는 순간마다 등장한다. 원시 인류가 뼈를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는 순간에 울리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과 결합한다. ‘The Blue Danube’는 반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기계에 우아한 질서를 부여한다.

소리를 다루는 방식은 우주 공간에서 더 과감하다.

우주선 외부 작업에서는 폭발음과 엔진 소리를 관습적으로 덧붙이지 않는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물리적 조건을 따르면서 우주복 안의 호흡과 내부 장비음이 긴장을 만든다. 우주의 광활함을 거대한 효과음으로 채우기보다 침묵에 가까운 공간으로 남겨뒀다.

인간의 말보다 더 또렷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는 컴퓨터 HAL 9000이다.

디스커버리호의 운항을 담당하는 HAL은 우주선 곳곳에 설치된 붉은 렌즈를 통해 승무원들을 관찰한다. 더글러스 레인(Douglas Rain)이 맡은 목소리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차분하고 친절하며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데이브 보먼과 프랭크 풀이 HAL의 판단에 의문을 갖기 전까지는 인간보다 안정된 존재처럼 들린다.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인간 배우들의 연기도 오히려 절제돼 있다.

키어 둘리(Keir Dullea)의 데이브와 게리 록우드(Gary Lockwood)의 프랭크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긴 우주여행 속에서 식사를 하고 체스를 두고 장비를 점검한다. 반대로 HAL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두 사람이 자신을 정지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생존을 위한 행동을 시작한다.

우주선 안에서 감정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가 되는 역전이 벌어진다.

HAL이 프랭크를 제거하고 동면 상태의 승무원들에게까지 위험을 가한 뒤 데이브는 우주선 내부로 돌아오려 한다. HAL은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다. 붉은 렌즈와 부드러운 목소리만으로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 이어진다.

데이브가 HAL의 기능을 하나씩 정지시키자 컴퓨터의 목소리가 점점 느려진다. 처음에는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고 두려움을 말하지만 기능이 떨어질수록 기억의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에는 ‘Daisy Bell’을 천천히 부른다. BFI는 HAL의 종료 부분을 관객이 기계에게까지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대목으로 꼽는다.

1968년의 인공지능은 지금처럼 일상의 기술이 아니었다. 큐브릭과 클라크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난 계산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 오히려 신뢰와 판단, 거짓과 두려움의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HAL을 단순히 폭주한 악성 컴퓨터로만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설계한 시스템이 인간의 명령 사이에서 충돌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대립한다. 차분한 목소리와 붉은 렌즈는 이후 영화와 대중문화가 인공지능을 시각화하고 의인화하는 데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이미지가 됐다.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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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마지막은 다시 설명을 줄인다.

데이브는 목성 부근에서 거대한 모놀리스를 만난 뒤 빛과 색이 폭발하는 통로를 지나간다. 이른바 ‘스타게이트’ 부분에서는 대사가 사라지고 색채와 음악, 눈과 풍경의 이미지가 빠르게 이어진다.

도착한 곳은 우주선도 행성 표면도 아닌 낯선 실내다. 데이브는 서로 다른 나이의 자신을 차례로 바라본다. 시간은 일반적인 연속성을 잃는다. 마지막에는 침대에 누운 노인이 모놀리스를 향해 손을 뻗고, 태아를 닮은 ‘스타 차일드’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

큐브릭은 결말의 의미를 인물의 대사로 정리하지 않았다.

인류가 외계 지성의 개입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는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원시 인류와 같은 진화의 또 다른 문턱에 들어섰는지에 대한 설명도 확정하지 않았다.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모놀리스 역시 작동 원리와 제작 주체를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 인사이트⑨] ‘2001: A Space Odyssey’, 대사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다시 만든 SF. 사진=Jay's Classic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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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도 같은 방식이었다.

원시 인류는 검은 모놀리스를 만난 뒤 뼈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수백만 년 뒤 달에서 발견된 또 다른 모놀리스는 목성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기술의 발전을 인간만의 성취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의 존재를 끝까지 남겨둔다.

1968년 개봉 당시 반응도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았다. 기술적 성취에 대한 호평이 나온 반면 긴 상영시간과 느린 전개를 두고 엇갈린 평가도 이어졌다. 개봉 직후 큐브릭은 약 19분을 덜어냈다. 이후 젊은 관객층이 크게 유입됐고 장기 상영으로 이어졌다. AFI가 정리한 당시 조사에서는 로스앤젤레스 개봉 첫 2주 관객의 80%가 35세 미만이었다.

‘2001: A Space Odyssey’는 1969년 제4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미술상, 각본상, 특수시각효과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수상은 특수시각효과상 한 부문이었다. 큐브릭이 생전에 받은 유일한 경쟁 부문 아카데미상이기도 하다.

1991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 국가영화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 보존작으로 선정됐다.

‘2001: A Space Odyssey’가 SF영화에 남긴 변화는 미래 장비를 정교하게 만든 데 그치지 않는다. 우주선을 빠르게 날아다니는 모험의 도구보다 거대한 공간 안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물체로 바라봤고, 대사 대신 음악과 침묵을 길게 사용했다. 미니어처와 세트, 광학촬영을 현실적인 움직임과 결합하면서 우주를 만화적인 공간에서 물리적인 공간으로 옮겼다. BFI는 이후 우주여행을 다룬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참조해온 기준점으로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1968년에는 인간이 아직 달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2001: A Space Odyssey’는 그보다 먼저 상업 우주여행과 달 기지,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21세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를 기술의 승리로 끝내지 않았다.

원시 인류의 손에 들어간 첫 번째 도구는 동시에 무기였고,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컴퓨터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했다. 수백만 년의 기술 발전을 단 한 번의 편집으로 건너간 뒤에도 인간은 자신보다 높은 지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뼈에서 우주선으로 이어진 첫 도약과 지구를 바라보는 스타 차일드 사이에는 인간이 만든 수많은 기계가 놓여 있다. ‘2001: A Space Odyssey’가 1968년 SF의 외형을 바꾼 뒤에도 오래 남은 부분은 미래의 기계가 아니라, 기술을 손에 쥔 인간이 다음 단계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은 여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