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B 광색으로 만든 나비와 아크릴 붓질로 쌓은 구름…디지털 빛과 회화의 물성이 한 캔버스에서 교차
알을 깨고 솟아오르는 비상의 형상…상실 이후 다시 열리는 존재와 인식의 변화

[KtN 박준식기자]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14년작 ‘부활 014128(Rebirth 014128)’에는 거대한 나비가 구름 사이로 날개를 펼친다. 나비의 내부에는 분홍과 보라, 청록을 비롯한 밝은 색들이 잘게 나뉘어 겹치고, 주변에는 붓으로 다시 그린 구름이 넓게 흐른다. 나비의 매끈하고 선명한 광색과 구름의 부드러운 안료층이 한 작품 안에서 서로 다른 깊이를 만든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부활 014128(Rebirth 014128)’, 2014, 프린트 캔버스에 아크릴, 194×130㎝. RGB 빛으로 구성한 나비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 뒤 주변의 구름을 아크릴 물감으로 다시 채색했다. 나비의 밝고 매끄러운 광색과 붓질이 남은 구름의 물성을 한 작품에서 결합한 ‘부활’ 연작이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부활 014128(Rebirth 014128)’, 2014, 프린트 캔버스에 아크릴, 194×130㎝. RGB 빛으로 구성한 나비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 뒤 주변의 구름을 아크릴 물감으로 다시 채색했다. 나비의 밝고 매끄러운 광색과 붓질이 남은 구름의 물성을 한 작품에서 결합한 ‘부활’ 연작이다.

나비는 배경 속에 작게 들어간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작품의 중심을 크게 차지한다. 두 날개는 좌우로 열리고 몸은 위쪽을 향한다. 날개 안쪽에 들어간 색은 일반적인 나비의 무늬보다 빛의 조각을 모아 만든 구조에 가깝다. 각각의 색이 독립적으로 밝게 살아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발광하는 형상을 만든다.

이 나비는 처음부터 캔버스 위에서 물감으로 완성된 형상이 아니다. 김현정 작가는 RGB(Red·Green·Blue) 광원을 이용해 빛의 색으로 나비 이미지를 먼저 구성하고, 이를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 캔버스에 옮겼다. ‘날으는 빛’과 ‘무한’ 연작에서 이어진 실제 광원에 대한 실험이 ‘부활 014128’에서는 프린트된 나비의 색 안에 들어온다.

RGB 빛이 만들어낸 나비에는 안료 혼합과 다른 밝음이 남는다. 빛의 삼원색은 서로 겹칠수록 밝아지는 성질을 갖고 있어 분홍과 청록, 보라를 비롯한 여러 색이 탁해지기보다 내부에서 빛나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김현정 작가가 2005년 ‘프라하의 창’ 이후 계속 탐색해온 맑고 투명한 색의 문제도 이 나비 안에서 다시 이어진다.

주변의 구름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프린트된 이미지 위에 아크릴 물감을 직접 올리면서 붓의 움직임과 안료의 두께를 되살렸다. 구름은 나비처럼 매끄럽고 균질한 광색으로 처리되지 않고, 색이 서로 스미고 겹치며 회화적인 표면을 형성한다. 빛으로 만들어진 나비와 물감으로 그린 구름이 서로 다른 물성을 유지한 채 한 공간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서 디지털과 회화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는 관계로 놓이지 않는다. RGB의 밝음은 나비의 내부에 남고, 아크릴 안료는 구름의 깊이와 흐름을 맡는다. 프린트된 표면 위에 다시 붓질을 올리면서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와 손으로 그린 회화 사이를 오간다.

‘제로’ 연작과 비교하면 물성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졌다. ‘제로’에서는 자개와 탑코트 같은 광택 재료를 이용해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표면이 달라지는 효과를 만들었다. ‘부활 014128’에서는 매끄럽게 프린트된 나비를 그대로 두면서 그 주변에 직접 붓질한 구름을 더했다. 광택과 프린트의 평활한 표면에서 다시 붓의 흔적과 안료의 질감을 끌어들인 변화다.

나비와 구름의 관계는 작품 제목 ‘부활’과도 맞물린다. 나비는 알과 번데기를 거쳐 전혀 다른 형태로 나오는 생명체다. 김현정 작가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나비에는 자유와 비상, 변화와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겹쳐 있다. ‘부활 014128’에서는 날개를 완전히 펼친 나비가 구름을 지나 위쪽으로 솟아오르며 변화의 순간을 크게 확대한다.

‘부활’이라는 제목에는 작가가 겪은 상실의 시간도 들어 있다. 김현정 작가에게 부활은 사라졌던 존재가 동일한 형태로 되돌아오는 의미보다, 상실을 지나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과 감각이 다시 열리는 과정으로 깊어졌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경험한 뒤에도 기억과 관계는 다른 방식으로 남고, 삶은 새로운 인식 속에서 다시 이어진다는 사유가 작업의 배경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작품 속 나비의 비상도 단순한 상승 운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알과 번데기의 시간을 지나 날개를 얻는 나비처럼,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변화가 작품의 중심에 있다. 밝은 나비 내부와 계속 형태를 바꾸는 구름이 만나면서 고정된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구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름은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고 빛을 받아 매 순간 다른 색을 품는다. 작품에서는 붓질과 안료의 겹침이 이런 변화의 감각을 만든다. 명확한 윤곽을 가진 나비와 유동적인 구름이 대비되면서 나비의 상승 방향은 더욱 또렷해지고, 주변 공간에는 계속 움직이는 듯한 깊이가 생긴다.

‘무한 7’과 ‘무한 8’에서 실제 LED가 작품 속에서 점등되고 색을 바꾸며 시간성을 만들었다면 ‘부활 014128’에서는 빛의 순간을 다시 회화 안으로 가져온다. 광원이 직접 켜지고 꺼지는 대신 RGB로 만들어진 발광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정착시키고, 그 주변을 다시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다. 실제 빛을 회화 밖으로 확장했던 실험이 다시 안료와 캔버스의 물성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움직임은 김현정 작가의 작업에서 매체가 한 방향으로만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물감에서 LED로, 평면에서 입체로 이동한 뒤 이전 매체를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사진과 프린트, 아크릴과 광원, 회화와 디지털 이미지를 필요에 따라 다시 결합한다. ‘부활 014128’은 실제 빛과 안료의 색을 한 화면에 공존시키면서 서로 다른 매체의 장점을 동시에 끌어낸다.

나비 내부의 밝음도 이런 결합에서 더 강하게 살아난다. 주변 구름에는 붓질의 농담과 질감이 남아 있어 빛이 흡수되는 듯한 깊이가 생기고, 나비는 평활하고 선명한 광색으로 그 사이에서 앞으로 떠오른다. 구름이 물질의 무게를 만든다면 나비는 그 무게를 뚫고 나오는 빛의 형상처럼 자리한다.

‘부활 014128’에서 중요한 것은 나비가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보다 나비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2006년 ‘첫 만남’에서는 장지 위 분채로 그린 나비가 꽃에 내려앉았고,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실제 광원을 이용해 나비를 빛의 색으로 바꿨다. 2012~2013년 ‘무한’ 연작에서는 LED가 작품 내부로 들어가 점멸하고 색을 변화시켰다. 2014년 ‘부활 014128’에서는 그동안 축적한 광색의 경험을 프린트 이미지로 옮긴 뒤 다시 붓과 안료를 불러들였다.

빛과 물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둘 사이의 차이를 작품 안에 남긴 것이다. 나비에는 광원의 기억이 있고 구름에는 손으로 그린 회화의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제작과정이 같은 캔버스 위에서 만나면서 나비의 비상은 디지털 이미지와 전통적인 회화 행위 사이를 함께 지나간다.

김현정 작가가 이후 발전시킨 ‘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의 흐름에서도 이 작품은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빛은 단순히 밝은 효과를 만드는 시각 요소에서 존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내적 에너지로 깊어진다. ‘부활’은 몸의 재생보다 생각과 인식이 다시 열리고, 상실 이후 새로운 삶의 방향이 시작되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부활 014128’의 나비는 빛으로 만들어졌고 구름은 다시 붓으로 그려졌다. 디지털 광색의 선명함과 안료의 물성이 한 캔버스에서 만나는 순간, 나비의 비상은 단순한 날갯짓을 넘어 한 존재가 상실의 시간을 지나 다시 세계를 향해 열리는 움직임으로 깊어진다. 김현정 작가에게 부활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빛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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