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중앙의 나비와 LED, 사방으로 번지는 빛…회화의 물성과 실제 광원이 만난 2017년
‘무한’의 움직이는 빛에서 고요한 내면의 빛으로…‘별과 별사이’ 연작의 출발
[KtN 박준식기자]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17년작 ‘별과 별사이 1705’정사각형 안에 넓은 청록과 작은 빛 하나를 놓는다. 중앙에는 나비가 자리하고, 실제 LED 광원이 그 안에서 밝게 발한다. 중심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빛은 사방으로 퍼지고, 짙은 청록 계열의 바탕은 그 주변을 깊고 고요하게 감싼다.
작품의 무게는 중앙보다 오히려 중앙을 둘러싼 넓은 청록에서 먼저 만들어진다. 짙고 탁한 푸른색과 청록이 여러 농도로 겹치고, 캔버스에는 매끈하게 정돈된 색면보다 붓과 혼합재료가 지나간 흔적이 남는다. 밝은 색을 넓게 펼치기보다 어두운 색의 깊이를 충분히 확보한 뒤, 그 한가운데에서 작은 빛이 발생하도록 구성했다.
중앙의 나비는 크지 않다. ‘첫 만남’이나 ‘날으는 빛’, ‘무한’ 연작에서 나비가 작품의 주요 형상으로 크게 등장했던 방식과 비교하면 상당히 응축돼 있다. 날개의 외곽은 빛에 둘러싸이고 형상의 세부는 중앙의 밝음 속으로 녹아든다. 나비를 자세히 묘사하는 대신 나비가 있는 자리에서 빛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더 강하게 남는다.
나비의 역할도 달라진다. 2006년 ‘첫 만남’에서는 꽃 위에 내려앉은 생명체였고,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RGB 광색과 투명한 재료를 통과하며 빛의 형상으로 변했다. 2012~2013년 ‘무한’ 연작에서는 LED를 내부에 품고 점등과 점멸, 색의 변화를 통해 시간과 운동을 얻었다. ‘별과 별사이 1705’에 이르면 나비의 움직임보다 나비 안에서 시작되는 빛 자체가 더 크게 부각된다.
빛은 중심에서 가느다란 선을 이루며 사방으로 뻗는다. 굵고 강한 광선이 바깥을 밀어내기보다 청록빛 표면 안으로 스며들듯 확산된다. 중심 가까이에서는 밝음이 강하고,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회화의 색과 뒤섞이며 흔적이 약해진다. 실제 광원과 물감이 서로 다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한 지점에서 만나도록 만든 구조다.
2012년 ‘무한 7’의 빛은 심장박동에 가까운 점멸을 통해 나비에 생명 리듬을 부여했다. 2013년 ‘무한 8’에서는 LED의 변화에 따라 ‘0’과 무한대(∞), 나비 날개의 형상이 서로 연결됐다. 당시의 빛에는 시간의 변화와 움직임이 강하게 작동했다.
‘별과 별사이 1705’에서는 속도가 한층 낮아진다. 빛은 여전히 실제 광원이지만 작품 전체는 빠른 이동보다 응축과 확산의 리듬을 갖는다. 중앙에 모인 밝음이 주변의 청록 속으로 천천히 번지고, 넓은 바탕은 그 빛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된다. 김현정 작가의 관심이 ‘움직이는 빛’에서 ‘머무르며 퍼지는 빛’으로 깊어지는 대목이다.
나비와 LED의 결합 방식에는 입체적인 구조도 들어 있다. 빛이 통과하고 굴절·반사될 수 있도록 나비 형상을 구성하고, 광원이 캔버스 표면과 주변 공간으로 함께 확산되도록 설계했다. 나비의 날개를 통과한 빛 일부는 캔버스의 색과 만나 새로운 색층을 만들고, 다른 빛은 작품 바깥 공간으로 퍼진다. 회화의 색과 실제 광원이 하나의 캔버스에서 동시에 작동하게 된 것이다.
이 구조 때문에 ‘별과 별사이 1705’는 조명이 켜진 회화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외부 조명은 완성된 작품을 관객에게 보이게 하지만, 작품 안의 LED는 색과 형태를 구성하는 재료 자체로 들어간다. 청록 안료와 혼합재료가 물질적인 깊이를 만들고, LED는 그 깊이 안에 실제 밝음을 발생시킨다.
캔버스 위의 물감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두께와 질감을 갖는다. LED에서 나온 빛은 고정된 물질의 형태를 갖지 않고 주변 밝기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강도로 감지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재료가 중앙의 나비에서 만난다.
제목 ‘별과 별사이’도 이 관계를 넓혀 읽게 한다. 밤하늘에서 별은 어둠 속에 떨어진 작은 빛으로 보인다. 별 하나의 크기보다 별과 별 사이에 펼쳐진 거대한 어둠이 우주의 깊이를 만든다. 김현정 작가는 별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넓은 청록의 공간과 중앙의 작은 빛을 이용해 비슷한 감각을 만든다.
정사각형은 우주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창보다 하나의 응축된 공간에 가깝다. 중앙에서 시작된 빛을 따라 시선을 안쪽으로 모으면, 작품은 먼 우주보다 내면을 향하는 구조로 바뀐다. ‘Interstellar’가 문자 그대로 별과 별 사이의 광대한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면, 작품 속 여정은 바깥 우주에서 사람 안의 깊은 공간으로 이어진다.
‘별과 별사이’ 연작에서 김현정 작가가 강조해온 ‘심안(心眼)’의 의미도 이 지점에서 연결된다. 눈앞의 광원을 물리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 빛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밝음을 발견하는 방향이다. 실제 LED는 감각적으로 먼저 들어오지만 시선은 곧 주변의 어두운 청록과 중앙의 작은 나비 사이를 오가며 한곳에 오래 머물게 된다.
빛을 향해 날아가던 나비가 이 작품에서는 스스로 빛의 중심이 됐다는 변화도 중요하다. 초기 작품에서 빛은 나비가 향하는 장소이거나 주변 환경을 밝히는 요소였다. ‘무한’ 연작을 거치면서 광원이 나비 내부로 들어왔고, ‘별과 별사이’에서는 나비와 빛을 분리해 읽기 힘들 정도로 둘의 관계가 가까워진다.
중앙의 밝은 점을 나비라고 읽을 수도 있고, 별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가까이에서는 날개의 형태가 살아나고, 거리를 두면 청록의 공간 안에 떠 있는 하나의 별빛에 가까워진다. 생명체와 천체, 작은 존재와 광대한 우주가 같은 중심을 공유한다.
이중적인 크기 감각은 작품의 중요한 긴장을 만든다. 나비는 실제로는 작은 존재지만 빛은 캔버스 밖까지 확장될 수 있다. 별 역시 밤하늘에서는 작은 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작품은 크기를 직접 비교하는 대신 ‘작게 보이는 빛 안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들어 있는가’를 나비와 별이라는 두 형상을 겹쳐 풀어낸다.
청록 계열의 색은 이런 깊이를 강화한다. 중앙의 흰빛과 노란빛 주변으로 청록이 짙어지면서 온도 차이가 생기고, 색이 어두워질수록 중심의 광원은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주변 조도가 낮아지면 LED의 존재감은 더 강해지고, 밝은 환경에서는 캔버스의 회화적 색과 질감이 상대적으로 앞에 선다. 같은 작품 안에서도 공간의 밝기에 따라 회화와 빛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이 변화는 관람자에게도 다른 감상 시간을 만든다. 밝은 공간에서는 안료의 층과 붓질을 먼저 읽고, 어두워질수록 나비 내부에서 나온 광원이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작품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면서 색의 깊이와 중심의 밝기가 함께 변한다.
‘별과 별사이 1705’는 이 연작의 초기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김현정 작가는 2017년부터 ‘별과 별사이’를 이어가며 회화의 물성과 실제 빛을 결합하는 실험을 계속했다. 2017년 작품에서는 LED를 회화의 매체로 직접 끌어들여 빛 자체를 조형 요소로 삼았고, 이후 작업에서는 반복적인 채색을 통해 회화의 결을 더욱 두껍게 쌓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2017년의 ‘1705’를 이후 작품과 똑같은 완성도로 읽기보다, 새로운 회화 구조가 시작된 지점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LED와 회화가 어느 정도까지 한 작품이 될 수 있는지, 광원이 물감과 어떤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를 직접 시험한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현정 작가에게 중요한 변화는 새로운 기술을 추가한 데 그치지 않는다. RGB 광원과 플렉시글라스, LED를 사용하면서도 계속 회화의 물성을 함께 가져갔다. 실제 빛이 강해질수록 캔버스의 질감이 사라지는 문제가 생기고, 회화의 물성을 너무 강하게 만들면 광원의 투명한 밝음이 약해진다. ‘별과 별사이’ 연작은 이 두 성질을 한 작품 안에서 조율해가는 긴 과정이 됐다.
‘별과 별사이 1705’의 청록 바탕과 중앙의 빛은 그 출발을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다. 넓은 어둠과 작은 밝음, 물감과 광원, 표면과 공간, 나비와 별이 한 중심에서 겹친다. 여러 이미지를 채우기보다 하나의 작은 발광점이 전체 작품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2006년 ‘첫 만남’에서 꽃에 머물던 나비는 2009년 ‘날으는 빛’에서 광색으로 변했고, ‘무한’ 연작에서는 실제 광원을 품었다. 2017년 ‘별과 별사이 1705’에서는 나비의 크기가 작아지는 대신 빛이 작품 전체로 퍼진다. 나비를 크게 그려 존재를 강조하던 방식에서 작은 존재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시선이 이동한 것이다.
김현정 작가가 이후 ‘별과 별사이’를 내면의 빛과 연결해 확장한 흐름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바깥의 화려한 광원을 바라보는 대신, 어둠 속에서 한 점의 빛을 발견하고 그 밝음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따라가는 작업이다. 연작은 2017년부터 이어지며 회화와 빛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변주해왔다.
‘별과 별사이 1705’의 중심에는 작은 나비가 있다. 그러나 작품을 오래 바라볼수록 남는 것은 나비의 세부보다 그 자리에서 시작돼 청록의 깊은 색 속으로 퍼지는 빛이다. 김현정 작가의 나비는 이 작품에서 빛을 찾아 날아가는 존재를 지나 스스로 하나의 별이 된다. 넓은 어둠 속 작은 광원이 캔버스 전체의 깊이를 바꾸듯, ‘별과 별사이 1705’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보다 존재 안에서 시작되는 빛을 회화의 중심으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