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470만 달러로 당시 작가 최고가 기록…아터제 호수의 여관과 숲 담은 후기 풍경화, 11월 17일 뉴욕 크리스티 출품
[KtN 임민정기자]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풍경화 '리츨베르크켈러(Litzlbergkeller)'가 29년 만에 경매시장에 다시 나온다. 1997년 뉴욕 소더비에서 1470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클림트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이다. 크리스티는 오는 11월 17일 뉴욕에서 열리는 20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에 작품을 출품한다. 추정가는 6000만~8000만 달러로, 상단 기준 1997년 낙찰가의 약 5.4배에 이른다.
1915~1916년에 제작된 '리츨베르크켈러'는 클림트가 말년에 머물렀던 오스트리아 아터제(Attersee) 호숫가의 풍경을 담고 있다. 숲에 둘러싸인 양조장 겸 여관과 호수에 비친 나무의 형상이 정사각형 캔버스를 채운다. 클림트 특유의 장식적 색채와 짧은 붓질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수면의 반영에서는 추상화에 가까운 표현을 시도했다. 인물 초상화와 황금빛 장식으로 널리 알려진 클림트가 풍경화에서 발전시킨 또 다른 회화 세계를 살필 수 있는 후기작이다.
작품 중앙에는 어두운 지붕과 밝은 외벽을 가진 건물이 자리한다. 건물 뒤쪽으로 짙은 녹색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호숫가까지 이어진 풀과 나뭇잎은 작은 붓질을 반복해 표현했다. 밝은 연두색과 짙은 녹색, 청록색이 겹치면서 숲을 구성하고, 건물의 흰색 외벽은 주변의 무성한 식생과 대비를 이룬다.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밝은 색채는 햇빛이 숲에 스며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호수에 비친 풍경은 건물과 숲을 묘사한 부분과 차이를 보인다. 물 위로 내려온 녹색과 푸른색은 선명한 윤곽을 잃고 작은 색면으로 흩어진다. 위쪽에서는 나무와 건축물의 형태를 구분할 수 있지만 아래쪽으로 갈수록 형태보다 색채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나무와 물의 경계에서 붓질의 방향과 밀도가 달라지면서 실제 풍경과 반영이 서로 다른 회화적 질감을 갖는다.
클림트는 호수 건너편의 넓은 풍경보다 여관과 주변 숲을 가까이 끌어들였다. 건물을 둘러싼 나무들이 캔버스 대부분을 차지하고, 호수의 일부만 아래쪽에 배치했다. 하늘이나 먼 산을 넓게 펼쳐 보이는 일반적인 풍경화와 달리 가까운 나무와 건축물, 물에 비친 색채에 시선이 머물도록 구성했다. 정사각형 캔버스 안에 자연의 형태를 촘촘하게 배치하는 방식은 클림트가 여러 풍경화에서 발전시킨 특징이기도 하다.
여관 주변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건물은 실제로 사람들이 머물고 술을 마시던 장소였지만 클림트는 일상적인 활동을 모두 제외했다. 건물과 숲, 호수만 남긴 구성에서는 사람이 이용하던 공간보다 자연 속에 자리한 건축물의 형태가 강조된다. 인물화에서 의상과 배경의 장식적 무늬를 정교하게 구성했던 클림트는 풍경화에서도 나뭇잎과 풀, 수면의 작은 색채들을 반복적으로 배치해 밀도 높은 구성을 완성했다.
클림트가 아터제 호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00년부터다. 빈에서 초상화와 장식화를 제작하던 클림트는 여름이면 오스트리아의 호숫가로 떠나 자연을 관찰하며 풍경화를 그렸다. 1918년 사망하기 전까지 아터제 일대에서 여러 차례 여름을 보냈으며, 호수 주변의 숲과 정원, 건축물, 마을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아터제는 클림트의 풍경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된 장소 가운데 하나다.
'리츨베르크켈러'의 소재가 된 건물은 호숫가에 자리한 양조장 겸 여관이다. 클림트가 오랫동안 찾았던 지역의 건물을 그렸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장소 경험과 연결된다. 1915~1916년은 사망을 불과 2~3년 앞둔 시기로, 풍경화에서도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채의 반복을 강화하던 때였다. 작품에 나타난 촘촘한 나뭇잎과 물에 비친 추상적인 색채는 후기 회화의 변화를 잘 드러낸다.
'리츨베르크켈러'는 클림트의 오랜 후원자였던 은행가 오토 프리마베시(Otto Primavesi)의 의뢰로 제작됐다. 프리마베시는 클림트의 주요 후원자 가운데 한 명으로, 작품을 주문하고 소장하며 작가와 관계를 이어왔다. 아터제 풍경화 상당수가 클림트의 개인적인 자연 관찰에서 출발한 것과 달리 '리츨베르크켈러'는 후원자의 주문을 받아 그렸다는 점에서 제작 배경이 다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빈의 미술계에서 활동한 클림트는 부유한 후원자들의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인물의 의상과 배경을 장식적으로 결합한 초상화들은 클림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아터제에서 그린 풍경화에는 특정 인물의 모습을 재현해야 하는 조건이 없었다. 자연의 형태와 색채를 다루는 방식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던 작업으로, 후기 풍경화에서는 실제 경관을 유지하면서도 화면 전체를 평면적인 색채 구성으로 정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리츨베르크켈러'는 완성된 뒤 프리마베시의 소장품이 됐다. 이후 사진가이자 인류학자인 휴고 베르나치크(Hugo Bernatzik), 쿠르트 비저(Kurt Wieser)를 거쳐 미술상과 수집가 세르주 사바르스키(Serge Sabarsky)의 컬렉션에 편입됐다. 여러 개인 소장가의 손을 거치면서도 클림트의 주요 풍경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아 온 작품이다.
사바르스키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근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하는 데 관여한 수집가이자 미술상이다. 뉴욕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의 공동 설립자로 알려져 있으며, 1981년에는 일본에서 클림트의 첫 전시를 기획했다. 클림트와 오스트리아 근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사바르스키의 컬렉션에는 해당 시기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됐다.
1997년 사바르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 '리츨베르크켈러'는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됐다. 당시 낙찰가는 1470만 달러로, 클림트의 기존 풍경화 경매 기록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작가의 전체 경매 최고가도 새로 썼다. 오늘날 물가로 환산하면 약 309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997년 경매 이후 작품은 개인 소장품으로 남았으며, 최근 몇 년 동안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에 장기 대여됐다. 개인이 소유한 상태로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공개됐던 그림이 다시 공개 경매에 나오는 셈이다. 클림트의 주요 회화가 개인 컬렉션과 미술관에 장기간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만큼 29년 만의 재출품은 작품의 소장 이력과 함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클림트의 경매시장은 1997년 이후 크게 달라졌다. 2025년 11월 뉴욕 소더비에서는 '엘리자베트 레더러의 초상(Portrait of Elisabeth Lederer·1914~1916)'이 2억3640만 달러에 낙찰됐다. 미국의 수집가 레너드 로더(Leonard A. Lauder)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클림트의 경매 최고가를 새로 썼다. 전체 미술품 공개 경매에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었다.
'엘리자베트 레더러의 초상'은 클림트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제작한 전신 초상화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인물이 장식적 배경 앞에 서 있는 구성으로, 의복과 인물 주변에 다양한 색채와 무늬를 배치했다. 클림트가 인물화에서 발전시킨 장식적 표현이 후기의 회화적 변화와 결합된 작품이다.
'리츨베르크켈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다. 두 작품은 모두 클림트가 사망하기 얼마 전 완성했지만 소재와 표현 방식은 다르다.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존재와 장식적인 의상이 중심을 이루고, 풍경화에서는 자연과 건축물이 색채의 반복 속에 배치된다. 장식적인 구성에 대한 관심은 공통적이지만 풍경화에서는 인물의 묘사보다 나무와 수면의 색채 변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로더 컬렉션 경매에서는 클림트의 풍경화 두 점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1908년 무렵 제작된 '꽃이 핀 초원(Blumenwiese)'은 8600만 달러, 1916년 작품 '아터제 운터라흐의 숲 비탈(Waldabhang bei Unterach am Attersee)'은 약 6830만 달러에 낙찰됐다. 클림트의 경매 최고가가 대형 초상화에서 나왔지만 풍경화 역시 수천만 달러대의 거래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풍경화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 기록은 2022년 크리스티에서 거래된 '자작나무 숲(Birch Forest·1903)'이 갖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Paul Allen)의 컬렉션에서 나온 작품으로, 1억450만 달러에 낙찰됐다. 숲속에 빽빽하게 들어선 자작나무와 바닥에 쌓인 낙엽을 촘촘한 붓질로 그린 작품이다.
'자작나무 숲'과 '리츨베르크켈러'는 자연을 정사각형 구도 안에 밀도 높게 배치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1903년의 '자작나무 숲'에서는 나무줄기와 낙엽이 만들어내는 색채와 형태의 반복이 강조되는 반면, 1915~1916년의 '리츨베르크켈러'에는 건축물과 숲, 호수의 반영이 함께 등장한다. 후기작에서는 물에 비친 형태를 느슨하게 풀어내면서 추상적인 색채 구성이 한층 두드러진다.
크리스티가 '리츨베르크켈러'에 제시한 추정가 6000만~8000만 달러는 지난해 거래된 두 풍경화의 낙찰가와 비슷한 범위다. 1997년 이후 작품의 경매 기록이 크게 높아졌지만 클림트 풍경화의 가격은 제작 시기와 작품의 성격, 소장 이력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꽃이 핀 초원'과 '아터제 운터라흐의 숲 비탈'도 각각 8600만 달러와 6830만 달러에 거래되며 같은 작가의 풍경화 사이에서 가격 차이가 나타났다.
크리스티의 20·21세기 미술 글로벌 회장 맥스 카터(Max Carter)는 '리츨베르크켈러'의 풍부한 색채와 명료한 상단 구성, 수면에서 보석처럼 추상화되는 반영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추정가에 대해서도 최근 10년 가까이 경매에 나온 클림트의 성숙기 풍경화 가운데 보수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경매에는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강조된 모서리(Betonte Ecken·1922~1923)'도 출품된다. 추정가는 클림트 작품과 같은 6000만~8000만 달러다. 칸딘스키의 기존 경매 최고가를 넘어설 수 있는 금액으로, 20세기 초 유럽 근대미술의 주요 작품 두 점이 나란히 고가 경매에 등장하게 됐다.
같은 경매 일정에는 미국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컬렉션에서 나온 작품 9점도 포함될 예정이다. 작품들의 추정가 합계는 최대 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의 11월 경매시즌에 클림트와 칸딘스키의 주요 작품이 함께 출품되면서 유럽 근대회화에 대한 고가 수집 수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리츨베르크켈러'는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홍콩에서 전시된 뒤 11월 7일부터 뉴욕 크리스티 록펠러센터 전시 공간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경매는 11월 17일 열린다. 1997년 당시 작가 최고가였던 1470만 달러에 거래된 그림이 29년 뒤 6000만~8000만 달러의 추정가로 시장에 돌아온다.
지난해 클림트의 초상화가 2억3640만 달러에 낙찰되고 풍경화 두 점이 각각 8600만 달러와 6830만 달러에 거래되면서 후기 회화의 가격 기준도 달라졌다. 오는 11월 경매에서는 '리츨베르크켈러'가 1997년의 기록을 얼마나 넘어설지와 함께 1910년대에 제작된 클림트 풍경화의 거래가격이 다시 형성된다. 29년 동안 공개 경매에 나오지 않았던 작품의 낙찰 결과는 최근 클림트 미술시장에서 높아진 풍경화의 가격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