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니갤러리 서초점에서 발견한 ‘몰입형 유화’의 현재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서울 서초구. 유동적인 도시의 호흡이 멈추는 지점에 뤄니갤러리 서초점이 자리한다.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운 남상운 작가의 유화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으로 관람객을 끌어당기며, 천천히 깊이 아래로 가라앉도록 유도한다. 블루 계열 색채가 중심을 이루는 작품들이 전시장 벽면을 따라 펼쳐지면, 감각의 변조가 일어난다. 현실에서 보던 색이 아닌, 정신의 안쪽에 잠재된 색이 호출된다.

남상운 작가는 장기간 탐구한 하나의 질문을 회화로 확장해 왔다. 기록된 현실만이 진실인가. 인간이 대면하는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남상운 작가의 블루문 시리즈는 가시적 세계 바깥에서 흐르는 감정과 기억, 생명을 함축한다. 수백 번 덧칠해 만든 층위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축적된 시간과 의식의 흔적 자체가 작품의 실체로 존재한다. 관람객은 이 밀도의 무게를 마주하며 자기 감정의 수면 아래를 응시하게 된다.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 이미지 연주자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거문고 연주자 ‘이미지(본명)‘의 깊이 있는 선율이 더해져 전시의 품격과 감동을 한층 높였다.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동시대 미술이 디지털 나노초 단위로 속도를 높여가는 상황에서, 남상운 작가의 방식은 완고할 만큼 느리다. 유화 물성으로 시간의 깊이를 되살리는 회귀적 태도이지만, 목표는 과거 복고가 아니다. 현실의 명증을 지우고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전략이다. 극도로 절제된 색채 안에서 무수한 감정의 결이 드러난다.

미술 시장에서 속도는 곧 효율이다. 하지만 남상운 작가는 속도의 문법을 거부한다. 이 점은 오히려 시장성 측면에서 우위가 형성되는 요소로 작동한다.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오랜 시간은 작품 희소성과 가치 안정에 기여한다. 공급을 급격히 늘릴 수 없는 구조는 시장에서 신뢰로 해석된다.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남상운 작가의 작품에는 작은 오브제가 불쑥 등장한다. 어린왕자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현실 서사에 작은 균열을 만들며 관람 경험을 유연하게 풀어낸다. 난해한 개념미술의 부담을 완화하고, 감정적 공감의 문을 열어두는 장치다. 시장에서 ‘공감 가능한 상징’은 잠재 컬렉터층을 넓히는 요소로 평가된다. 강남권에 위치한 갤러리의 소비자 기반을 고려하면, 이러한 요소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월 25일 VIP 오프닝을 시작으로 운영 중이다. 오프닝 프로그램에 거문고 연주를 더한 기획은 시각 중심의 감상에 청각적 차원을 결합한 시도다. 한국의 전통성과 남상운 작가의 현대적 감각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되도록 구성됐다. 문화 향유 방식이 다층화되는 흐름 속에서, 뤄니갤러리 서초점이 지향하는 감각적 플랫폼이라는 방향성이 드러난다.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시 공간 내 동선은 군더더기를 덜어냈다. 작품 사이에 남긴 여백이 중요한 해석의 단서가 된다. 명확한 서사보다 감정적 침잠을 유도하며, 보는 이의 해석 체계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 현대 미술에서 해석의 주도권은 점차 창작자에서 관람자로 이동하고 있다. 남상운 작가의 작업은 그 이동을 부드럽게 용인한다.

다만, 작품 안에 구축된 감정의 깊이는 미술 경험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에게 장벽이 될 수 있다. 강남권 상업 갤러리라는 위치는 접근성의 이점이자 동시에 제한이다. 대중 확장에는 온라인 및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한 관람 경로 확보가 필요해 보인다.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 사진=뤄니갤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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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남상운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한 개인의 회화 형식이 아니다. 색채를 통해 질문하는 태도이며, 현실과 기억 사이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인간의 정신성이다. 과잉정보 시대에 의미 있는 감정만을 골라내고, 그 흔적을 깊이 아래에 안착시키는 작업이다.

블루로 표현된 세계는 차갑지 않다. 응결된 감정의 온도를 품고, 시간이 스며든 자국이 고요히 빛을 내뿜는다. 남상운 작가의 블루는 현실의 표면을 지운 자리에 감정의 심도를 쌓아올린 색이다.

뤄니갤러리 서초점의 이번 전시는 예술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를 다시 묻는다. 보는 행위는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 정지의 시간을 허락하고 내면의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다. 정돈된 블루 앞에서 관람객은 잠시 숨을 멈춘다. 그 순간, 감정이 다시 호흡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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