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은 ‘공동체’에서 ‘정서적 집합체’로

보넥도➝TWS 하이브 레이블즈 4팀, 美 그래미 '2024년 주목해야 할 K팝 신인' 선정 사진=2024.01.29  '세븐틴 동생 그룹' 투어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보넥도➝TWS 하이브 레이블즈 4팀, 美 그래미 '2024년 주목해야 할 K팝 신인' 선정 사진=2024.01.29  '세븐틴 동생 그룹' 투어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홍은희기자] K-팝 산업의 성장을 견인해 온 핵심 동력은 ‘팬덤’이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팬덤이라는 구조는 더 이상 견고한 집합체가 아니다. 써클차트 17주차 순위를 비롯한 최신 데이터는 팬덤이 내부적으로 해체되고, 플랫폼 중심의 재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팬 수의 변화가 아닌, 음악 소비 구조와 감정 동원의 방식 자체가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팬덤은 ‘공동체’에서 ‘정서적 집합체’로

기존 K-팝 팬덤은 강한 소속감, 응집력, 그리고 정체성 공유를 중심으로 작동했다. 팬카페, 실물 앨범 구매, 팬 사인회 참여 등은 아티스트에 대한 집단적 애착을 실천하는 일종의 공동체적 의례였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에 이르러, 팬덤은 더 이상 단일한 커뮤니티로 기능하지 않는다.

로제와 Bruno Mars의 ‘APT.’가 27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배경에는, 전통적 팬덤 조직이 아닌 개별 소비자들의 반복 청취와 감정적 연결이 결정적이었다. 플랫폼 기반의 소비는 팬을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니라 '감정 단위의 소비자'로 재정의하고 있다. 유튜브, 스포티파이, 틱톡의 알고리즘은 집단적 유입이 아닌 개별 취향에 맞춘 콘텐츠 노출을 전제로 하며, 이는 곧 ‘취향 기반 분산형 팬덤’을 만들어낸다.

제니와 G-Dragon, ‘설계된 브랜드’가 팬덤을 대체하는 방식

제니의 'like JENNIE'와 G-Dragon의 ‘Ubermensch (Nemo)’는 각각 셀프 브랜딩과 예술성 기반 전략을 통해 팬덤을 재정의했다. 제니는 ‘팬’이 아닌 ‘소비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정체성을 설계했다. 이는 단지 팬과의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시장 내 브랜드 주체로 자립하고 있다는 의미다.

G-Dragon 역시 기존 팬덤 기반을 넘어, 예술품과 같은 물리적 콘텐츠를 통해 '일반 소비자+브랜드 지지자'라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팬카페나 팬미팅에는 관심이 없지만, 앨범을 구매하고 아트워크를 공유하며 아티스트와 감정적으로 교감하는 방식으로 참여한다.

아티스트가 고도화된 브랜드가 될수록, 팬덤은 정서 공동체에서 ‘취향 기반 경제 공동체’로 전환된다.

임영웅의 스타디움 입성기를 담은 영화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의 언론, 배급 시사회 및 무대인사에 임영웅이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영웅의 스타디움 입성기를 담은 영화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의 언론, 배급 시사회 및 무대인사에 임영웅이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WS와 임영웅, 팬덤 구조의 세대 분기

TWS는 전통적 아이돌 팬덤 전략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 고도화된 콘셉트 기획, 유튜브·틱톡 기반 쇼츠 콘텐츠, 팬사인회 연계 구매 유도 전략 등은 여전히 청소년·청년층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집단형 팬덤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면 임영웅의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다운로드·벨소리·통화연결음 차트에서 3관왕을 차지한 구조는, 팬덤이 특정 세대 정서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팬덤은 커뮤니티보다는 ‘감정적 안정’과 ‘세대적 향수’라는 코드로 구성된다. 감정 소비의 플랫폼이 유튜브나 틱톡이 아닌 통화연결음이라는 점에서, 세대별 음악 소비 구조가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세대 분기는 단지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감각, 소비 습관, 감정 처리 방식의 구조적 차이가 음악 시장 내에서 어떻게 다층화되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알고리즘과 팬덤의 재조정

2025년 현재, 차트는 단순한 팬덤의 열기를 계량화한 결과가 아니다. 알고리즘은 팬덤을 구성하는 새로운 축으로 작동하며, 전통적 팬덤 활동의 영향력을 서서히 축소시키고 있다. 유튜브 자동 재생, 스포티파이 맞춤 큐레이션, 틱톡 바이럴 등은 모두 ‘비의도적 반복 소비’를 전제로 한다. 이는 팬덤이라는 공동체의 개입 없이도 순위와 인기를 결정짓는 메커니즘이다.

즉, 팬덤은 플랫폼 중심의 데이터 구조 속에서 ‘사용자 패턴’으로 환원된다. 그 결과, 팬덤은 해체된다. 그러나 동시에, 알고리즘이라는 구조 안에서 ‘다시 조정된 정서적 공동체’로 재편된다. 이 새로운 팬덤은 오프라인에서 조직되지 않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며 지속적으로 순위를 형성한다.

팬덤의 미래는 공동체가 아닌 플랫폼 위에서 설계된다

써클차트 17주차 순위는 K-팝이 단일 팬덤 기반 시장에서 다중 정체성 기반 플랫폼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티스트는 더 이상 특정 팬덤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 소비자의 취향, 감정, 생활 패턴에 맞춘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팬덤은 해체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플랫폼 위에서 새로운 구조로 다시 조립되고 있다. 이는 K-팝의 글로벌 확장성, 지속가능성, 그리고 산업적 안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팬덤은 이제 조직이 아니라 설계 대상이며, K-팝 산업은 그 설계의 정교함에 따라 미래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