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 중심 공간·시간 제한 운영…일반 독서 환경과 거리
책은 전면에 놓였지만 열람 조건은 전시 형식에 가까워

[KtN 임우경기자]질 샌더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선보이는 ‘Reference Library’는 책을 중심에 둔 설치다. 전시장에는 크롬 렉턴이 놓이고, 각 렉턴 위에는 조명이 비친다. 뒷벽은 거울로 마감된다. 책 한 권씩을 분리해 세우는 방식이다. 질 샌더는 이 구성을 느린 독서와 집중, 물성을 위한 자리로 설명했다. 그러나 공개된 공간 설명과 운영 방식만 놓고 보면, 이 전시는 책을 읽는 자리보다 책을 둘러싼 장면을 만드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반적인 열람 공간과 가장 먼저 갈리는 지점은 배열 방식이다. 도서관이나 서가는 비슷한 주제나 형식의 책을 한데 모으고, 독자가 여러 권 사이를 오가며 오래 머물 수 있게 짜인다. 책장을 넘기고, 다른 책을 꺼내 비교하고, 한 자리에서 계속 읽는 흐름이 기본이다. 반면 질 샌더의 전시는 책을 개별 오브제로 분리해 조명 아래 세운다. 여러 권이 연결된 독서의 흐름보다 한 권 한 권이 시선의 대상이 되는 방식이다. 서가라기보다 진열에 가깝다.

공간 재료도 독서 환경과는 성격이 다르다. 크롬은 빛을 반사하고, 거울은 시선을 되돌린다. 금속과 반사면은 패션 쇼룸이나 설치 작업에서는 강한 효과를 내지만, 텍스트를 오래 따라가는 자리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 독서는 보통 안정된 시선과 균일한 조도, 오래 머물 수 있는 리듬을 필요로 한다. 반사와 대비가 강한 환경에서는 책의 문장보다 공간의 표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쉽다. 이번 전시는 책을 읽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대신, 책이 놓인 모습을 또렷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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