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성장한 한국경제, 책임은 정치에 있다
[KtN 최기형기자]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는 1,927조 원에 도달했다. 이는 단순한 가계 재무구조의 악화가 아니라, 수년간 반복된 정치적 선택과 정책 왜곡이 축적된 결과다. 각 정권이 내놓은 금융·부동산 정책은 매번 단기적 경기부양을 목표로 했지만, 그 결과는 구조적 부채의 심화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의 'LTV·DTI 완화 정책'은 “빚내서 집사라”는 유행어를 남길 정도로 가계의 부채 의존을 제도적으로 조장했다. 담보가치 대비 대출 한도를 늘리고, 총부채상환비율을 완화함으로써 가계의 레버리지를 극단적으로 확대시켰다. 결과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급증과 함께, 시장은 가격 왜곡과 투기의 장으로 전락했다.
규제와 완화의 정치, 반복된 실책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일정 부분 제어하기 위해 2018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정권 후반기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고,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일관되지 않은 대출 규제가 반복되며 시장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권에서는 ‘민간 중심의 성장’ 기조 아래, 금융 규제 완화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당초 예정됐던 DSR 2단계 규제는 경기 둔화를 이유로 2023년 하반기로 미뤄졌고, 규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실효적 단속은 미진했다. 특히 2024년 들어 다중채무자 수가 458만 명을 돌파하고, 비은행권 잠재부실률이 9%를 넘어선 상황에서도 정부는 스트레스 DSR 3단계 도입을 ‘시장 상황을 보며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부채 관리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조절하는 방식은, ‘부채 증가 → 부동산 부양 → 소비 위축 → 성장 둔화’라는 악순환 구조를 고착시켰다. 한국경제는 부채 주도형 성장을 반복하며,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소비기반의 취약성을 동시에 심화시켜 왔다.
‘양적 총량’보다 심각한 ‘질적 위기’
정책 당국은 부채의 ‘질적 구조’에 대한 대응조차 소홀했다. 다중채무자 증가, 렌탈채권 등 생활서비스 기반의 숨은 빚 확산, 비금융권 고금리 대출 증가 등은 정책 보고서에서는 언급되었지만, 실질적 제도 개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감독의 공백은 불법사금융과 무등록 채권추심업체의 확산으로 이어졌고, 가장 취약한 계층이 고리대와 불법추심의 위험에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계부채는 단순한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 구조, 부동산 중심의 자산 편중, 금융정책의 불균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은 정치의 산물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의 무책임은 반복되었고, 시민은 구조적 빚의 포로가 되었다.
대선은 ‘부채 구조 개혁’의 정치적 분기점
21대 대선을 앞둔 지금, 정치권은 “누가 빚을 만들었는가”라는 과거 책임론을 넘어,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자율 상한 인하,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신설, 법원의 도산제도 개선은 그 출발선일 뿐이다. 핵심은 정치가 가계부채를 ‘정책 실패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이를 재정·금융·복지 전반의 재구조화 문제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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