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개입은 있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생활채권’이라는 그림자 부채, 정부는 외면 중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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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금융 약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시행됐다. 2021년 7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정 최고이자율은 기존 연 24%에서 연 20%로 낮아졌고, 정부는 이를 “사회적 배려”로 홍보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상환능력이 낮은 생계형 채무자들이 여전히 연 20%대 이자를 부담하고 있으며, 정책 개입이 효과를 발휘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경기연구원은 2020년 분석에서 연 11.3%~15% 수준까지 인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은 연 4%대, 미국 주요주는 15% 이하의 상한 이율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고금리 국가’로 분류된다. 이처럼 제도적 조정이 가능함에도, 정부는 금융권의 반발과 대출시장 위축을 이유로 보다 실질적인 개편을 단행하지 못했다.

‘생활채권’이라는 그림자 부채, 정부는 외면 중

정수기, 공기청정기, 가전제품 등 렌탈 계약에서 발생하는 ‘생활서비스 채권’은 비금융권이지만 사실상 금융성과를 지닌 그림자 부채다. 그러나 해당 채권은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정부 통계에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채권자들은 시효 직전의 민사소송 제기, 내용증명 발송을 통해 추심권을 갱신하며 취약계층을 채무의 수렁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행정부는 해당 채권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 있으며, 감독기관도 명확히 지정되어 있지 않다. 불법추심과 갱신 남용을 차단할 법적 기반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제도 설계의 주체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 구조는 단순한 행정 미비가 아니라, 취약계층을 재정적으로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적 방임에 가깝다.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사금융 피해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불법 추심에 의한 고소·고발도 급증하고 있다. 협박, 가족 노출, 반복적 연락 등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빈번함에도, 수사기관은 대포통장, 가짜번호, 연락두절을 이유로 사건 접수를 기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 관할 하의 대부업체는 등록요건 미달 시 무등록 대부업체로 전락하는데, 이에 대한 단속과 고발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불법 대출’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정부 자체의 위법성은 아니지만, 분명한 ‘정책적 책임의 부재’다.

디지털 금융 시대, 정부는 ‘감독의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AI 기반 대출, SNS 불법 광고, 빅테크의 금융 침투가 일상화된 오늘날, 금융감독 당국은 여전히 전통적 인허가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 불법 대출 앱, 블로그를 통한 고리 사채 중개, 유튜브 기반 광고에 대해 정부는 기술적 탐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대회의는 디지털 금융 전담 감독기구와 AI 기반 불법 패턴 실시간 차단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권한 분산과 조직 미비를 이유로 이를 실현하지 않고 있다. 이는 디지털 사회로 이행 중인 현실에서 감독 주체가 시대에 뒤처진 행정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공기관이 ‘악덕 채권자’가 되는 기형 구조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이 장기 연체채권에 대해 소멸시효를 반복 연장하며 추심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행정부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캠코는 대출 채권을 메이저 신용정보사를 통해 회수하며, 사실상 대부업과 같은 방식으로 채무자를 압박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배드뱅크 구조가 취약계층의 회생이 아닌 시장 수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구조적 모순이다. ‘새출발기금’은 제한적 대상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신용회복위원회와 별개로 진행돼 실효적 부담 경감 기능이 부족하다.

행정이 침묵할 때, 금융 약자는 고통에 놓인다

정부는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 과잉채무 구조, 불법사금융의 확산에 대해 ‘모니터링’과 ‘가이드라인’을 반복해 왔지만, 실질적인 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규제를 단속이 아니라 유예로 대체하고, 피해자 신고에 응답하지 않는 시스템은 행정부가 책임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1대 대선 국면에서 ‘행정 개혁’은 단순한 권한 재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 시스템의 기본 단위를 누구의 이익에 맞춰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 책임을 회피해온 관료주의, 감시 없는 감독기관, 시대에 뒤처진 금융 행정은 그 자체로 국가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