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은 시도되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법안 발의는 정치, 입법 통과는 권력 사진=2025 03.18  국회 여야 이미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법안 발의는 정치, 입법 통과는 권력 사진=2025 03.18  국회 여야 이미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21대 국회는 개인파산자 자격 제한 완화, 면제재산 확대, 면책 제외 채권 축소 등 다수의 채무자 보호 입법을 발의했으나 대부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른바 ‘서민금융 입법’은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의 수사로는 반복됐지만, 실제 법제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 사이 가계부채는 2,000조 원에 육박했고, 채무자는 여전히 부채의 포로로 남아 있다.

국회의원들은 법안 발의 성과를 공보에 실어 홍보하면서도, 상임위 통과·본회의 상정 등 실질적인 입법을 위한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았다. 입법 권력은 표면상으로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득권적 침묵과 회피의 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대부업계, 채권자, 금융기관 중심의 법체계

현재 금융법체계는 금융소비자의 권리보호보다 채권자의 집행권과 금융기관의 수익 안정성을 우선시한다. 이자제한법·대부업법 개정안에서 “최고이자율 15% 이하 인하”, “초과 이자 전면 무효화”, “폭리의 민사상 무효화” 등은 반복 제기되었으나, 국회는 이를 통과시키지 못했다.

여전히 연 20%의 이자율이 유지되는 배경에는 금융권의 로비와 대출 시장 위축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국회는 대부업법상 최고금리를 폐지하고 이자제한법으로 단일화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대부업계와 일부 금융사들의 이해 충돌 앞에 정치적 실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불법추심과 호의보증 방치한 국회

현행 채권추심법은 형식적 규제만 존재할 뿐, 추심 행위의 불법성과 위법성에 대한 실질적 제재 수단은 부족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심하게’라는 모호한 표현은 가해자의 행위를 입증하기 어렵게 만들고, 추심 피해자를 다시 수동적 위치로 몰아넣는다.

국회는 이 법의 개정 방향으로 ‘채무자대리인 확대’, ‘불공정 추심 적용 대상 확대’, ‘불법추심 민사책임 강화’ 등을 제안했지만, 입법은 미뤄졌고 사회적 관심도 희박해졌다. 호의보증의 경우에도 가족·친지를 보호할 법안이 발의됐지만, 실질적인 처리 없이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다. 보증인 연쇄 도산의 악순환은 여전히 법 바깥에서 반복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법, 선언에 머문 개혁

금융소비자 보호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입증책임 전환, 금융상품 등급 분류제 등을 포함하되, 대부분 선언적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금융 시대에 필수적인 온라인 플랫폼 분리와 위험상품의 사전 경고 시스템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금융기관은 여전히 책임 회피가 가능하다.

금융기관 감독에서 독립된 소비자 보호 기구 설치 역시 ‘필요성’은 인정되었지만, 예산권·인사권 논의에서 진척되지 않았다. 국회는 제도화를 위한 행정부 견제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고, 소비자 권익 보호는 거대 담론 속에서 지워졌다.

법안 발의는 정치, 입법 통과는 권력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많았지만, 통과된 법안은 적었다. 이 간극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채무자의 권리를 법제화하는 일은 자산을 가진 유권자들의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 정치는 표의 균형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결국 입법은 ‘의지의 충돌’보다는 ‘이해의 회피’로 종결된다.

가계부채 문제는 입법적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왔고, 이는 ‘현실 정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어 왔다. 그러나 국회는 더 이상 이 구조적 무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입법이 실현되지 않은 구조는, 결국 약자의 재기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정치적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