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박준식기자] 2025년, 플랫폼 규제는 세계 각국의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시장법(DMA)의 본격 시행을 통해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게이트키퍼' 기업을 지정하고 사전적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미국 의회는 오픈 앱마켓법,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 등으로 자국 내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일본은 디지털거래투명화법을 바탕으로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의 불균형 관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이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 독점규제법(온플법)은 단순한 후발주자가 아니다. 오히려 독자적 입법을 통해 글로벌 빅테크는 물론, 자국 플랫폼 대기업까지 동일하게 규율하는 선도형 모델로 평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의 거센 반발과 통상 마찰 가능성이 겹치며, 온플법이 '시대착오적 규제냐, 디지털 공정경제를 여는 선도입법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DMA를 통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 등 6개 기업을 지정하고, 검색·광고·앱마켓·SNS·메신저 등 다양한 플랫폼 기능에서 투명성과 경쟁 보장을 의무화했다.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기업은 사전 통지 없이 이용자 데이터를 통합하거나, 자사 서비스를 검색 결과에 우선 노출하거나, 앱 외 결제를 차단할 수 없다. 위반 시 최대 연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2025년 상반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메타, 애플, 틱톡에 대한 첫 번째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은 의회 차원에서 강제력 있는 반독점법 도입에는 여전히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일부 주에서는 자체적으로 규제에 착수했다. 애리조나주와 메릴랜드주는 앱 개발자들이 인앱결제를 강요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24년 구글과 아마존에 대해 반경쟁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미국의 규제는 다소 분권적이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거대 플랫폼의 자사우대 및 경쟁 봉쇄 금지’로 수렴되고 있다.
일본은 디지털거래투명화법을 2020년부터 시행하며, 쇼핑몰·앱스토어·검색엔진 등을 운영하는 주요 플랫폼 사업자에게 계약 조건, 수수료 구조, 알고리즘 변경사항 등을 사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입점업체의 협상력을 보장하고 플랫폼 내 불공정 요소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자율준수계획' 제출과 행정지도 방식이 병행된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온플법은 매우 독자적인 방향성을 가진다. 우선 법률 명칭부터 ‘독점규제’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사전 지정제도를 통해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플랫폼 사업자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구조다. 또한 기존 공정거래법의 사후 제재 체계를 보완해, 플랫폼 시장의 특수성과 비대칭성에 맞는 법률을 따로 구축하겠다는 점에서 새로운 입법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같은 독자성은 동시에 외교적 마찰과 규제 리스크를 수반한다. 구글과 애플 등 미국계 플랫폼 기업은 “한국 법안이 자국 기업만을 겨냥한 차별적 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미국 무역대표부와 의회는 이를 근거로 관세 협상과 연계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EU나 일본과 달리, 한국의 플랫폼 시장은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대기업이 막강한 지위를 가진 특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외 플랫폼 기업 간 ‘이중 규제’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이러한 복합적 조건 속에서 온플법의 방향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규제냐 진흥이냐’는 단순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 시장지배적 기업에 대해서는 사전규제와 투명성 확보를 강화하되, 스타트업과 혁신기업에는 사후규제 중심으로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고,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성장 여지를 확보하는 ‘혼합 모델’이 요구된다. 특히, 규제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예: 연 매출,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 적용 기업의 국적이나 이미지가 아닌 ‘객관적 시장 지배력’을 중심으로 법 집행을 설계해야 법적 안정성과 통상 수용력을 확보할 수 있다.
디지털 시장의 공정성은 단지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창작자와 입점업체의 생존권, 앱 개발자의 수익 구조, 소비자의 데이터 권리와 가격 형성의 투명성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복합적 생태계다. 한국이 온플법을 통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과잉 규제의 길’이 아니라, ‘불공정의 구조’를 바로잡는 디지털 공정경제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공정한 경제 질서를 복원하고,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정책 기조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플랫폼 법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으며, 대기업의 반발이나 외국 정부의 압력보다 앞서야 할 기준은 국민의 생존권과 시장의 균형이다. 단기적 통상 리스크에 주저하는 사이, 플랫폼 생태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자국 스타트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온플법은 시대착오적 규제가 아니다. 오히려 온플법은 한국이 디지털 주권을 선도할 수 있는 시금석이며, 자국 시장의 구조에 맞춘 맞춤형 입법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규범적 전환에 가깝다. 다만, 이러한 전환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동등 적용’의 원칙과 ‘유연한 규제 설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한국이 플랫폼 규제 전쟁의 후발주자가 아니라, 공정한 디지털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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