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의 시작 — 해발 2,000m에 차를 심다
[KtN 임우경기자] 1970년대 후반, 대만 차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해발 1,800m가 넘는 산 정상에 차나무를 심어보자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차 재배는 평지와 저지대가 중심이었다. 산은 차보다는 삼림과 과수의 영역이었고, 고도 2,000m에 가까운 곳에 농사를 짓는다는 발상은 무모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시도는 곧 대만 차 산업의 흐름을 바꾸는 서막이 된다.
첫 무대는 리산(梨山)과 대우령(大禹嶺)이었다. 산 능선을 따라 구름이 흐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안개가 몰려드는 곳. 이곳의 여름은 짧고, 일교차가 크다. 낮에는 햇살이 따뜻하게 퍼지다가도, 해가 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찻잎이 서늘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찻잎은 성장 속도가 느리다. 세포벽이 단단해지고, 카테킨은 줄어드는 대신 테아닌 함량이 높아진다. 그 결과, 떫은맛은 사라지고 혀끝에 부드러운 감미와 깊은 향이 남는다.
고산에서 자란 찻잎을 채엽해 만든 우롱은, 마치 가벼운 바람이 지나간 듯한 향과 긴 여운을 품고 있었다. 맑은 황록색 수색에 난꽃과 복숭아 향이 번지고, 한 모금 머금으면 꿀처럼 부드러운 단맛이 혀를 감쌌다. 소비자들은 이 차를 ‘한 번 마시면 잊을 수 없는 맛’이라 불렀다.
1980년대 후반, 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차 취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결혼식 답례품, 명절 선물, 기업의 VIP 접대용 차로 고산 우롱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리산과 대우령의 이름은 곧 ‘최고급’이라는 뜻이 되었고, 경매에서는 1kg당 가격이 저지대 우롱의 세 배를 훌쩍 넘겼다. 일부 특급차는 일반 농가 1년 수입에 맞먹는 값에 팔렸다.
하지만 고산 우롱의 성공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내수 시장은 프리미엄 중심으로 재편됐고, 저지대 농가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북아프리카와 일본으로 향하던 저가 녹차·우롱 시장은 이미 가격 경쟁이 심화돼 수익성이 떨어졌고, 내수에서는 고산 차에 밀려 판로가 줄어들었다. 저지대 농가 일부는 빈랑이나 과수로 재배 작목을 바꿨다. 차밭이 사라진 자리에는 키 큰 빈랑나무가 줄지어 서기 시작했다.
고산 재배의 확산은 환경 문제라는 새로운 그림자도 드리웠다. 더 많은 고급 차를 만들기 위해 산림을 베어내고 경사면을 차밭으로 바꾸는 사례가 늘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토사가 유실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산사태 위험이 커졌다. 기후 변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기온이 오르면서 해충의 서식 범위가 높아지고, 고산의 생육 장점이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산 우롱은 대만 차 산업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리산과 대우령이라는 지명은 이제 브랜드였다. 소비자는 포장지에 새겨진 산지명만 보고도 지갑을 열었고, 해외 관광객들은 대만을 방문할 때 반드시 한 통씩 사 가는 기념품이 되었다.
고산 우롱의 시대는 대만 차 산업을 ‘수출 중심’에서 ‘내수 프리미엄 중심’으로 이동시켰다. 그것은 품질과 브랜드가 결합하면 농업이 얼마나 강력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동시에, 고산과 저지대, 프리미엄과 대량생산 사이의 간극이 깊어지는 양극화의 서막이기도 했다.
이제 대만 차 산업은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고산 우롱의 성공을 넘어, 내수와 수출, 환경과 생산성, 고급화와 대중화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리산과 대우령에서 불어온 향기로운 바람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지, 아니면 변화의 바람에 방향을 틀지, 그 답은 아직 차밭 위에서 자라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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