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빈랑 재배지 / 사진=ⓒ 원근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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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우경기자] 가을이 끝나갈 무렵, 난터우 남쪽의 저지대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풍경이 달라진다. 옅은 안개 너머로, 키 큰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고, 꼭대기마다 야자수처럼 부채 모양의 잎이 펼쳐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사이로 달걀만 한 초록 열매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빈랑(檳榔), 한때 대만 농가들이 ‘녹색 다이아몬드’라 불렀던 작물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차밭이었다. 매년 봄이면 새순이 올라오고, 여름에는 찻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그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북아프리카와 일본으로 향하던 저가 우롱·녹차 수출이 흔들리면서 저지대 차의 수익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반면 빈랑은 씨앗을 심으면 몇 해 안에 수확이 가능했고, 나무 하나에서 매년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됐다. “하루 종일 차를 따도 빈랑 수확 한 번 값이 안 된다”는 말이 농촌에 퍼지자, 차나무는 하나둘 뽑혀 나갔다.

빈랑은 농부들에게 ‘현금 작물’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열매는 대만 전역의 길거리 매대에서 팔렸고, 트럭 운전사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이 졸음과 피로를 쫓기 위해 씹었다. 네온사인 불빛 아래서 판매하는 ‘빈랑시(檳榔西施)’는 대만 특유의 거리 풍경이 되었고, 그 수요는 빈랑밭 확산의 원동력이었다.

빈랑 열매가 달려있는 빈랑 나무  / 사진=ⓒ 원근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빈랑 열매가 달려있는 빈랑 나무 / 사진=ⓒ 원근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하지만 달콤한 수익 뒤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빈랑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장기간 씹으면 구강암·식도암 위험이 크게 높아졌고, 치아와 잇몸이 손상됐다. 농업 현장에서도 문제는 이어졌다. 빈랑나무는 뿌리가 얕아 경사면의 토양을 잡아주지 못했다. 여름 폭우가 쏟아지면, 나무 줄기 사이로 흙이 쓸려 내려갔다. 토사 유실과 산사태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대만의 빈랑 재배 면적은 1,600헥타르에서 45,000헥타르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위성사진 속 변화는 선명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한 초록의 차밭이 이어져 있던 곳이, 이제는 연둣빛 빈랑밭으로 바뀌었다. 마을 경관도 달라졌다. 차밭의 낮은 수풀 대신,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지평선을 채웠다.

1960년대 빈랑서시 / 사진=ⓒ 대만 국립도서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60년대 빈랑서시 / 사진=ⓒ 대만 국립도서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빈랑은 농가에 즉각적인 부를 안겨주었지만, 대만 차 산업의 기반을 잠식했다. 저지대 차밭이 사라지면서, 지역의 차 가공공장과 유통망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차 문화의 뿌리가 약해지고, 세대를 이어온 재배 기술이 단절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정부는 본격적인 경고를 내놓았다. 빈랑 광고를 제한하고, 판매점에 건강 경고문을 붙이게 했다. 일부 지자체는 재배 억제 정책과 전환 보조금을 도입해 차나무나 다른 작물로 교체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이미 한 세대 가까이 빈랑에 의존해온 농가에게, 다시 차로 돌아오라는 말은 쉽지 않았다.

녹색 다이아몬드는 그렇게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유산을 남겼다. 빈랑이 빼앗은 것은 단순한 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역의 경관, 차 문화의 뿌리, 그리고 저지대 농민들의 세대적 기억이었다. 산지에서 고산 우롱이 황금기를 누리는 동안, 평야와 구릉의 차밭은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