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단독 신청 이후, 유네스코 태권도 등재의 갈림길
세계가 지켜보는 태권도의 선택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 출범식은 단순한 공식 행사를 넘어,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세계에 알리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 출범식은 단순한 공식 행사를 넘어,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세계에 알리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태권도는 한국의 무술이자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200여 개국, 1억 명이 넘는 수련생이 존재하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글로벌 무술의 위상을 굳혔다. 그러나 지금 태권도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라는 관문 앞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서 있다.

2024년 3월 북한이 단독으로 유네스코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던 청사진은 흔들렸고, 태권도가 화해의 상징이 될지 분단의 현실을 드러내는 국면으로 남을지가 불투명해졌다. 이 문제는 한국 문화정책의 대응력과 외교적 전략을 동시에 시험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북 합의에서 북한 단독행보로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 논의는 2020년 민간 차원에서 출발했다. ‘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은 수년간 정부 부처와 면담하며 필요성을 알렸고, 해외 인사들과 교류하며 국제적 공감대를 쌓았다. 2022년에는 통일부가 북한 접촉을 허가했고,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남북 대표가 만나 공동등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2024년 3월, 북한은 한국보다 한발 앞서 단독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국은 정치적 교착과 행정적 지연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국제무대에서는 북한이 주도권을 쥔 듯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공동등재의 가능성은 흔들리며 불확실성이 커졌다.

태권도는 이미 세계 200여 개국에서 수련되고 있다. 다국간 등재는 이 사실을 유네스코의 언어로 구조화하는 일이다.  (키틴무뇨즈 유네스코 추진 위원 임명장 수여)/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는 이미 세계 200여 개국에서 수련되고 있다. 다국간 등재는 이 사실을 유네스코의 언어로 구조화하는 일이다.  (키틴무뇨즈 유네스코 추진 위원 임명장 수여)/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공동등재가 지닌 외교적 상징성

2018년 씨름의 공동등재는 태권도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정표다. 당시 남과 북은 각각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유네스코는 이를 병합해 공동등재로 결정했다. 씨름은 단순한 무형유산을 넘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국제사회는 이를 높이 평가했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훨씬 더 큰 세계적 기반을 갖고 있다. 남한의 WT와 북한의 ITF는 운영 체계와 규칙은 다르지만, 역사적 뿌리는 동일하다. 공동등재가 성사될 경우 태권도는 남북을 넘어 세계평화의 문화외교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의 단독 등재가 현실화된다면, 한국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태권도를 북한 중심의 무형유산으로만 인식하는 위험도 존재한다.

유네스코의 엄격한 심사 기준

태권도의 등재는 정치적 협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위해 다섯 가지 요건을 요구한다.

R.1: 태권도가 공동체 생활 속에 살아 있는 무형유산임을 증명해야 한다.

R.2: 등재가 문화 간 대화와 무형유산 가시성 확대에 기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R.3: 전승과 보호를 위한 교육, 연구, 기록화, 위기관리 계획이 제시되어야 한다.

R.4: 도장, 사범, 연맹, 학계 등 공동체의 사전 동의가 확보되어야 한다.

R.5: 국가 차원의 무형유산 목록에 이미 등재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지금까지 태권도를 주로 스포츠적 성취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경기 규칙보다 문화적 내러티브를 요구한다. 예절, 철학, 도장 문화와 공동체 가치 같은 서술이 충분히 담겨야만 태권도는 무형유산으로서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용역사업 등재 신청을 위한 5차 영상구성안 회의. 사진=KOREA 유네스코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용역사업 등재 신청을 위한 5차 영상구성안 회의. 사진=KOREA 유네스코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환의 신호 ― 경희대 제5차 회의

이러한 과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2025년 9월 21일,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회의실에서는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위한 다섯 번째 회의가 열렸다. 추진단장 최재춘을 비롯해 조성균 교수, 양태경 교수, 이선희 교수, 연구원, PD, 작가까지 다양한 인사가 참석했다. 이 회의는 신청서와 영상구성안을 다듬는 자리였다.

회의에서는 태권도를 무형유산의 언어로 어떻게 담아낼지가 주요 논점이 되었다. 학계 전문가와 문화 연구자, 미디어 제작자가 함께 태권도의 철학과 공동체적 가치를 문서와 영상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등재 성사의 핵심이다. 이는 태권도가 단순한 스포츠 기록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에 설명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경희대 회의는 등재 준비가 추상적 구호에서 실질적 실행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흐름이었다.

위기와 기회의 교차점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 문제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존재하는 국면에 놓여 있다. 북한 단독 등재가 확정된다면 한국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남북 공동등재가 성사되면 씨름처럼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는 문화외교 자산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경희대 회의와 같은 실무 준비는 태권도의 등재 전략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태권도가 스포츠적 성취를 넘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실질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태권도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발걸음으로 평가된다.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용역사업 등재 신청을 위한 5차 영상구성안 회의. 사진=KOREA 유네스코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용역사업 등재 신청을 위한 5차 영상구성안 회의. 사진=KOREA 유네스코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의 향방이 남긴 의미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 논의는 단순한 문화재 지정이 아니라 한국 문화외교의 방향과 남북 관계의 미래를 동시에 비추는 과정이다. 북한의 단독 신청은 분단의 현실을 드러냈지만, 최근의 실무 회의는 등재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1억 명이 넘는 수련자와 수많은 도장이 존재하는 태권도는 충분한 자산을 갖추고 있다. 이를 제대로 담아내는 문서와 내러티브가 마련된다면, 태권도는 국제사회에서 분명한 무형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와 나누는 문화적 메시지다. 공동등재가 성사될 경우 태권도는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무형유산으로 남게 된다. 경희대 회의에서 드러난 준비 과정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