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씨름 공동등재가 열어준 문화외교의 가능성
화해의 장면을 남긴 씨름

태권도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2018년 11월,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한반도의 긴장을 넘어서는 특별한 순간을 기록했다. 남과 북이 각각 제출한 씨름 신청서가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병합되면서, 전례 없는 공동등재가 결정된 것이다. 회의장에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고, 위원들은 이를 “분단을 넘어선 화해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국제 언론도 주목했다. AFP와 BBC는 “한반도의 적대가 문화유산을 통해 협력으로 전환됐다”는 헤드라인을 내보냈고, 한국 내 언론 역시 “씨름이 남북을 잇는 문화다리 역할을 했다”는 논평을 실었다. 씨름은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공유한 일상문화로서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이 장면은 지금 태권도가 처한 상황과 직결된다.

병합 결정의 과정

씨름 공동등재의 출발점은 경쟁이었다. 남한은 문화재청을 통해 신청서를 준비했고, 북한 역시 독자적으로 절차를 밟았다. 두 건의 신청서는 같은 무형유산을 각기 다른 서술로 설명했기에, 심사 과정에서 충돌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무형유산이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병합을 권고했다.

결국 두 문서는 하나의 서류로 묶였고, “씨름/씨름(Ssirum/Ssireum)”이라는 명칭 아래 공동등재가 성사됐다. 절차적 난관을 넘어선 이 결정은 남과 북 모두가 얻은 성과였으며,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인하는 국면이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2024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 김운용컵 국제오픈태권도대회' 출범식에서 김운용스포츠위원회 시범단이 인상적인 격파 시범을 선보였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2024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 김운용컵 국제오픈태권도대회' 출범식에서 김운용스포츠위원회 시범단이 인상적인 격파 시범을 선보였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제사회의 평가와 파급 효과

씨름 공동등재는 단순히 문화재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건이 아니었다. 국제사회는 이를 “문화외교의 성공 모델”로 바라봤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무형유산이 정치적 경계를 넘어선 대화의 장을 열었다”고 밝혔고, 여러 위원국은 “한반도 긴장 속에서 보여준 모범적 협력”이라 평가했다.

이 결정은 남북 모두에게 실질적인 외교 자산이 되었다. 한국은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강화했고,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협력의 주체’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씨름이라는 생활문화가 국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장면은 무형유산이 갈등을 넘어 화해를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태권도와 씨름의 차이

태권도가 지금 맞닥뜨린 도전은 씨름 공동등재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첫째, 씨름은 생활문화 중심의 등재였다.

대동놀이, 마을 축제, 전승 의례 등이 강조되며 공동체적 생활 속 뿌리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반면 태권도는 이미 세계화된 스포츠다. 제도화된 규칙, WT(세계태권도연맹)와 ITF(국제태권도연맹)라는 조직이 존재해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둘째, 택견이라는 선행 등재가 존재한다.

2011년 한국은 택견을 무형유산으로 등재시켰다. 택견은 태권도의 뿌리 중 하나로 간주되지만, 무형유산 체계에서 두 종목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태권도가 택견의 후손인지, 독립적 무형유산인지 서류상 논리 정리가 필요하다.

셋째, 북한이 2024년 단독 신청을 이미 제출했다는 점이다.

씨름 때는 양측 모두 별도의 신청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병합이 가능했다. 그러나 태권도의 경우,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이 단독으로 움직인 것은 협력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재춘 추진단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잇따라 만나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추진 현황을 보고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최재춘 추진단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잇따라 만나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추진 현황을 보고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씨름에서 배워야 할 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의 경험은 태권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공동 서사의 마련: 씨름은 “생활문화”라는 공통된 언어를 통해 병합이 가능했다. 태권도 역시 스포츠 성취보다 도장 문화, 예절, 철학 등 무형유산적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공동체 참여의 확보: 씨름 때는 학자, 마을 공동체, 기관이 모두 참여해 서류를 완성했다. 태권도도 추진단과 정부만이 아니라 사범, 도장, 수련생의 동의와 참여가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 씨름 공동등재는 유네스코의 권고와 국제사회의 공감대 덕분에 성사됐다. 태권도도 남북 합의만으로는 부족하며, 불가리아, 프랑스 등 태권도 유산에 우호적인 국가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2025년 현재의 태권도 국면

2025년 9월 21일,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에서 열린 제5차 회의는 태권도의 등재가 실제 실행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렸다. 추진단장 최재춘을 비롯한 교수진, 연구원, 미디어 전문가들이 모여 신청서와 영상구성안을 다듬었다. 이 회의에서는 태권도의 무형유산적 가치, 특히 도장의 전통과 수련문화, 예절과 정신을 어떻게 문서와 영상으로 풀어낼지가 논의됐다.

또한 불가리아, 프랑스와 이어진 국제 네트워크도 여전히 가동 중이다. 유네스코 친선대사 키틴 뮤노즈는 남북 공동등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으며, 오드레 아줄레 사무총장은 한국 측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태권도가 여전히 씨름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용역사업 등재 신청을 위한 5차 영상구성안 회의. 사진=KOREA 유네스코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용역사업 등재 신청을 위한 5차 영상구성안 회의. 사진=KOREA 유네스코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씨름이 남긴 길, 태권도가 걸어야 할 길

씨름 공동등재는 남북 모두의 성과였으며, 국제사회가 환영한 화해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목록 등재를 넘어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태권도는 지금 위기와 기회의 교차점에 서 있다. 북한의 단독 신청은 긴장을 불러왔지만, 공동등재로 전환된다면 태권도는 씨름보다 더 큰 세계적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다. 핵심은 태권도를 스포츠가 아닌 무형유산의 언어로 풀어내고,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걸음을 다시 찾는 데 있다.

씨름의 경험은 태권도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무형유산은 갈등의 언어가 아니라 대화의 언어라는 사실, 그리고 문화외교가 국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진실이다. 지금 태권도는 그 길목에서 중요한 선택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