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의 장인정신과 기술 혁신이 만나는 지점, 글렌 마튼스가 새로 그린 럭셔리의 정의
[KtN 박채빈기자]메종 마르지엘라의 2025 홀리데이 캠페인은 단순한 시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패션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글렌 마튼스는 기술과 공예를 결합해 현대 럭셔리의 본질을 다시 세웠다. 캠페인은 첨단 기술의 정밀함과 장인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감각이 어떻게 하나의 예술로 완성되는지를 증명한다.
캠페인의 중심에 놓인 ‘프레스드 앤 포일드(Pressed and Foiled)’ 트렌치코트는 이번 시즌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특수 피그먼트를 여러 겹으로 덧입힌 뒤 열과 압력을 가해 금속처럼 반사되는 표면을 완성한다. 모든 코트는 수작업으로 제작되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각 제품은 공업적 공정을 거쳤지만, 표면에는 장인의 손이 남긴 온기가 스며 있다. 차가운 기술과 따뜻한 공예가 공존하는 구조 속에서 패션은 산업이 아닌 예술로 변한다.
글렌 마튼스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확장했다. 울 니트 투피스에는 그라데이션 염색을 적용하고, 바이어스 커팅 드레스에는 금속 포일을 입혀 빛의 움직임을 시각화했다. 마튼스는 소재의 변화와 재단의 감각을 결합해 의복의 표면을 하나의 캔버스로 만들었다. 실험적 기술이 장인의 섬세함을 만나면서 브랜드의 미학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작업 방식은 패션 생산의 효율보다 시간의 깊이를 중시한다. 한 벌의 옷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공정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브랜드는 숨기지 않는다. 노동의 흔적이 곧 예술의 증거라는 관점을 기반으로, 공예는 기술의 일부가 아닌 중심에 자리한다. 글렌 마튼스는 ‘완벽한 형태보다 완성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액세서리 라인에서도 동일한 미학이 이어진다. 5AC Soft XL과 5AC East-West Small 백은 대칭 구조를 해체한 뒤 새로 조립한 형태로 제작됐다. 변형된 비율과 불규칙한 라인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한다. 완벽하게 정제된 형태보다 제작 과정에서 남은 흔적과 불균형이 오히려 진정성을 강화한다.
타비 부츠는 이번 시즌에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1988년 첫선을 보인 이후 메종 마르지엘라의 상징이 된 타비는 2025년 버전에서 금속성 광택으로 재해석됐다. 전통적인 분리형 구조에 미래적 질감을 더해,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형태로 융합됐다. 고전의 틀을 현대적으로 변환하는 접근은 브랜드의 지속적인 정체성 유지 전략이자 혁신의 방식이다.
주얼리 라인의 중심에는 ‘뉴메릭 트위스티드 다이아몬드 커프 브레이슬릿’이 있다. 스털링 실버와 옐로 골드를 비틀어 만든 형태 위에 숫자 11을 새겨 넣었다. 모든 제품은 숙련된 장인의 손에서만 완성된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상징 체계인 숫자는 브랜드의 이름 대신 존재하는 서명이다. 커프 브레이슬릿은 장식품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구조물로 기능한다.
글렌 마튼스는 기술적 정교함을 공예의 언어로 번역해 럭셔리의 정의를 다시 썼다. 현대 패션 시장이 속도와 효율을 가치로 내세우는 시대에, 메종 마르지엘라는 느림과 집중의 미학을 택했다. 수작업 과정은 비효율적이지만, 바로 그 비효율이 진정한 희소성과 감정적 깊이를 만들어낸다. 럭셔리는 생산성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로 측정된다는 사실을 브랜드는 보여주고 있다.
프랭크 레본이 촬영한 캠페인 이미지에서도 철학은 그대로 드러난다. 조명은 얼굴이 아닌 옷의 표면을 비추고, 카메라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소재의 질감을 기록한다. 금속성 콘페티가 흩날리는 공간에서 실크와 울, 가죽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을 반사한다. 프레임 안에 남은 것은 기술이 만든 질감과 손이 남긴 온기뿐이다.
경제적 구조에서도 기술과 공예의 결합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한정된 생산 수량과 고난도 제작 과정이 만들어내는 희소성은 자연스럽게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소비자는 제품을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입을 수 있는 예술’로 인식한다. 기술은 가격을 정당화하고, 공예는 신뢰를 구축하는 수단이 된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5 홀리데이 캠페인은 기술이 형태를 만들고, 장인의 손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글렌 마튼스는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패션 제작의 모든 과정을 하나의 철학으로 연결했다. 한 벌의 옷에는 시간, 기술, 철학이 함께 엮여 있다. 패션이 산업의 언어를 넘어 예술의 언어로 돌아오는 순간, 메종 마르지엘라는 다시 시대의 중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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