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부천·검단 편입과 분리, 해방 이후 행정 경계가 남긴 과제

조민재 김포역사문화연구소장, 김포를 아시나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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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우경기자]김포는 한강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다. 이 위치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서 독특한 경계성을 만들어냈다. 경계의 도시라는 조건은 수백 년 동안 김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해 왔다. 행정 경계는 계속 움직였고, 그 결과 김포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영역을 갖게 되었다. 해방 이후 이어진 행정구역 변천은 김포 정체성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확대 이후 해방을 맞으면서 전국의 행정 구조는 또 한 번 재편되었다. 광복 직후 지방행정 정상화 과정에서 일부 지역은 다시 경계를 조정했고, 김포도 그 대상이 되었다. 서울 확장과 인천의 도시 팽창이 계속되며 김포 일부는 주변 도시로 편입되었다. 경계 변동은 김포의 도시 정체성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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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북서부의 검단 지역은 특히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95년 검단 지역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면서 김포 행정구역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변화는 김포 지도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김포 지도를 펼쳐보면 동쪽이 길게 뻗은 비정형 모습이 나타난다. 이 모습은 ‘도깨비방망이’라는 표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검단이 분리된 영향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검단 지역의 분리는 단순한 면적 축소를 의미하지 않았다. 김포 시민의 생활권은 오랫동안 검단과 맞닿아 있었다. 시장, 학교, 친족 관계는 행정경계보다 먼저 형성된 사회적 연결망이었다. 행정구역이 분리된 후에도 그 생활 연결은 지속되었고, 행정은 생활권을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포가 검단을 잃으면서 기존 교류 축은 인천 방향으로 한 단계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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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동쪽의 계양 일부와 부천 오정 일부는 한때 김포 행정권에 속했다. 그러나 서울과 인천의 확장 속도는 김포보다 훨씬 빨랐다. 두 대도시가 외곽 신도시를 정비하고 인구를 흡수하면서 김포 동부는 자연스럽게 인접 대도시 생활권에 편입되었다. 행정적인 소속과 실제 생활권이 어긋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다. 행정 체계가 바뀌고 생활 방식이 달라지는 속도에 발맞추기 위해 도시 전략을 계속 수정했다. 그러나 영역 축소는 도시 성장에 한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교통, 교육, 의료 등 핵심 인프라가 외부 도시 중심으로 설정되면서 김포 내부의 균형 발전은 쉽지 않았다.

김포역사문화연구소, 김포를 아시나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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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포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인구 증가와 도시 수요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김포신도시 개발이 추진되면서 도시 구조에 대변혁이 시작되었다. 한강신도시는 김포 성장의 중심축을 크게 동쪽으로 이동시켰다. 장기동과 운정 일대가 빠르게 도시 중심 역할을 수행했고, 상권과 교육, 교통 인프라가 집중되었다.

김포도시철도 개통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김포 인구는 급증했고, 도시 연계성도 강화되었다. 증가한 인구는 김포의 도시 정체성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김포는 더 이상 ‘서울과 인천 사이에 낀 지역’이 아니라 도시권을 스스로 형성하는 성장 축을 갖춘 공간이 되었다.

김포역사문화연구소, 김포를 아시나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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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장의 흐름은 또 다른 과제를 만들었다. 과거 고을 구역을 기반으로 생활권이 유지되던 김포는 신도시 개발로 생활권이 재편되었고, 구도심과의 균형 문제도 등장했다. 김포 원도심, 통진읍, 하성면 등 전통적 중심축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반면 신도시는 빠르게 삶의 기반을 확장했다. 생활권 격차는 도시 정체성의 균형에 장기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지명 문제는 김포 정체성 논쟁의 핵심 요소로 남아 있다. 통진면 신설과 함께 과거 큰 고을 이름을 일부 면 이름에 적용한 사례는 지명의 혼용 문제를 낳았다. 김포 안에 존재하던 역사적 지명들이 부분적으로 적용되면서 지역 정체성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타났다. 지명의 정체성은 도시 전략을 설명하는 핵심 언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김포역사문화연구소, 김포를 아시나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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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름은 지명 인식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운양·구름빛·하늘빛 등 새로운 학교명은 신도시 이미지 구축에는 효과적이지만, 김포 정체성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과거 지명을 기반으로 한 학교명이나 공공시설명은 도시의 기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의 뿌리가 무엇인지 잊지 않도록 돕는 장치다.

지명 논쟁은 단순한 명칭 선택 문제가 아니다. 정체성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선택이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며 발전한 도시를 살펴보면 대부분 역사와 지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김포도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검단과 계양, 오정의 분리 경험을 고려하면 정체성의 중심 축을 더욱 선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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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재 김포역사문화연구소장은 “지명은 천 년이 지나도 다시 살아난다”는 설명을 전한다. 사라진 이름이 다시 행정지명으로 부활하거나 생활권 명칭으로 살아남은 사례는 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민재 소장은 남양주보다 ‘풍양시’가 지역 정체성에 더 어울린다는 비교를 통해 김포 지명 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역사적 정체성에 기반한 지명은 도시 브랜드의 본질을 흔들지 않는다.

김포는 해방 이후 행정구역 변화 속에서 도시의 경계를 잃기도 하고 되찾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되거나 축소되면서 변화를 경험하지만, 정체성은 그 변화 속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 김포가 가진 독자적 공간성과 역사적 경험은 도시의 근본 자산이다.

도시는 결국 이름으로 기억된다. 김포라는 이름은 사라진 지명을 포괄하고 남아 있는 정체성의 마지막 경계다. 김포공항 사례처럼 이름은 도시 기억을 보호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김포는 변화 속에서 이름을 지켰고, 그 이름이 김포의 뿌리를 유지했다.

조민재 김포역사문화연구소장, 김포를 아시나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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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이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신도시가 들어섰다.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김포의 형태는 불균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독특한 공간 전략을 형성할 기회다. 도깨비방망이 모양의 지형은 도시의 개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형태가 될 수 있다. 김포는 경계의 도시에서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행정 경계는 앞으로도 움직일 가능성이 있고, 생활권은 더 빠르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김포는 성장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검단이 떠난 역사와 신도시가 들어선 현재는 김포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다. 도시의 뿌리를 지키며 새로운 중심을 만드는 선택이 김포에게 남겨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