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장이 증명한 폭력, 침탈, 생존의 근현대사

[KtN 박준식기자]근현대 한국 사회에서 인장은 단순한 행정 도구를 넘어 인간 존엄과 국가 정체성의 침탈, 그리고 생존을 증명하는 실질적 사료로 기능해왔다. 인장은 삶의 기록을 남긴 도구이면서 동시에 상실을 증명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강제 점령, 전쟁, 이산, 국가 폭력, 제도적 배제 속에서 인장은 지워진 존재를 확인하게 한 마지막 기록 장치였다. 인장은 폭력에 의해 상실된 권리, 압탈된 삶, 감춰진 고통을 정확하게 남겼다.

일제강점기에 인장은 지배 체제 유지 수단으로 통제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인장 등록과 제작 허가를 통해 한반도 주민을 통제 체계로 편입했다. 통행증과 거주 허가, 면허 발급 등의 행정 절차 전체가 인장 날인 상태로 관리되었다. 통치 권력은 인장 기재 사항을 관리하며 조세, 병력, 물자까지 통제했다. 인장은 권리 보장 수단이 아닌 감시 장치로 재편되었다. 동일한 기술이 구조적 억압에 동원된 사례다.

인장은 무력으로 빼앗긴 정체성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독립운동가, 저항 세력 구성원은 생존 과정에서 인장을 잃거나 파기해야 했다. 실명 기반 인장은 생명 위협과 직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익명화 과정에서 제거 대상이 되었다. 이름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시대, 인장은 존재의 표식을 상실한 채 잠복된 역사의 지층 속에 머물렀다. 그 결과 수많은 기록은 확인 불가능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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