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 점 접수·41개국 318명 예선 통과…환경·정체성·공동체에 걸친 사진 113점
[KtN 신명준기자]5200명이 넘는 사진가가 영국왕립사진협회(Royal Photographic Society·RPS) 제167회 국제사진전(International Photography Exhibition 167·IPE167)에 1만여 점을 출품했다. 41개국 사진가 318명이 예선을 통과했고, 최종적으로 48명의 사진 113점이 런던 사치갤러리에 걸린다. 최종 선정률은 출품 사진가를 기준으로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심사는 작가의 신원을 가린 상태에서 진행됐다. 사회참여형 예술가와 사진가, 전년도 IPE 대상 수상자, 사진 전문 미술관 큐레이터, 매그넘 포토스 문화사업 책임자, 사진사 연구자 등 5명이 디지털 이미지와 인화 작품을 검토했다. 대상과 30세 미만 작가상도 작가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선정했다.
익명 심사는 경력과 국적, 소속 기관이 작품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인다. 최종 전시의 방향은 해마다 바뀌는 심사위원 5명의 판단에 달려 있다. IPE167에 환경과 정체성, 분쟁, 기억, 공동체, 가족, 문화가 한꺼번에 들어온 배경에도 올해 심사위원단의 관심과 선택이 작용했다.
대상 수상자 마시 팔머(Marcy Palmer)와 30세 미만 작가상을 받은 레아 첸(Léa Chen)을 제외한 46명에게는 별도의 순위가 매겨지지 않았다. 국제적인 수상 경력을 갖춘 중견 작가와 첫 주요 전시에 진입한 신진 작가가 같은 공간에 놓인다.
2014년 7월 20일, 이탈리아 출신 사진가 아틸리오 피우마렐라(Attilio Fiumarella)는 영국 버밍엄 모즐리 로드 배스의 빈 수영장에 지역 주민 118명을 세웠다. 대형 카메라에 필름 한 장을 넣고 촬영한 ‘The Swimmers’ 연작의 마지막 사진이다.
1900년대 초 세워진 모즐리 로드 배스는 시설 노후화와 재정 부족으로 폐쇄 가능성이 거론되던 공공 수영장이었다. 피우마렐라는 지역 지원금을 받아 수영장 이용자와 건물의 관계를 촬영했고, 주민과 보존단체가 단체사진 제작에 참여했다.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 바닥에 선 주민들은 연령과 인종, 체형이 모두 다르다. 건물을 이용해 온 공동체의 규모가 한 장의 사진에 기록됐다.
개별 인물사진은 주름과 젖은 머리카락, 수영복 차림을 정면에서 다룬다. 단체사진의 118명이 하나의 집단으로 묶였다면 인물사진에서는 각 이용자의 얼굴과 시간이 다시 분리된다. 건축을 전공한 피우마렐라는 사람만 촬영하지 않고 낡은 수영장과 이용자의 관계를 연작 전체에 남겼다.
12년 전에 제작된 사진이 2026년 국제사진전에서 다시 선정됐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IPE167은 해당 연도에 제작된 신작만으로 동시대 사진을 설명하는 전시가 아니다. 오래된 사진이 현재 어떤 사회적 의미를 얻는지도 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모즐리 로드 배스는 폐쇄되지 않았고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캐나다 출생의 남아시아계 사진가 알렉스 후다(Alex Huda)는 홍콩의 보이드펑크(Voidpunk) 공동체를 촬영했다. 보이드펑크는 사회가 정한 정상성과 인간성의 범주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괴물과 사이보그, 비인간 존재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정체성을 다시 구성하는 하위문화다.
푸른색으로 부풀린 의상과 기계 장치 같은 가면, 식물 사이에 세운 인물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인물사진과 거리가 멀다. 후다는 참여자와 함께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중형 필름으로 촬영했다. 홍콩의 주변화된 청년을 피해자나 관찰 대상으로 고정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모습으로 기록하려는 방식이다.
강한 색과 기이한 의상은 보이드펑크의 정체성을 즉각 드러내지만 시각적 볼거리가 참여자의 생활 조건보다 앞설 가능성도 있다. 공동체가 형성된 사회적 배경과 구성원의 목소리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으면 홍콩의 하위문화가 낯선 분장과 공상과학 이미지로만 소비될 수 있다.
영국 사진가 제드 넬슨(Zed Nelson)은 ‘The Anthropocene Illusion’을 위해 6년 동안 4개 대륙을 다녔다. 인공 해변과 실내 열대우림, 동물원, 관광지, 녹화 건축처럼 자연을 통제하고 재현한 공간을 촬영했다.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도 자연과의 접촉을 상품과 시설을 통해 소비하는 구조가 연작의 출발점이다.
싱가포르의 녹화 건축에서는 콘크리트 주차장 위로 식물이 촘촘하게 흘러내린다. 식물은 건물을 가리지만 자동차 통행을 위해 만든 도로와 주차장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녹색 외관만으로 건축물의 환경 부담을 판단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읽힌다.
‘The Anthropocene Illusion’은 2025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올해의 사진가상을 받은 연작이다. 국제 수상 경력을 갖춘 넬슨과 경력 초기 작가들이 익명 심사에서는 같은 조건으로 경쟁했지만, 작가 이름이 공개된 전시장에서는 기존 경력과 인지도가 작품 해석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익명 심사가 선정 과정의 편견을 줄일 수는 있어도 전시 이후의 평가까지 같게 만들지는 못한다.
환경과 가족, 전쟁, 이주, 성별 정체성을 다룬 사진 113점이 두 개 전시실에 들어가면서 개별 연작에 배정되는 공간은 제한된다. 여러 지역의 사진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신 복잡한 역사와 공동체의 배경은 작품 설명에 의존한다. IPE167의 폭넓은 구성이 각 작업의 깊이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IPE167은 8월 7일부터 9월 11일까지 사치갤러리 1·2전시실에서 무료로 열린다. 런던 전시 이후에는 2026년 10월 24일부터 2027년 1월 9일까지 톤턴 뮤지엄, 2027년 4월 5일부터 28일까지 런던 왕립지리학회에서 순회전이 이어진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