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혼합매체와 소형 장지채색이 함께 놓인 2026년 작업…넓어지는 컬렉터 시장 속 크기·재료·반복의 변화
[KtN 박준식기자]2024~2025년 세계 현대미술시장은 가격대에 따라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5만달러 이상 작품의 거래량은 크게 줄었지만 1만달러 아래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유지됐고, 1,000달러 이하 작품 거래는 약 8만8000점에 이르며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온라인 거래에 익숙한 Y·Z세대가 반드시 투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가격의 원화를 구입하는 흐름도 두드러졌다.
구승희 작가가 2026년 선보인 작업에는 이 시장 변화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두 방향이 함께 존재한다. 하나는 장지채색을 이어가는 다수의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캔버스로 바탕을 옮긴 대형 혼합매체 작업이다. 69점 가운데 ‘행복으로’와 ‘기쁨가득’ 두 점은 Mixed media on canvas로 분류됐고, 나머지는 장지채색으로 구성됐다.
‘행복으로’에서 재료의 변화는 공간을 쓰는 방식과 함께 나타난다. 검은 바탕에 크게 놓인 노란 초승달 위로 노란 머리의 여성이 빗자루를 타고 이동하고, 뒤에는 작은 흰 강아지가 따라붙는다. 장지 작업에서 인물 주변을 메우던 작은 꽃은 달과 검은 공간까지 흩어지며 움직임의 범위를 넓힌다. 이전 작품에서 손이나 시선을 따라 생기던 동세가 여기에서는 몸 전체의 이동으로 커진다.
캔버스로 바탕이 바뀌었다고 기존 언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란 머리와 큰 눈, 작은 꽃, 강한 색의 대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재료의 교체보다 더 눈여겨볼 부분은 익숙한 인물을 넓은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했는가에 있다. ‘행복으로’는 기존 형식을 버린 작업보다, 장지에서 형성된 인물과 꽃의 관계를 다른 공간으로 옮겨본 작업에 가깝다.
같은 해 제작된 ‘기쁨가득’은 방향이 다르다. 붉은색과 주황색이 강하게 맞물린 바탕 안에서 여성은 크게 움직이지 않고 정면 가까이에 머문다. 거대한 노란 머리가 인물을 감싸고 손과 가슴 주변에 작은 흰 꽃이 밀집하면서 ‘행복으로’의 이동감과 달리 한곳으로 모이는 밀도가 강해진다.
두 작품은 같은 혼합매체 대형작이지만 캔버스 사용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행복으로’가 몸과 달, 주변 공간을 이용해 바깥으로 움직인다면 ‘기쁨가득’은 인물의 머리와 몸 주변으로 시선을 모은다. 같은 노란 머리와 꽃을 유지하면서도 한 작품은 확산, 다른 작품은 응집에 가깝다. 재료보다 구성의 차이가 두 작업을 구분한다.
구승희도 장지만을 고수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전통 채색을 가장 익숙하게 사용하는 기반으로 두면서도 아크릴을 비롯한 다른 재료를 함께 사용하는 방향에 열려 있다는 뜻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2026년 두 혼합매체 작업은 적어도 재료 선택이 장지 하나로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형 혼합매체 작업과 함께 2026년에는 소형 장지채색도 여러 점 선보였다. ‘작은 소중함’, ‘기쁨’, ‘따뜻함’, ‘희망’은 인물과 꽃이라는 익숙한 조형어휘를 비교적 작은 공간 안에 압축한 작업들이다.
작은 작품에서는 대형작과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복잡한 관계와 이동을 넣을 공간은 줄어든다. 노란 머리와 큰 눈, 꽃이라는 형태는 빠르게 인식되지만, 비슷한 구성이 이어질 경우 작품 사이의 차이 역시 좁아질 수 있다. 대형작에서 몸의 움직임과 주변 공간이 변화를 만들었다면 소형작에서는 색의 배치와 꽃의 밀도, 얼굴 주변의 세부가 작품을 구분하는 요소가 된다.
작은 작품에서는 대형작과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복잡한 관계와 이동을 넣을 공간은 줄어든다. 노란 머리와 큰 눈, 꽃이라는 익숙한 요소가 빠르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비슷한 구성의 소형작이 이어질 경우 작품 사이의 차이가 축소될 가능성도 커진다. 대형작에서는 공간과 몸의 행동이 변화를 만들었다면 소형작에서는 색의 관계와 꽃의 밀도, 얼굴 주변의 세부 변화가 더 중요해진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접근 가능한 작품군의 거래가 확대됐다는 사실은 이런 소형작을 바라볼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밀레니얼과 Z세대 컬렉터가 1만달러 이하 작품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온라인 거래에 적극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구승희의 소형작이 이런 수요를 겨냥해 제작됐는지, 실제로 젊은 컬렉터에게 판매되고 있는지는 확인된 자료가 없다. 가격대가 국제 경매시장과 직접 비교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번 출품작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작가가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규모의 작품을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형 혼합매체에서는 인물과 꽃을 넓은 공간으로 풀어내고, 작은 장지채색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얼굴과 꽃을 좁은 범위 안에 압축한다. 시장에서는 작품을 처음 구입하는 구매자가 늘고 있지만, 작가에게 작품의 크기를 다양화하는 것과 조형언어를 확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구승희에게 노란 머리와 꽃은 이미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됐다. 식별성은 작품 세계를 이어주는 장점이지만 같은 이미지가 크기만 달리해 반복된다면 변화의 폭은 좁아질 수 있다. ‘행복으로’와 ‘기쁨가득’에서 확인되는 공간의 확산과 응집, 몸의 움직임처럼 동일한 소재를 다른 구조로 바꾸는 작업이 그래서 더 중요해진다.
장지에서 캔버스로 옮기는 선택도 같은 기준에서 볼 수 있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재료가 인물과 꽃, 색과 공간을 실제로 어떻게 바꾸는지가 남는다. 2026년의 두 혼합매체 작업과 여러 소형 장지채색은 구승희가 익숙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규모와 재료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변화가 새로운 조형적 차이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작품별로 더 엄격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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