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혁신도시의 ‘소비 단절’…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 맞춤 공급과 기동성으로 활로
[KtN 박준식기자]대구 혁신도시의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 필기구와 사무용품, 생활용품이 매장 양쪽 벽과 진열대를 촘촘히 채우고 있다. 김병영 대표는 통로를 오가며 상품을 살피고 빈자리를 채운다. 매장 인근에는 공공기관이 모여 있지만, 업무 현장에서 발생한 수요가 지역 점포의 매출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관이 찾는 품목을 확인하고 물건을 확보한 뒤 요구한 시간에 맞춰 공급해야 거래가 성립한다. 주문이 바뀌면 이미 준비한 상품을 다시 거둬들여야 할 때도 있다. 전자문서 확산으로 문구 소비가 줄어든 데다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가격·배송 경쟁까지 겹쳤다.
김 대표는 “혁신도시가 처음 조성될 때는 큰 공공기관이 모이면서 기대가 상당했다”며 “지금은 상권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이전이 만든 업무 수요와 지역 상권이 확보한 소비 사이에 간극이 생긴 셈이다.
배후 수요 3300가구…기관 이전의 낙수효과는 제한적
대구시의회가 2022년 발간한 ‘대구지역 골목상권 활성화 방안 연구’는 혁신도시 상권의 배후 주거지를 약 3300가구로 파악했다. 상권 규모에 비해 주거 수요가 적고, 일부 주거지는 도보 접근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버스와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 여건, 부족한 유동 인구, 뚜렷한 상권 정체성의 부재도 약점으로 꼽혔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유동 인구가 줄면서 폐업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기관 직원이 혁신도시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소비까지 주변 상권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퇴근 뒤 거주지에서 물건을 사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 기관 구매 역시 가격과 공급 능력, 결제 조건을 갖춘 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공공기관과 가깝다는 입지는 거래의 기회일 뿐, 안정적인 판로를 보장하지 않는다.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은 공간적 근접성을 대응 속도로 전환했다. 기관 실무자가 요청한 상품과 일정을 확인해 물건을 준비하고, 추가 주문과 변경 요구에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대형 업체와 가격·물량으로 맞서기보다 현장에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경쟁력으로 삼았다.
김 대표는 공공기관과의 관계를 일회성 납품이 아닌 상생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공공기관과 상생하지 않으면 우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기관에서 요구하는 상황과 필요한 물품에 계속 맞춰 움직이는 일을 필수적으로 생각합니다.”
맞춤 공급의 경쟁력, 재고 부담이라는 그늘
기관 맞춤 공급은 거래처를 지키는 힘인 동시에 비용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신속히 확보해야 하고, 기관 내부 사정으로 수요가 달라지면 재고를 떠안을 수 있다. 빠른 대응이 그대로 매출을 보장하는 구조는 아니다.
김 대표는 직장생활에서 익힌 업무 원칙과 자영업 현장의 간극을 주문 변경 과정에서 실감했다고 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을 마치면 책임이 끝났던 조직생활과 달리 장사는 고객의 사정이 바뀐 뒤에도 계속된다.
“주문받은 물건을 빠르게 배송하고 필요한 조치까지 마쳤는데, 필요 없어졌으니 가져가 달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쌓이면서 자영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관 납품은 주문 확인과 상품 확보, 배송, 결제, 변경 대응이 맞물리는 일이다. 가까운 거리와 공급 속도는 지역 점포의 강점이지만,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과 재고는 고스란히 매장의 몫으로 남는다.
김 대표가 말하는 상생은 기관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래 상대의 업무 흐름을 이해하고, 반복 거래가 가능한 신뢰를 쌓는 과정에 가깝다.
종이는 줄고 온라인은 커졌다
상권 침체와 함께 문구 소비의 기반도 달라졌다. 전자결재와 디지털 기기가 종이 문서와 필기구를 대체하면서 전통 문구류의 수요는 점차 줄었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볼펜도 많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여러 업무를 대신하면서 문구 소비가 줄었다”며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곳에는 문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유통은 남아 있는 수요를 빠르게 흡수했다. 소비자는 여러 업체의 가격을 비교해 주문하고 배송까지 받을 수 있다. 소규모 오프라인 점포가 가격과 물류망만으로 대형 업체와 경쟁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온라인 판매로의 전환도 녹록지 않다. 문구점은 소량·다품종 업종이다. 상품별 사진과 설명, 판매가격과 재고를 등록하고 주문·배송 체계까지 갖춰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경쟁력이었던 폭넓은 상품 구성이 온라인에서는 관리 비용으로 돌아온다.
“온라인 판매는 노출만 늘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가격과 판매 체계를 먼저 갖춰야 합니다. 방대한 문구류를 모두 등록하고 가격을 설정하는 데도 상당한 노력이 듭니다.”
대구시의회 연구도 온라인·비대면 소비의 확산과 원재료 가격 상승을 혁신도시 상권의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 공공기관 배후 수요에만 기댈 수도, 온라인 시장에서 가격 경쟁에 뛰어들 수도 없는 이중 압박이다.
코로나19에도 성장…호황보다 불확실성을 읽다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은 코로나19 확산기에도 매출 증가세를 이어갔다. 학교 수업과 사무실 근무가 위축되며 문구 수요가 흔들린 시기에도 공공기관과 지역 고객의 주문에 맞춰 공급을 이어간 결과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영업 상황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김 대표는 현재의 실적보다 시장이 다시 바뀔 가능성에 더 주목했다. 지역에서 신뢰를 쌓더라도 가격과 공급 규모를 갖춘 대형 업체가 들어오면 거래 구도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우리가 열정과 진심을 다하더라도 더 크고 조건이 좋은 업체에 밀릴 수 있습니다. 항상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적을 낙관의 근거보다 다음 변화에 대비해야 할 신호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폭염으로 방문객이 줄어든 시기에는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음료를 건넸다. 매출 감소기에 비용을 줄이는 데만 머물지 않고, 무더위에도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작은 서비스라도 좋은 방문 경험으로 남겨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들겠다는 판단이었다.
온라인 판매보다 먼저 ‘찾아오는 매장’
김 대표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영상을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매장과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원하고 대구한의대학교가 운영하는 '소상공인 디지털 특성화 대학'에서 이커머스 플랫폼 상품기획, 디지털 마케팅, 생성형 AI 활용 콘텐츠 제작, AI 라이브커머스 등을 교육받으며 익힌 역량을 실제 매장 운영에 접목한 결과다. 전국 단위 온라인 판매에 곧장 뛰어들기보다 대구 혁신도시에서 문구점을 찾는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 무게를 뒀다.
지역명과 문구점을 함께 검색한 고객이 매장의 위치와 취급 상품을 확인하고 방문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포털의 매장 정보와 고객 후기를 보강하고, 인스타그램에는 상품뿐 아니라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운영자의 생각을 함께 담고 있다.
김 대표는 “인스타그램이 매출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지는 아직 모호하다”면서도 “조금씩 다듬어 가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 혁신도시 상권의 취약성은 개별 점포의 노력만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제한된 배후 수요와 유동 인구, 온라인 소비 확대는 지역 상점이 공통으로 감당해야 할 조건이다.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은 외형 확대보다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길을 택했다. 기관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때 공급하고, 주문이 달라지면 다시 움직이며,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다음 방문의 이유를 남긴다.
공공기관 이전은 도시에 새로운 업무 수요를 만든다. 그러나 지역 상권의 몫은 기관이 들어서는 순간 정해지지 않는다. 업무 수요를 지역 거래로 연결하고 반복해서 찾을 신뢰를 쌓아야 비로소 상권의 매출이 된다. 김 대표가 말하는 상생은 구호보다 실행에 가깝다. 주문 한 건, 납품 한 번을 놓치지 않으려는 현장의 축적이 대형 유통과 온라인 소비의 틈에서 지역 점포를 지탱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