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띠커피갤러리 ‘첫사랑찾기’ 스페셜 이벤트…재회의 낭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의와 사생활, 현재의 삶을 존중하는 연결 방식
[KtN 박준식기자]첫사랑의 이름을 담벼락에 남기는 일과 실제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전자는 자신의 기억을 꺼내놓는 행위지만, 후자는 다른 사람의 현재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찾기’가 스페셜 이벤트를 통해 첫사랑을 실제로 찾아 연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면 문화 프로그램의 성격도 달라진다.
붉은 벽돌길의 ‘첫담(첫사랑 담벼락)’에서는 지나온 시간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다. 이름 하나와 짧은 문장으로 충분하다. 누군가를 기억했다는 사실은 글을 남긴 사람에게 속하고, 담벼락의 기록은 반드시 상대에게 전달될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실내 갤러리의 ‘남과 여’ 게시판에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첫사랑에게 보내는 포스트잇이 붙고, 미리 결제한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가 있다면 해당 메모와 함께 표시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알아보고 찾아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공간이다.
여기까지는 기다림의 문화다. 글을 남긴 사람이 상대를 직접 찾아가지 않는다. 메모를 본 사람이 스스로 반응할 수 있고, 아무 반응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첫사랑의 기억을 남길 자유와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동시에 존재한다.
‘찾아드린다’는 단계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스페셜 이벤트에 선정된 사연을 바탕으로 첫사랑을 찾아 연결하려 한다면 기억 속 인물은 더 이상 추억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의 주소와 직장, 가족과 인간관계를 가진 한 사람으로 돌아온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20년 전 이야기는 여전히 선명할 수 있다. 상대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관계일 수도 있다. 한쪽에서 소중하게 간직해 온 추억이 다른 한쪽에도 같은 무게로 남아 있다고 전제할 수 없는 이유다.
첫사랑이라는 말에는 흔히 가장 순수했던 시절과 설렘이 따라붙지만 실제 관계의 기억은 훨씬 복잡하다. 서로 좋아했지만 헤어진 사람도 있고, 한쪽만 마음을 품었던 경우도 있다. 당시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같은 관계로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의 삶도 달라져 있다. 결혼해 가족을 이루었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를 오래 이어오고 있을 수도 있다. 이름과 직업이 달라졌거나 과거의 인간관계를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재회의 감동을 먼저 설계하기보다 현재의 사람에게 선택권을 남겨야 하는 이유다.
첫사랑찾기가 문화 프로젝트로 오래 가려면 ‘찾아냈다’는 결과보다 연결 과정의 품격이 중요해진다. 상대의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곧바로 신청자에게 전달하거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사진과 근황을 공개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첫 연락을 받는 단계에서부터 응할지 여부를 상대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과정에는 법적 기준도 따른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은 동의를 근거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경우 수집·이용 목적과 항목, 보유·이용 기간, 동의를 거부할 권리 등을 알려야 하며, 필요한 범위의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하도록 규정한다.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경우에도 정보주체의 동의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문화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첫사랑의 이름을 남긴다고 해서 게시판에 전화번호와 주소, 회사, 학교, 가족관계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 사람을 특정하기 위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연한 추억의 기록은 타인의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게시물로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남과 여’ 게시판에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문객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인 만큼 포스트잇에 무엇을 적을 수 있는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름과 두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짧은 기억은 남길 수 있더라도 연락처나 상세 주소, 직장과 같은 정보까지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의 문제도 있다. 첫사랑의 이름만으로는 특정 인물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메모라고 단정하거나, 선결제된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확인은 공개적인 신원 검증보다 메모를 남긴 사람과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기억을 활용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다. 특정 장소나 당시의 별명처럼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이 구분할 수 있는 단서를 남길 수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개인정보를 더 많이 받는 쪽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첫사랑을 찾았다고 해서 곧바로 두 사람을 마주 앉힐 필요도 없다. 먼저 상대에게 누군가 오래전 기억을 남겼다는 사실만 전달하고, 메모를 볼 것인지부터 선택하게 할 수 있다. 메모를 읽은 뒤에도 커피만 받아가고 연락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첫사랑을 찾았다는 이유로 재회를 기대하거나 답장을 요구하면 기억을 나누는 문화는 관계를 압박하는 이벤트로 달라진다. 상대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한다면 그 결정 역시 첫사랑찾기가 존중해야 할 결말이다.
오히려 이런 여백이 ‘첫담’과 ‘남과 여’ 게시판이 가진 처음의 성격과도 맞는다. 한 사람은 글을 남긴다. 다른 사람은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고 지나칠 수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카페가 놓이지만 관계의 다음 단계까지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 역시 재회를 강제하지 않는 매개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며 한 잔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커피를 마신 뒤 조용히 돌아갈 수도 있다. 답장을 남길 수도 있고, 새로운 만남을 선택할 수도 있다. 커피 한 잔 이후의 관계는 당사자에게 남겨두는 편이 자연스럽다.
갤러리카페에서 이런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공간 자체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열린 장소이기 때문이다. 작품과 커피,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존재하지만 모든 사적인 관계까지 공개될 필요는 없다. 문화공간은 이야기를 꺼낼 자리를 제공할 수 있지만 개인의 삶을 전시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첫사랑을 실제로 찾는 과정이 시작되면 기사와 홍보에서도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재회한 두 사람의 이름과 얼굴, 과거 사연은 당사자 모두가 공개를 원할 때에만 다뤄져야 한다. 한쪽의 동의만으로 다른 사람의 첫사랑 시절을 콘텐츠로 만들 수는 없다.
특히 감동적인 재회는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유혹이 크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결말이 반드시 카메라 앞의 포옹일 필요는 없다. 첫사랑이 남긴 커피를 혼자 마시고 돌아가는 사람, 짧은 답장 한 줄만 남기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사람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정리할 수 있다.
첫사랑찾기가 흥미로운 문화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사람을 찾아내는 기술에 있지 않다. 기억 속 한 사람을 현재의 사람으로 다시 만났을 때 어디까지 다가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과정에 있다.
붉은 벽돌길에 이름을 남길 때 첫사랑은 아직 기억 속에 있다. ‘남과 여’ 게시판에 포스트잇을 붙이면 기억은 누군가에게 닿을 가능성을 얻는다. 스페셜 이벤트를 통해 실제 사람을 찾게 되는 순간부터는 상대의 현재가 시작된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마음은 한 사람의 자유다. 다시 만날 것인지, 메모를 읽을 것인지, 커피 한 잔을 받을 것인지도 다른 사람의 자유다. 두 자유 사이의 거리를 지키면서 연결할 수 있을 때 ‘첫사랑찾기’는 재회를 소비하는 이벤트보다 한층 성숙한 문화로 남을 수 있다.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찾기가 마지막에 다루게 되는 것은 과거의 사랑만이 아니다. 오래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지금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가가 함께 놓인다. 첫사랑을 찾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길을 열고,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기억을 남기며, 지나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대로 지나갈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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