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예산영화 지원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증액…완성된 작품의 상영 시간과 지역 접근성까지 연결돼야 할 영화정책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도착하려면 시나리오 개발과 투자, 촬영과 후반작업, 배급과 개봉을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 제작비를 확보해 영화를 완성하더라도 극장에서 상영할 시간과 공간을 얻지 못하면 관객의 선택은 시작되지 않는다. 9월 9일 개봉하는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도 제작을 마친 뒤 스크린과 상영 횟수, 시간대, 지역별 상영관을 놓고 다른 개봉작들과 경쟁하게 된다.

이재명 정부에서 편성된 2026년 영화지원 예산은 위축된 제작 기반을 복원하는 데 무게를 뒀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예산은 전년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두 배 늘었다. 순제작비 2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작품으로 지원 범위를 넓혔고 약 18편을 선정하도록 했다. 선정작의 30% 이상은 신인 감독 작품에 배정한다.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 예산도 25억원에서 46억원으로 확대됐다. 작가와 제작사를 대상으로 한 공모 횟수를 연 1회에서 2회로 늘리고, 신진 인력의 진입을 넓히기 위해 연출·조연출 경력자까지 작가 부문 지원 자격에 포함했다. 제작사에는 초고와 각색고 개발비를 지원하고 중단됐던 차기작 기획개발지원도 다시 시행한다.

독립예술영화 제작·유통·개봉지원에는 전년보다 40억원 늘어난 205억원이 편성됐다. 제작지원 77억원으로 장편과 단편, 다큐멘터리 약 60편을 지원한다. 개봉지원 신청 대상은 배급사에서 제작사와 감독 개인까지 넓어졌고, 개봉 이후 수익이 발생했을 때 지원금을 반환하도록 했던 의무도 폐지됐다.

예산의 방향은 비교적 뚜렷하다. 대형 투자배급사의 선택만으로 제작 여부가 결정되지 않도록 기획개발 단계의 진입로를 넓히고, 대작과 저예산영화 사이에서 줄어든 중간 규모 작품을 늘리려는 움직임이다. 신인 감독에게 일정 비율을 배정한 정책도 제작 경험이 일부 감독에게만 집중되는 구조를 완화하려는 조치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산업의 회복은 제작 편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원을 받아 완성된 작품이 늘어도 배급과 상영이 따라오지 않으면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만 쌓인다. 제작 단계에서는 공공재원이 진입로를 열어도 극장에서는 좌석 판매 가능성과 초기 예매율, 배급사의 협상력에 따라 상영 기회가 달라진다.

스크린 수만으로 관객 접근성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같은 한 개의 스크린이라도 오후와 저녁에 편성된 영화와 이른 오전이나 늦은 밤에 배치된 영화의 조건은 다르다. 하루 한두 차례만 상영하면 관객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다. 상영관이 있다는 사실과 생활 가능한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지역 격차도 더해진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여러 극장을 비교해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상영관이 적은 지역에서는 작품 자체가 걸리지 않거나 짧은 기간만 편성될 수 있다. 개봉 첫 주에 관람하지 못하면 이후에는 극장에서 만날 기회가 사라지는 영화도 생긴다. 전국 개봉이라는 표현과 전국 어디서나 관람할 수 있는 환경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상영 횟수가 적은 영화는 관객 반응이 형성되는 속도에서도 불리하다. 대규모 개봉작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관객을 만나며 개봉 첫날부터 후기와 평가가 쌓인다. 회차가 적은 작품은 영화를 본 관객의 절대적인 수가 적어 온라인 반응이 확산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초기 성적을 기준으로 회차가 다시 줄어들면 입소문이 작동할 시간도 확보하기 어렵다.

관객이 선택하지 않은 영화와 선택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영화가 흥행 순위에서는 똑같이 낮은 숫자로 기록된다. 작품의 경쟁력과 배급·상영의 격차가 하나의 성적으로 합쳐진다. 제작지원의 효과를 관객 수만으로 평가할 경우 완성된 영화가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상영됐는지는 숫자 뒤로 밀려난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처럼 새로운 세계관을 처음 소개하는 액션영화는 관객 반응이 축적될 시간이 필요하다. 제1연옥부터 제4연옥까지 나뉜 격리구역과 연옥장, 절대 권력자 염왕, 염왕 제거 임무를 받은 무기수 유성의 관계를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설득해야 한다. 전편의 흥행과 팬덤이 없는 신작은 개봉 이후 관객의 평가를 통해 인지도를 쌓는다.

홍보비의 격차도 상영 기회와 연결된다.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 예능과 인터뷰, 옥외광고에서 반복해서 노출되는 작품은 개봉 전에 관객의 기억에 들어간다. 작은 배급망을 통해 개봉하는 영화는 작품을 알리는 단계부터 제한된 자원을 나눠 써야 한다. 배우와 감독의 인터뷰, 지역 방송 출연, 시사회와 관객과의 대화가 광고비를 대신하는 접점이 된다.

브루스 칸이 광주 KBC ‘뉴스와이드’ 인터뷰에 출연해 액션 철학과 촬영 과정을 전한 일정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전국 단위의 대규모 광고 대신 지역 방송과 개별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존재를 알리는 방식이다. 지역 매체의 소개가 실제 지역 상영관과 관람 시간으로 이어질 때 홍보는 관객 접근성으로 완성된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 정부의 영화지원 확대는 제작과 유통을 함께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범위가 넓어졌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신청 자격을 제작사와 감독 개인에게까지 확대한 조치는 배급사를 확보하지 못한 작품에도 개봉 준비의 통로를 열어준다. 유통·배급 종합지원과 상영 프로그램 운영도 관객이 작품을 발견할 접점을 늘리는 방향이다.

제작지원과 개봉지원 사이에는 여전히 극장의 편성 권한과 관객 수요라는 시장 조건이 놓여 있다. 공공지원이 극장의 모든 상영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관객이 찾지 않는 작품을 장기간 유지하는 방식도 지속되기 어렵다. 정책이 다룰 영역은 흥행 결과를 보장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작품이 관객 앞에서 평가받을 최소한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데 있다.

관객 개발도 할인권 배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할인 혜택이 인지도가 높은 작품에 집중되면 전체 관객 수는 늘어도 영화 선택의 폭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와 중소 규모 장르영화의 정보가 관객에게 전달되고, 지역에서도 관람 가능한 회차가 마련돼야 지원이 작품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영화관에서의 수명만 정책의 범위로 볼 수도 없다. 극장 상영이 끝난 뒤 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주문형 비디오, 공동체 상영, 지역 문화시설로 이어지는 유통 경로도 필요하다. 개봉 첫 주에 성패가 결정되는 구조를 완화하려면 작품이 더 긴 시간에 걸쳐 관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중소 규모 장르영화는 극장 밖에서도 별도의 관객층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액션과 공포, 스릴러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전달되는 시청각 문법을 갖는다. 국내 극장에서 큰 관객을 모으지 못한 작품도 해외 판매와 온라인 유통을 통해 제작비 회수의 통로를 넓힐 수 있다. 제작지원과 국내 개봉지원, 해외 유통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될 때 한 편의 영화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정부의 지원은 흥행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장치가 아니다.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할 위험까지 없애면 창작과 투자의 긴장도 약해질 수 있다. 공공정책이 맡을 부분은 성공작을 미리 골라내는 일이 아니라 시장의 단기 수익성만으로 사라질 수 있는 인력과 장르, 새로운 표현 방식이 관객에게 도달할 가능성을 지키는 데 있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중예산영화 지원 200억원과 독립예술영화 지원 205억원은 제작 현장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한다. 기획개발지원 46억원은 아직 촬영에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와 제작사의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예산이 산업의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선정 편수보다 제작 완료율과 개봉 여부, 상영 기간, 지역별 접근성, 후속 작품 제작으로 이어진 흐름까지 살펴야 한다.

영화 한 편이 남기는 가치는 관객 수와 매출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독과 배우는 장편 제작 경험을 얻고, 무술감독과 스턴트팀은 동작과 안전 기술을 축적한다. 촬영·조명·미술·분장 인력도 다음 작품으로 경험을 가져간다. 작품이 관객과 만날 때 창작자는 어떤 선택이 설득력을 얻었는지 확인하고 다음 제작에 반영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다양성도 제작지원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규모와 장르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극장과 지역 문화시설, 온라인 유통망에서 관객을 만나며, 제작 인력이 다음 작품으로 이동해야 생태계가 이어진다. 한 단계라도 끊기면 완성된 영화는 남아도 산업의 연속성은 약해진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이현명·브루스 칸 감독이 공동 연출하고 브루스 칸, 이채영, 김재현, 조성하, 박철민, 조재윤, 예수정 등이 출연한다. 9월 9일 개봉 뒤에는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 시간대별 편성, 지역별 상영관, 첫 주 이후 회차 변화가 작품과 관객 사이의 실제 거리를 결정한다.

이재명 정부의 영화지원 확대는 제작이 위축된 한국영화 산업에 자금을 다시 공급하기 시작했다. 기획에서 촬영으로, 완성에서 개봉으로, 극장에서 관객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함께 열려야 예산은 작품 수를 넘어 산업의 회복으로 남는다.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정책과 만들어진 영화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한국영화의 다양성도 관객의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