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와 탑코트의 광택 사이 보라·청록의 색이 순환하는 2010년작
잉태된 생명의 공간에서 나비와 자연, 여러 자아가 뒤섞이고…타원 밖으로 확장되는 빛의 결

나비킴(Navikim·김현정), ‘제로 2(Zero 2)’, 2010, Mother-of-pearl and topcoat on printed fine art paper, 87×116cm. 수직 타원 안에 나비와 꽃, 중첩된 색을 담고 자개와 탑코트의 광택을 더해 생명과 빛의 순환을 구성했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제로 2(Zero 2)’, 2010, Mother-of-pearl and topcoat on printed fine art paper, 87×116cm. 수직 타원 안에 나비와 꽃, 중첩된 색을 담고 자개와 탑코트의 광택을 더해 생명과 빛의 순환을 구성했다.

[KtN 박준식기자]커다란 타원이 작품 전면을 채운다. 청록빛 가장자리 안쪽으로 보라와 남색, 흰색과 분홍, 검은빛이 겹쳐 돌고, 상단에는 주황빛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친다. 색은 중심을 향해 감겼다가 다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타원 뒤에서는 가느다란 선들이 사방으로 번진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10년작 ‘제로 2(Zero 2)’는 나비 한 마리를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생명이 잉태되고 움직이며 밖으로 나아가기 직전의 공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구성한다.

가장 먼저 작품을 붙드는 형태는 수직으로 세워진 타원이다. 위아래로 길게 늘어난 외곽은 알을 연상시키고, 동시에 숫자 ‘0’의 형태와 겹친다. 김현정 작가는 ‘제로’ 연작에서 타원을 생명의 근원과 시작,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형상으로 받아들였다. 시작과 끝이 하나로 이어지는 ‘0’은 순환을 품고, 알은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생명을 안쪽에 품는다.

‘제로 2’의 타원은 그래서 비어 있는 원이 아니다. 깨어나기 전의 생명이 응축된 공간에 가깝다.

타원 안에는 나비만 존재하지 않는다. 꽃과 잎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 보라와 청록의 큰 색 덩어리, 어둡게 뭉친 중심부와 밝게 번지는 색이 한데 뒤섞인다. 구체적인 자연의 형상과 추상적인 색의 흔적이 한 공간 안에서 겹치면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이 공간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압축한 기하학적 형태로도 읽힌다. 하나의 타원 안에 서로 다른 생명과 감정, 자연의 흔적과 여러 자아가 공존한다. 각각의 존재는 또렷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어느 색은 다른 색 안으로 흘러들고, 꽃과 나비의 윤곽도 주변의 색과 맞물린다. 하나의 생명체 안에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겹쳐 있듯, ‘제로 2’의 타원 내부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쉽게 닫히지 않는다.

보라와 남색은 안쪽으로 깊게 감기고, 청록과 흰색은 그 흐름을 밀어 올린다. 중심의 어두운 부분은 빈 공간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색을 끌어당긴다. 밝음과 어둠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회전 안에서 계속 자리를 바꾼다.

김 작가가 ‘제로’ 연작에서 꽃과 나비를 삶과 자연의 변화, 관계와 감정의 순환과 연결한 것도 이 구성과 맞닿아 있다. 타원 안에 놓인 생명은 한 자리에 고정되지 않고 서로 다른 색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변한다.

타원의 외곽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된다.

가느다란 선들이 청록빛 경계 뒤에서 사방으로 퍼진다. 타원 안쪽이 생명을 품고 응축하는 공간이라면 바깥쪽의 방사형 선은 안에서 축적된 빛과 에너지가 외부로 발현되는 흐름에 가깝다. 내부는 둥근 경계 안에 갇혀 있지만 빛은 그 경계를 넘는다.

김현정 작가는 ‘제로’ 연작에서 타원을 둘러싼 빛을 바깥으로 확장하는 구성을 사용했다. 꽃과 나비가 소용돌이 형태로 움직이고, 타원 뒤편에서 빛이 퍼지면서 내부의 생명과 외부의 공간이 연결된다.

알 안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 있고, 알 바깥에는 이미 빛이 번지고 있다.

‘제로 2’의 긴장은 이 두 방향에서 생긴다. 타원은 생명을 보호하는 껍질이면서 동시에 넘어야 할 경계다. 나비는 그 안에서 이미 날개를 펼쳤지만 아직 바깥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비상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막 시작되려는 상태에 놓인다.

2010년 김 작가의 작업노트에도 알과 나비의 관계가 이어진다. 나비는 알과 같은 원형 안에서 날개를 펼치고 또 다른 세계로의 상승과 비상을 꿈꾸는 존재로 기록돼 있다.

이 해석을 작품의 구성과 연결하면 타원은 단순한 장식적 틀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알이고, 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이며, 안쪽의 자아가 밖의 세계와 만나기 전 머무는 공간이다. 그 내부에는 하나의 나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을 지닌 여러 존재가 공존한다.

주황빛 나비가 타원 상단에 놓인 것도 흥미롭다. 정중앙을 독점하지 않고 다른 색과 자연의 형상 사이에 들어가 있다. ‘첫 만남’에서 나비가 꽃 위에 내려앉은 구체적인 생명체로 나타났다면 ‘제로 2’에서는 나비가 더 큰 세계 안에 포함된다. 나비보다 타원이 크고, 타원보다 그 뒤에서 퍼지는 빛의 범위가 넓다.

나비의 의미도 개인적인 자유에서 보다 넓은 생명의 순환으로 이동한다.

작품의 물성은 이런 구조에 또 하나의 층을 더한다. ‘제로 2’에는 자개와 탑코트가 사용됐다. 자개는 빛의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을 반사하는 간섭색을 지닌다.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지 않고 청록과 보라, 녹색과 분홍의 기운을 오가며 변화한다. 김 작가는 이 성질을 나비 날개의 광택과 연결했고, 물질이 빛을 머금고 스스로 색을 바꾸는 효과에 주목했다.

따라서 ‘제로 2’의 빛은 흰색을 많이 사용해 만들어진 밝음과 다르다. 작품 표면이 실제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고, 자개와 광택층이 이를 다시 반사하면서 색의 인상이 달라진다. 관람자의 위치와 조명에 따라 같은 부분에서도 다른 색이 떠오를 수 있다.

고정된 색채가 아니라 움직이는 빛의 조건을 회화 안으로 들인 셈이다.

김현정 작가의 빛 탐구는 이 시기에 중요한 변화를 거쳤다. 2009년 ‘날으는 빛(Flying Light)’에서는 LED와 투명 매체를 이용해 빛의 색을 직접 다뤘지만, 광원의 선명함을 피그먼트 프린트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실제 빛이 가진 투명성과 밝음이 약해지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빛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 물질 자체가 빛을 받아 변화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실험이 이어졌다.

‘제로 2’에서 선택한 자개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다.

빛을 직접 발산하는 LED와 달리 자개는 빛을 받아 반사한다. 그러나 반사의 결과는 단순하지 않다. 재료의 결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보는 위치에 따라 빛이 이동한다. 나비의 날개가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드러내듯 작품 역시 고정된 한 순간에 머물지 않는다.

탑코트의 광택도 표면을 단순히 매끄럽게 마감하는 기능에서 벗어난다. 김 작가는 이후 ‘제로’ 연작에서 자개와 금박, 펄, 산업용 탑코트를 중첩하며 빛이 표면에서 굴절되고 흩어지도록 했다. 재료에 미세한 높낮이를 남겨 빛의 반응을 다양하게 만드는 방식도 이어졌다.

이런 물성은 ‘제로 2’의 알과도 연결된다. 매끄러운 알처럼 보이는 타원 안에는 실제로 수많은 색과 질감이 중첩돼 있다. 겉으로는 하나의 형태지만 내부는 단일하지 않다. 생명이 하나의 몸 안에서 수없이 다른 세포와 움직임을 품듯 타원 안의 색도 끊임없이 갈라지고 합쳐진다.

타원 외부의 방사형 구조는 이 내부 에너지가 더 이상 안쪽에만 머물지 않는 상태를 이어준다. 여러 방향으로 뻗는 가느다란 선은 광선처럼 바깥을 향하고, 내부의 색과 외부의 공간 사이에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안쪽에서는 생명이 잉태되고, 바깥에서는 빛이 발현된다.

김 작가가 이후 ‘무한(Infinity)’과 ‘별과 별사이(Interstellar)’에서 실제 광원을 나비 안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을 생각하면 ‘제로 2’는 중요한 중간 단계에 놓인다. ‘프라하의 창’에서는 외부의 빛을 바라봤고, ‘첫 만남’에서는 나비가 등장했다. ‘날으는 빛’에서는 빛 자체를 재료로 실험했다. ‘제로 2’에서는 생명을 품은 세계와 빛을 반사하는 물질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만난다.

이후 나비가 직접 빛을 품게 되기 전, 먼저 등장한 것은 알처럼 닫힌 하나의 세계다.

그 안에서는 자연과 나비, 서로 다른 자아와 색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타원의 경계는 내부를 붙들지만 그 뒤에서 수많은 빛의 결이 이미 바깥으로 퍼진다. 나비는 아직 그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지만 날개는 펼쳐져 있다.

‘제로 2’의 타원은 그래서 끝을 뜻하는 ‘0’이 아니다. 생명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기 전 모든 가능성을 품은 알이자, 여러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이며, 그 안에서 축적된 빛이 바깥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는 출발의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