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청록·분홍의 투명한 색층 사이 겹쳐지는 나비의 형상
스테인드글라스의 투과광을 RGB 빛으로 확장…‘빛을 받는 나비’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나비’로

나비킴(Navikim·김현정), ‘날으는 빛 7(Flying Light 7)’, 2009, Constructed photography, Pigment print, 56×73cm. 투명 매체와 RGB 광원의 투과·반사·산란을 이용해 빛과 나비의 형상을 구성한 뒤 사진과 피그먼트 프린트로 완성한 작품이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날으는 빛 7(Flying Light 7)’, 2009, Constructed photography, Pigment print, 56×73cm. 투명 매체와 RGB 광원의 투과·반사·산란을 이용해 빛과 나비의 형상을 구성한 뒤 사진과 피그먼트 프린트로 완성한 작품이다.

[KtN 박준식기자]짙은 남보라와 청색 사이로 나비들이 떠오른다. 어떤 나비는 윤곽이 선명하고, 어떤 나비는 빛과 색의 층에 스며들며 형태가 흐려진다. 중심부에서는 분홍과 자주, 연두와 청록이 서로 겹쳐지고, 작은 색 조각들은 유리 파편처럼 이어진다. 나비의 몸과 날개, 배경의 경계가 한 번에 구분되지 않는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09년작 ‘날으는 빛 7(Flying Light 7)’은 나비를 색으로 묘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작업이다. 물감으로 빛의 인상을 그리는 대신 실제 광원의 투과와 반사, 산란을 제작 과정에 끌어들였다. 최종 결과물은 피그먼트 프린트지만, 그 앞단에는 플렉시글라스와 RGB 광원, 여러 물성을 공간 안에 구성하고 이를 촬영하는 과정이 놓여 있다.

2005년 ‘프라하의 창(The Window of Prague)’에서 출발한 빛의 경험이 4년 뒤 재료의 변화로 이어진 셈이다.

‘프라하의 창’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의 인상을 장지와 분채로 옮겼다. 그러나 안료는 색을 섞을수록 명도가 낮아지는 감산혼합의 성질을 갖는다. 김현정 작가가 경험한 투명하고 선명한 빛을 물감만으로 되살리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날으는 빛’ 연작에서는 그 문제를 색을 더 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빛을 직접 겹치는 방식으로 바꿨다.

‘날으는 빛 7’의 색채가 일반적인 채색 회화와 다른 인상을 주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보라와 청색은 하나의 평평한 색면으로 머물지 않는다. 청록과 녹색, 분홍과 적색이 여러 층에서 서로 비치고 겹치면서 색 사이에 깊이가 생긴다. 중심부의 밝은 색은 어두운 나비 형상 사이로 새어 나오고, 가장자리의 짙은 청색과 남색은 그 밝음을 다시 끌어당긴다. 빛과 어둠이 한쪽을 지우지 않고 서로를 통해 색의 밀도를 높인다.

RGB는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의 빛을 뜻한다. 물감을 섞는 방식과 달리 빛은 서로 더해질수록 밝아진다. 세 빛이 중첩되면서 새로운 색과 밝음이 발생하는 가산혼합의 원리는 김 작가가 추구하던 ‘빛나는 색채’를 실제 광원에서 시험할 수 있게 했다. ‘날으는 빛’ 연작에서는 LED의 삼원색을 교차·병치하며 빛 자체가 색을 만드는 조건을 실험했다.

이 변화는 나비의 모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 만남’의 나비는 꽃에 내려앉은 한 마리의 구체적인 생명체였다. 몸통과 날개, 날개맥이 비교적 또렷했고 주변 자연과 구별되는 하나의 대상이었다. ‘날으는 빛 7’에서는 나비가 한 마리로 고정되지 않는다. 크기와 농도가 다른 나비 형상이 겹치고, 일부는 깊은 남색의 그림자처럼 남으며, 일부는 투명한 색층 안에서 흔적처럼 떠오른다.

한 개체를 바라보는 시선보다 나비가 빛을 통과하며 여러 상태로 변하는 과정이 앞으로 나온다.

앞쪽의 짙은 나비 형상들은 작품에 깊이를 만든다. 검푸른 윤곽이 밝은 색을 부분적으로 가리면서 가까운 층을 형성하고, 뒤쪽의 연두와 분홍, 청록의 조각들은 훨씬 멀리 퍼져 있는 것처럼 놓인다. 평면에 인쇄된 결과물이지만 여러 겹의 투명한 재료를 통과해 들어가는 듯한 공간감이 생기는 이유다.

나비의 윤곽도 완전하게 닫혀 있지 않다. 날개 일부는 주변의 색과 섞이고, 몸통과 배경 사이의 구분도 곳곳에서 느슨해진다. 나비를 하나의 고정된 도상으로 굳히기보다 빛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존재로 바꾼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경험은 이런 구성의 밑바탕에 남아 있다.

색유리는 스스로 빛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지만 빛을 통과시키면서 색을 공간에 퍼뜨린다. ‘날으는 빛 7’의 제작 과정에서도 투명한 플렉시글라스가 빛을 통과시키고 반사하는 매개로 사용됐다. RGB 광원이 투명 재료를 지나면서 생긴 반사와 산란, 색의 중첩을 구성하고 이를 촬영해 최종 이미지로 전환했다.

‘날으는 빛 7’은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 아니다. 중세 건축에서 색유리와 햇빛이 만들었던 투과의 원리를 플렉시글라스와 인공광, 사진이라는 현대적 매체로 옮긴 작업에 가깝다. 김 작가는 투명 재료를 통과하는 빛이 색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새로운 제작 방식으로 이어갔다.

작품 안에서 나비와 빛의 관계도 이전과 달라진다.

나비가 빛이 비치는 장소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색을 가진 빛과 나비의 형상이 서로 침투한다. 보라와 청색의 나비 안에 작은 분홍과 노랑, 청록의 점들이 들어오고, 주변 색은 다시 나비의 윤곽을 넘어간다. 빛이 나비를 비추는 외부 조건에서 나비와 빛이 하나의 형상으로 겹쳐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지점에서 김현정 작가의 ‘빛의 나비’라는 개념도 보다 구체적인 조형 언어를 얻는다.

‘프라하의 창’에는 빛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고, ‘기다림’에는 밝음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가 있었다. ‘첫 만남’에서는 날개를 가진 나비가 등장했다. ‘날으는 빛 7’에 이르면 나비는 더 이상 빛을 향해 이동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빛이 나비의 색과 형태 안으로 직접 들어오기 시작한다.

김 작가는 ‘날으는 빛 7’을 ‘빛의 나비’가 머무는 투명한 공간으로 구성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경험한 빛의 색채가 외부 공간으로 퍼졌던 것처럼, 이 작업에서는 나비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빛의 층으로 변한다.

중앙을 하나의 나비로 고정하지 않은 구성도 이 개념과 연결된다. 여러 나비가 서로 겹치면서 개별 형상보다 공간 전체의 흐름이 커진다. 나비 한 마리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나비들이 머물고 이동하는 공간 자체가 빛으로 물든다.

색의 조각들이 반복되는 방식에서는 ‘프라하의 창’에 등장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기억도 이어진다. 작은 색면들이 한 개의 색으로 합쳐지지 않고 각자의 색을 유지한 채 인접하고 겹친다. 다만 2005년 작품의 색유리가 일정한 틀 안에서 배열됐다면 ‘날으는 빛 7’의 색은 훨씬 자유롭게 흩어진다. 색의 조각은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빛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감각을 만든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선택도 작품의 성격을 바꾼다.

김현정 작가는 촬영할 대상을 먼저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페인팅과 콜라주, LED와 투명 재료 등을 실제 공간에 배치한 뒤 빛의 반사와 산란으로 만들어진 상태를 기록했다. 따라서 ‘Constructed photography’는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그대로 찍는 기록사진과 다르다. 사진을 찍기 전에 촬영될 세계 자체를 먼저 만드는 방식이다.

실재하는 광원과 투명 재료가 만나 만들어낸 순간은 사진으로 포착된 뒤 피그먼트 프린트로 고정된다.

여기에는 역설도 있다. 실제 LED 빛은 계속 변화할 수 있지만 인쇄된 이미지는 그 순간을 정지시킨다. 빛의 투명함과 움직임을 얻기 위해 실제 광원을 사용했지만 최종 결과에서는 다시 평면의 색으로 돌아온다. 김 작가는 이후 피그먼트 프린트로 옮기는 과정에서 LED 원광의 선명함과 투명성이 약화되는 한계를 경험했고, 이 문제는 자개와 마티에르, 다시 실제 LED를 작품 내부에 직접 사용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날으는 빛 7’은 김현정 작가의 작업에서 완결된 종착점이라기보다 중요한 실험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안료로 빛을 묘사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빛으로 색을 만들었고, 그 빛을 다시 사진과 프린트로 회화의 영역에 돌려놓았다. 물감과 광원, 투명 재료와 사진이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눠 갖는다.

‘제로(Zero)’ 연작에서는 자개처럼 외부 빛을 받아 변화하는 물질이 들어오고, ‘무한(Infinity)’에서는 LED 광원이 작품의 구조 안으로 들어간다. ‘별과 별사이(Interstellar)’에 이르면 빛은 나비의 중심에서 실제로 발광한다. ‘날으는 빛 7’은 그 변화 사이에서 빛을 그리는 단계와 빛 자체를 작품으로 사용하는 단계가 처음 본격적으로 만난 자리에 놓인다.

2009년의 나비들은 아직 하나의 중심에 정착하지 않는다. 짙은 형상과 투명한 형상 사이를 오가고, 보라와 청록, 분홍과 녹색의 빛을 통과하면서 여러 모습으로 겹쳐진다.

‘첫 만남’에서 꽃 위에 머물던 나비는 ‘날으는 빛 7’에서 색과 빛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나비가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이때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빛은 더 이상 나비가 도달해야 할 먼 곳에만 있지 않다. 빛이 날개와 몸을 통과하고, 마침내 나비를 이루는 재료가 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