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유화에서 인물과 신화적 동물을 대신한 사각형과 색채의 중첩…음악적 리듬으로 확장된 쉬가예프의 추상회화
[KtN 박준식기자]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2004년작 ‘밤의 교향곡(Night Symphony)’에는 희뿌연 색채 사이로 크고 작은 사각형들이 떠오른다. 중앙에는 회색과 연노란색이 얇게 겹쳐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짙은 갈색의 사각형이 자리한다. 왼쪽 아래의 올리브색과 청록색, 상단의 흐릿한 보라색이 서로 다른 농도로 번지면서 캔버스에 미묘한 깊이를 만든다. 뚜렷한 인물이나 동물 대신 색채의 겹침과 사각형의 배열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밤의 교향곡’은 쉬가예프가 오랫동안 다뤄온 자연과 신화적 형상을 추상적인 색채와 구조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초기 판화에서 산과 집, 사람과 동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형상을 단순화하고 여러 기호와 결합하는 회화를 제작했다. 1990년대에는 인간과 신화적 존재, 동물의 모습을 상징적인 형태로 변형했고, 2000년대에는 기하학적 구조와 색채의 관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탐색했다. ‘밤의 교향곡’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사각형의 배열과 색채의 중첩으로 나타난다.
작품의 중심에는 회색과 흰색, 연노란색이 겹친 넓은 영역이 놓여 있다. 색채는 비교적 얇게 펼쳐져 있으며, 아래에 칠한 물감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희뿌연 색면 사이에는 세로로 길게 이어진 선과 짧은 수평선들이 나타난다. 일부는 사각형의 경계를 이루고 다른 부분은 주변의 색채에 스며들어 형태가 흐려진다.
캔버스 상단에는 회색과 보라색이 섞인 넓은 색면이 펼쳐져 있다. 왼쪽에는 짙은 회색의 흔적이 남아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 사각형 안에 어두운 색채가 겹쳐 있다. 상단의 색면은 아래쪽보다 밝고 흐릿한 인상을 주며, 여러 층의 물감이 쌓인 표면에서 미세한 색채의 변화가 나타난다.
중앙의 사각형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색채를 지닌다. 왼쪽에는 회색과 푸른색이 섞인 작은 사각형이 놓여 있고, 그 오른쪽에는 연노란색과 청록색의 직사각형이 자리한다. 중앙 오른쪽에는 갈색과 붉은색이 겹친 사각형이 있으며, 그 옆에는 희미한 선들이 복잡하게 얽힌 작은 영역이 나타난다. 각 사각형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지만 크기와 형태, 색채의 농도가 달라 단순한 반복보다 복합적인 배열을 이룬다.
사각형의 경계는 일부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다른 부분에서는 흐릿하게 사라진다. 회색과 흰색의 얇은 물감이 여러 영역을 덮으면서 아래쪽의 색채가 부분적으로 비친다. 붉은색과 갈색, 청록색과 노란색이 희뿌연 바탕 아래에서 드러나며 작품 전체에 깊이를 만든다. 색채의 겹침은 하나의 형상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듯한 움직임을 형성한다.
오른쪽 아래의 짙은 갈색 사각형은 작품에서 가장 강한 무게를 지닌 부분이다. 어두운 갈색과 검은색이 겹쳐진 내부에는 가느다란 선과 긁힌 흔적이 남아 있다. 사각형의 오른쪽과 아래쪽에는 비교적 밝은 색채가 놓여 있어 어두운 면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품 전체에 퍼진 희뿌연 색채와 대비되면서 관람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 부분에 머문다.
짙은 갈색 사각형의 표면에는 여러 방향의 선이 남아 있다. 일부는 곡선으로 이어지고 다른 부분은 짧게 끊어진다. 선들은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기보다 어두운 색면의 내부에 작은 움직임을 더한다. 넓은 갈색의 면과 가느다란 선이 결합하면서 단순한 사각형 안에도 복잡한 질감이 형성된다.
왼쪽 아래에는 올리브색과 회색, 청록색이 겹친 영역이 자리한다. 세로로 긴 형태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사이에는 밝은 흰색과 노란색의 작은 부분이 드러난다. 일부 선은 아래로 길게 이어지며 다른 부분은 짧은 수평선과 교차한다. 이 영역은 작품 상단의 흐릿한 색면보다 선의 밀도가 높고, 색채의 대비도 강하다.
캔버스 아래쪽 중앙에는 연보라색과 회색이 겹친 좁은 직사각형이 놓여 있다. 주변의 올리브색과 황갈색 사이에서 차가운 색채가 드러나며 작품 하단에 작은 변화를 만든다. 오른쪽의 짙은 갈색 사각형과 왼쪽의 올리브색 영역 사이에 놓인 연보라색은 두 영역을 연결하는 중간 색채로 작용한다.
‘밤의 교향곡’에서 사각형은 작품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룬다. 상단과 중앙, 하단에 서로 다른 크기의 사각형들이 놓여 있고, 일부는 명확한 윤곽을 유지하며 다른 부분은 주변의 색채와 섞인다. 직선과 수평선이 반복되지만 배열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각형의 크기와 간격, 색채의 농도가 달라지면서 작품 전체에 리듬이 형성된다.
작품 제목에 들어간 ‘교향곡’은 이러한 조형적 구성을 음악과 연결한다. 서로 다른 음색과 악기가 하나의 곡을 이루듯 회색과 노란색, 올리브색과 갈색, 보라색과 청록색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관계를 맺는다. 사각형의 반복은 일정한 박자를 떠올리게 하고, 색채의 농도 변화는 음량과 음색의 차이를 연상시킨다. 쉬가예프는 색채와 형태의 반복을 통해 시각적인 리듬을 구성했다.
‘밤’이라는 제목도 작품의 색채와 연결된다. 희뿌연 회색과 연노란색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빛을 떠올리게 하고, 짙은 갈색의 사각형은 깊은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작품 전체에는 밝은 색채가 넓게 펼쳐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어두운 색과 선들이 남아 있다. 밝음과 어둠이 겹쳐진 표면은 밤의 공간에서 사물의 윤곽이 흐려지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쉬가예프는 색채를 두껍게 쌓거나 얇게 덮는 방식을 함께 사용했다. 일부 영역에서는 아래에 칠한 색이 희미하게 비치고, 다른 부분에서는 거친 붓질과 긁힌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오른쪽 아래의 갈색 사각형은 짙은 색채와 선이 겹쳐진 표면을 지니며, 중앙의 밝은 영역은 얇은 색채가 여러 층으로 쌓인 듯한 질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표면의 차이는 작품에 시간의 감각을 더한다. 먼저 칠한 색채가 완전히 가려지지 않고 남아 있으며, 그 위에 새로운 색이 덧입혀진다. 일부 형상은 희미하게 드러나고 다른 형상은 비교적 분명한 윤곽을 유지한다. 여러 층의 물감이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기면서 작품의 표면은 하나의 시간에 완성된 단순한 색면보다 복합적인 구조를 지닌다.
1980년대 초 쉬가예프의 색채 판화에서는 구체적인 풍경과 인물이 중심을 이뤘다. ‘햇빛 비친 집’에서는 산과 집, 말이 분명한 형태로 표현됐고, ‘비둘기를 든 소녀’에서는 소녀와 말, 비둘기가 하나의 공간에 등장했다.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관찰한 결과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남아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의 유화에서는 이러한 형상들이 점차 단순화되고 변형됐다. ‘수중 세계’에서는 물고기와 수초, 둥근 기호들이 짙푸른 공간에 함께 등장했고, ‘납치’에서는 붉은 짐승의 몸과 바퀴, 기호들이 결합했다. ‘호숫가’에서는 자연의 형상이 붉은 덩어리와 청록색의 생명체, 원형과 십자형의 기호로 재구성됐다. 구체적인 생명체와 추상적인 기호가 서로 다른 관계를 맺으며 회화의 공간을 구성했다.
1990년대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동물, 신화적 형상이 더욱 밀접하게 결합했다. ‘산책’에서는 여성과 검은 신화적 존재가 보랏빛 공간에 나란히 서 있었고, ‘여행자들’에서는 두 인물과 기마상, 산과 여러 기호가 넓은 대지에 배치됐다. 1997년 ‘자밀라’에서는 두 얼굴이 겹쳐지고 분홍빛 새의 날개가 인물의 몸 앞을 가로질렀다. 구체적인 형상과 상징적 이미지가 하나의 공간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2000년 ‘술레이만 산’에서는 자연의 산이 거대한 삼각형으로 압축됐다. 짙은 갈색의 삼각형은 붉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였고, 아래쪽의 보라색 바탕에는 눈과 물고기, 원형과 삼각형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이 가로로 배열됐다. 자연의 지형이 기하학적 구조로 정리되고, 기호들이 독립적인 조형 요소로 자리한 작품이었다.
‘밤의 교향곡’에서는 이러한 기하학적 구조가 더욱 자유로운 색채의 관계로 이어진다. 중앙의 사각형들은 서로 다른 색채를 지니며 반복되고, 일부는 흐릿한 회색과 흰색 아래로 스며든다. 산이나 인물, 동물의 구체적인 모습 대신 색채의 겹침과 사각형의 배열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자연과 신화적 형상을 다루던 조형언어가 색채와 구조 자체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것이다.
쉬가예프는 ‘밤의 교향곡’에서 넓은 밝은 색면과 작은 어두운 사각형을 대비시켰다. 상단과 중앙에는 회색과 흰색, 연노란색이 넓게 펼쳐지고, 오른쪽 아래에는 짙은 갈색의 사각형이 자리한다. 왼쪽 아래의 올리브색과 청록색은 중간의 색채를 형성하며, 작은 붉은색과 보라색의 흔적들이 전체에 변화를 더한다. 밝고 어두운 색채의 균형이 작품의 주요 구조를 이룬다.
작품의 세로와 가로 비례는 거의 비슷하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캔버스 안에 여러 사각형이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이면서 안정적인 구도가 형성된다. 중앙의 밝은 영역과 오른쪽 아래의 어두운 사각형, 왼쪽 아래의 올리브색 영역이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니며 균형을 만든다. 사각형의 반복과 색채의 변화가 작품 전체를 연결한다.
‘밤의 교향곡’은 쉬가예프가 2000년대에 발전시킨 추상적 조형언어의 한 방향을 드러낸다. 자연과 인간, 신화적 존재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했던 초기와 중기의 작업에서 나아가, 색채와 사각형의 배열을 통해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했다. 사각형의 경계가 흐려지고 색채가 여러 층으로 겹치면서 작품의 표면에는 시간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2004년의 ‘밤의 교향곡’에서 회색과 흰색, 연노란색은 넓은 공간을 이루고, 짙은 갈색과 올리브색, 보라색과 청록색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작은 변화를 만든다. 사각형의 반복과 색채의 중첩은 음악적인 리듬을 연상시키며, 희미하게 드러나는 선과 형태는 밤의 공간에서 사물이 흐려지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쉬가예프는 구체적인 형상보다 색채와 구조의 관계를 강조하며 회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했다. ‘밤의 교향곡’은 자연과 신화적 상징에서 출발한 작가의 조형적 탐색이 색채의 울림과 추상적인 공간으로 이어진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