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와 자연의 형상을 결합한 목조 조각… '투명한 것에 대하여'에서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까지, 16년에 걸친 조형의 변화

[KtN 박준식기자]조각가 전경선의 2026년 작품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에는 두 팔을 몸 앞에 모으고 무릎을 굽힌 인체가 등장한다. 의자 없이 앉은 자세를 취한 인물은 가느다란 발끝을 아래로 향하고 있지만, 머리 부분은 일반적인 사람의 형상과 전혀 다르다. 얼굴 대신 굵은 나무줄기가 좌우로 휘어지고, 뿌리와 가지를 연상시키는 가느다란 형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목에서 이어진 곡선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인체의 바깥쪽까지 뻗어나간다.

나무로 제작된 인체는 어깨와 허리, 팔과 다리의 위치를 비교적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다. 반면 머리 부분에서는 신체의 윤곽이 흐려지고 여러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태가 뒤섞인다. 사람의 몸을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어느 한 생명체의 모습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조각이다. 인간과 자연을 별개의 대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신체 안에 결합해 온 전경선의 작업 방식이 최근 작품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전경선,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Abandoned, Vanishing, Becoming), 나무, 180×140×90cm, 2026. 사진=10의n승
전경선,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Abandoned, Vanishing, Becoming), 나무, 180×140×90cm, 2026. 사진=10의n승

서울 서대문구 전시공간 10의n승에서 10월 10일 개막한 '거짓 친숙성(False Familiarity)'에 설치된 작품은 인체의 변형과 자연물의 결합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의 몸통에서 시작된 형태가 목을 지나 머리 위에서 복잡하게 갈라지면서 조각의 위쪽과 아래쪽에 서로 다른 비례가 나타난다.

앉은 인물의 몸통에는 옷의 주름을 닮은 세로선이 길게 새겨져 있다. 팔은 가슴과 배 앞에 모여 있고, 구부러진 무릎 아래로 가느다란 다리가 이어진다. 인물의 자세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신체적 특징은 남아 있지만 근육과 관절을 세밀하게 재현하거나 얼굴 표정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머리에서는 나무의 굵기와 곡선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굵은 줄기들이 둥글게 휘어 넓은 공간을 감싸고, 중심부에서는 여러 갈래의 가느다란 가지가 교차한다. 일부는 바깥쪽으로 뻗다가 다시 안쪽으로 돌아오며, 아래로 늘어진 부분은 목과 어깨 부근의 형상과 연결된다. 인체의 머리에 해당하는 영역이 신체의 비례를 벗어나 좌우로 크게 확장된 구성이다.

가지를 닮은 형태들은 식물의 생장 구조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 식물의 특징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동물의 뿔이나 뿌리의 구조와도 닮은 부분이 있어 형상의 성격을 하나로 특정하기 어렵다. 인체의 머리를 다른 자연물로 단순하게 대체했다기보다 여러 형태를 겹쳐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만든 작업에 가깝다.

상체와 다리가 비교적 좁은 영역에 모여 있는 반면 머리에서 뻗어나간 나무줄기는 주변으로 넓게 퍼진다. 두 팔을 몸 가까이 붙인 자세와 바깥쪽으로 확장되는 곡선이 대비되면서 조각의 중심부에는 서로 다른 방향의 움직임이 형성된다.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형태의 밀도가 높아지고, 인체의 간결한 곡면은 복잡하게 얽힌 가지형 구조로 바뀐다.

목재의 색조가 인체와 머리의 구조에 공통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람의 몸과 자연물의 형태를 서로 다른 재료로 구분하지 않고 나무의 두께와 표면의 굴곡, 곡선의 방향을 바꿔 차이를 드러냈다. 몸통의 매끄러운 곡면과 머리 부분의 복잡한 굴곡은 하나의 재료로 이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형태적 특징을 지닌다.

나무줄기 사이에 형성된 빈 공간 역시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을 결정한다. 둥글게 휘어진 굵은 줄기 안쪽에는 넓은 틈이 생기고, 작은 가지들이 밀집한 곳에서는 불규칙한 공간이 반복된다. 관람하는 위치가 달라지면 겹쳐 있던 곡선의 간격도 달라져 인체의 머리를 하나의 고정된 윤곽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목재가 차지하는 부분과 비어 있는 부분이 함께 조각의 형태를 이루는 방식이다.

전경선은 2010년 '투명한 것에 대하여'에서도 앉은 인체를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의 형상을 결합했다. 두 작품에는 16년의 간격이 있지만 인간의 몸에서 다른 생명체의 형태가 확장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각각의 형상을 연결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나타난다.

전경선, '투명한 것에 대하여'(About the Things That Are Transparent), 나무, 270×280×200cm, 2010. 사진=10의n승
전경선, '투명한 것에 대하여'(About the Things That Are Transparent), 나무, 270×280×200cm, 2010. 사진=10의n승

'투명한 것에 대하여'는 다리를 길게 뻗은 인체 위로 사람의 얼굴과 나뭇가지, 새의 형상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상체에서 길게 올라간 목은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과 연결되고, 머리에서 뻗어나간 가지는 거의 수평에 가까운 방향으로 확장된다. 나뭇가지 주변에는 작은 새들이 앉거나 날고 있으며, 인물의 얼굴에도 눈과 입을 비롯한 구체적인 특징이 남아 있다.

인체와 자연물이 하나의 조각으로 연결돼 있지만 각 형상은 비교적 쉽게 구별된다. 새는 날개와 몸통의 형태를 지니고, 사람의 얼굴은 나뭇가지와 이어지면서도 고유한 윤곽을 유지한다. 길게 뻗은 다리와 상부의 수평적인 나무줄기는 서로 다른 방향을 이루며 인체의 비례보다 조각 전체가 차지하는 공간을 강조한다.

2026년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에서는 구체적인 새와 식물의 외형보다 복잡하게 얽힌 유기적 구조가 두드러진다. 나뭇가지와 뿌리를 닮은 형상들이 머리 부분에 집중돼 있지만 각각의 형태를 독립적인 대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얼굴 역시 분명한 윤곽을 잃고 주변의 곡선과 결합한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자세도 서로 다르다. 2010년 작품에서는 상체와 다리를 길게 늘이고 머리를 옆으로 기울인 인물이 자연물과 연결된다. 2026년 작품에서는 두 팔과 다리를 몸 가까이 모은 자세에 머리의 구조를 집중적으로 확장했다. 인체 주변에 새와 나뭇가지를 배치했던 구성에서 신체의 일부를 복잡하게 변형하는 방향으로 조형 방식이 달라졌다.

전경선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새와 나뭇잎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도 연결돼 있다. 가족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시기에 자연과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작은 생명과 주변 풍경은 현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세계가 됐다. 새와 나뭇잎은 이후 인간의 시선에서 쉽게 지나쳐지는 존재들을 다루는 조각의 주요 소재로 이어졌다.

자연물을 인체와 결합하는 작업은 인간과 동물을 서로 독립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전경선의 조각에서는 새와 식물이 사람의 몸에 연결되거나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인간의 형상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에도 다른 생명체와의 결합을 통해 비례와 구조가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물의 형태는 구체적인 생명체를 재현하는 데서 벗어나 기억과 감정을 표현하는 조형 요소로도 사용됐다. 2024년 '투명한 기억'은 인물의 자세보다 나무의 긴 구조와 내부에 겹쳐진 유기적인 형상을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전경선, '투명한 기억'(A Transparent Memory), 나무, 150×80×40cm, 2024. 사진=전경선 작가 자료
전경선, '투명한 기억'(A Transparent Memory), 나무, 150×80×40cm, 2024. 사진=전경선 작가 자료

'투명한 기억'에서는 바닥에서 길게 솟은 나무의 몸체가 윗부분에서 여러 갈래로 나뉜다. 아래쪽은 좁고 매끄러운 곡면으로 이어지지만 중앙에는 흰색과 연분홍색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형상이 자리한다. 주변의 나무줄기는 가지처럼 위쪽으로 뻗고, 일부는 안쪽으로 굽어 중앙의 구조를 감싼다.

목재의 자연스러운 색조와 밝은 색채가 대비되면서 조각의 중심부에 시선이 모인다. 길게 뻗은 아래쪽 구조와 윗부분의 복잡한 형태 사이에는 밀도의 차이가 나타나며, 가지와 가지 사이로 비어 있는 공간이 이어진다. 구체적인 인체의 자세를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들과 달리 줄기와 가지, 색채가 더해진 내부 형상이 전체적인 형태를 결정한다.

2010년 '투명한 것에 대하여'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 있던 인간의 얼굴과 새의 모습은 2024년 '투명한 기억'에서 유기적인 구조와 색채의 결합으로 달라진다. 2026년 작품에서는 다시 사람의 몸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만 머리는 여러 형태가 겹친 복잡한 구조로 변형된다. 인간과 자연을 결합한다는 관심은 이어지면서도 각 작품에서 인체가 차지하는 비중과 자연물을 구성하는 방식은 일정하지 않다.

세 작품의 차이는 전경선이 인체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투명한 것에 대하여'는 얼굴과 몸의 특징을 남긴 채 새와 나뭇가지를 연결하고, '투명한 기억'은 구체적인 인체보다 유기적인 형태의 중첩을 강조한다.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에서는 인체의 자세를 다시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머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변형했다.

전경선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투명함'이라는 개념도 조각의 물리적인 특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나무는 불투명한 재료이며 인체와 나뭇가지는 분명한 부피를 갖는다. 반면 조각 내부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반복되고, 서로 다른 존재의 형태가 만나면서 하나의 고정된 신체로 규정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된다.

전경선은 최근 '쉽게 부서지고 사라지는 세계'라는 제목의 작가노트에서 지나간 기억과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내면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작가가 말하는 투명함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눈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속되는 기억과 감정의 존재 방식에 가깝다.

목재의 빈 공간과 겹쳐진 형상만으로 특정한 기억이나 감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각의 형태는 관람자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자연물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할 여지를 남긴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작품에 나타난 구체적인 형상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앉은 인체의 자세를 고립이나 불안으로 해석할 수 있더라도 작품이 하나의 감정만을 표현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전경선의 최근 조각에서는 구체적인 인체와 비정형적인 유기적 구조가 한 작품 안에서 공존한다. 얼굴을 중심으로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인체 조각과 달리 머리의 형상을 변형하고 자연물과 연결하면서 신체의 경계를 확장한다. 사람의 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인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의 비례와 역할은 달라져 있다.

2010년 '투명한 것에 대하여'에서는 사람의 얼굴과 새, 나뭇가지가 비교적 독립적인 형상을 유지했다. 2024년 '투명한 기억'에서는 나무의 긴 구조와 밝은 색채의 유기적인 형태가 겹쳐졌고, 2026년 '버려지고, 사라지고, 투명해지는'에서는 인체의 머리 부분이 복잡하게 얽힌 나무 형상으로 확장됐다.

전경선은 사람의 신체를 완전히 해체하지 않으면서 자연의 형태를 결합하는 방식을 이어왔다. 2026년 목조 인물의 몸통과 다리는 여전히 인간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머리에서는 나무의 굵은 줄기와 가느다란 가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인체의 매끄러운 곡면과 복잡한 상부 구조, 목재 사이의 빈 공간이 결합하면서 인간의 형상을 하나의 고정된 신체가 아닌 여러 존재가 겹친 구조로 바꿔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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