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첫 개인전서 허먼밀러 의자와 인체 결합한 조각 공개…업무 공간의 효율성과 편안함 뒤에 놓인 신체 통제 구조 조명
[KtN 임민정기자]사무실에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의자가 사람의 몸을 붙잡고 있다. 의자의 등받이와 좌석에 기대어 있어야 할 신체는 가구와 뒤엉킨 채 비정상적인 자세로 고정됐다. 사무용 가구와 인체의 일부가 결합한 조각들은 사각형 천장 조명 아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됐다. 회색 바닥에는 붉은색 출입 통제선이 이어진다.
스웨덴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안나 우덴베르그(Anna Uddenberg)가 체코 올로모우츠(Olomouc)의 텔레그래프 갤러리(Telegraph Gallery)에서 개인전 'White Noise'를 선보인다. 10월 22일 개막해 2027년 2월 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로, 우덴베르그가 체코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다. 기획은 큐레이터 새뮤얼 스테이플스(Samuel Staples)가 맡았다.
우덴베르그는 인간의 몸과 소비문화, 기술, 가구의 관계를 조각과 설치미술로 다뤄 왔다. 'White Noise'에서는 현대적인 사무실을 전시 공간으로 옮겼다. 인체공학적 설계가 적용된 사무용 의자와 책상, 칸막이, 형광등, 환기시설을 이용해 업무 공간을 구성하고 사람의 신체를 연상시키는 조각을 배치했다.
일상에서 편안함과 업무 효율성을 위해 사용하는 가구들이 작품 속에서는 인체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구조물로 바뀐다. 사람이 가구를 사용하는 관계와 가구의 형태에 맞춰 사람의 자세가 정해지는 관계가 뒤섞인 것이다.
사무실로 바뀐 전시장, 가구에 맞춰진 인간의 몸
직사각형 천장 조명이 반복되는 전시 공간에는 회색 계열의 조각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일부는 바닥에 세운 지지대와 연결돼 있고, 일부는 사무용 의자의 구조와 결합한 형태다. 휘어진 관과 부드러운 재질을 연상시키는 덩어리가 금속성 구조물 사이에 들어가 있다.
인체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는 있지만 머리와 팔다리, 몸통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구부러진 신체의 일부가 가구 안으로 들어가거나 가구의 구조와 이어지면서 인물 조각과 사무용 가구의 경계가 사라진다.
우덴베르그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의자가 인체를 지탱하는지, 인체가 가구의 부속품으로 바뀐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사무용 의자는 등받이와 좌판, 팔걸이의 높이와 각도를 조절해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도록 설계된다. 사용자의 자세를 지탱하고 장시간 앉아 있는 동안 편안함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인체공학적 설계에는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의자는 사람의 체형과 움직임을 고려해 제작되지만, 동시에 특정한 앉은 자세와 사용 방식을 전제로 한다. 사용자는 좌판과 등받이, 팔걸이의 구조 안에서 자신의 자세를 조절한다.
'White Noise'의 조각은 이러한 관계를 극단적인 형태로 바꿨다. 앉는 사람의 편안함을 위해 제작된 의자가 사람의 몸을 감싸거나 붙잡는 구조물이 된다. 신체의 일부는 사무용 가구와 결합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관절과 몸통은 특정한 위치에 고정된 형태를 취한다.
허먼밀러(Herman Miller) 의자를 사용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허먼밀러는 인체공학적 사무용 가구로 알려진 브랜드다. 몸을 지탱하고 업무 환경을 개선하도록 제작된 가구가 인체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조각으로 등장하면서 제품 본래의 기능과 작품 속 역할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작품이 겨냥하는 대상은 특정 브랜드의 제품 자체라기보다 편안함과 생산성을 위해 설계된 업무 환경이다. 인체공학적 설계가 적용된 가구라도 사용자의 자세와 행동을 일정한 범위 안에 두는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우덴베르그는 몸과 가구의 결합을 통해 일상적인 설계 원리를 낯선 형태로 바꿨다.
형광등과 칸막이, 효율성을 위해 설계된 사무실의 구조
'White Noise'에서 사무실은 조각이 놓이는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천장과 조명, 칸막이, 가구의 배치까지 작품과 함께 작동하도록 구성됐다.
사각형 조명은 전시 공간에 균일한 빛을 제공한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천장 구조와 환기시설도 설치에 포함된다. 각 조각은 넓은 공간 안에 떨어져 배치돼 있으며, 붉은 안내선이 관객의 이동 범위를 구분한다.
일반적인 사무실에서 칸막이는 개인의 업무 공간을 구분하고 조명과 환기시설은 일정한 환경을 유지한다. 의자는 사람의 몸을 지탱하며 책상은 업무가 이뤄지는 위치를 정한다. 개별 설비들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한편으로 직원들이 머물고 이동하는 공간을 결정한다.
우덴베르그는 이러한 요소를 모아 사무실의 질서를 재현했다. 전시장에서는 실제 업무가 이뤄지지 않지만 업무 환경을 구성하는 설비와 가구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사이에 인체와 가구가 결합한 조각이 놓이면서 사무실의 기능적인 구조가 새롭게 드러난다.
전시 공간의 배치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정크스페이스(Junkspace)' 개념과도 연결된다. 콜하스는 현대 건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설비와 실내 구조, 기능 중심의 공간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천장 설비와 조명, 공조시설, 칸막이가 연속적으로 설치된 사무실은 건축의 개별적인 형태보다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사용자는 이미 설계된 환경 안에서 정해진 위치를 차지하고 이동 경로를 따른다.
'White Noise'에서는 사무실의 규칙적인 구조와 조각의 비정상적인 신체 형태가 대비된다. 천장과 바닥, 조명은 질서 있게 배치돼 있지만 신체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은 뒤틀리고 꺾여 있다. 업무 환경의 효율적인 구성과 그 안에 놓인 인체의 불편한 자세가 동시에 드러나는 방식이다.
공장이었던 건물에 들어선 사무실, 노동 환경의 변화와 맞닿다
전시가 열리는 텔레그래프 갤러리는 전화기와 전신기 관련 제품을 생산하던 옛 공장 건물을 개조한 문화시설이다.
올로모우츠 융만노바(Jungmannova) 거리에 있는 건물은 20세기 초 산업시설로 사용됐으며, 현재 남아 있는 주요 건축 구조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형성됐다. 이후 공업 관련 교육시설 등으로 활용됐고, 2010년대 후반부터 문화시설로 개조됐다.
기존 건물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유지하면서 전시실과 공동업무 공간, 카페, 영화 상영 및 행사 공간 등을 갖췄다. 건물 내부에는 산업시설로 사용됐던 흔적과 현대적인 문화시설의 설비가 함께 남아 있다.
우덴베르그가 사무실을 전시의 중심 소재로 선택한 것은 이러한 건축적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
과거 공장에서는 기계와 생산설비가 노동자의 동작과 작업 순서를 규정했다. 작업자는 기계가 설치된 위치와 생산공정에 맞춰 움직였다. 현대 사무실에서는 책상과 의자, 컴퓨터, 조명, 공간 구획 등이 노동자의 자세와 업무 방식을 구성한다.
육체노동과 사무노동은 업무 내용과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다르지만 노동자가 작업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건은 이어진다.
텔레그래프 갤러리의 산업 건축물 안에 현대적인 사무실이 들어서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노동 환경이 겹쳐진다. 공장에서는 생산설비가 중심이었다면 사무실에서는 책상과 의자, 정보기술 장비가 업무를 구성한다.
우덴베르그의 작품은 현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가구에 신체를 결합함으로써 사무노동의 물리적 조건을 조각으로 옮겼다. 편안한 의자와 일정한 조명 아래서 일하는 환경 역시 신체의 자세와 움직임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작품의 형태에 반영돼 있다.
기괴한 인체조각에 남아 있는 패션과 소비문화의 흔적
우덴베르그는 초기부터 인체와 사물의 관계를 다루면서 패션과 소비문화, 미용, 기술의 요소를 조각에 활용해 왔다.
온라인 이미지와 광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반복되는 신체 표현도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 강조되는 자세와 몸매, 특정한 신체 부위를 조각으로 옮기거나 소비재의 형태와 결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기존 작품에서는 몸을 지탱하는 장치와 인체를 강조하는 패션의 형태가 한데 섞였다. 유아용 운반 장치, 항공기 좌석, 자동차 내부 구조, 의료용 장비 등을 연상시키는 조형물도 등장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의 공통점은 신체의 특정한 움직임을 전제로 제작됐다는 데 있다. 유아용 장치는 몸을 안전하게 고정하고, 자동차 좌석은 탑승자의 자세를 유지하며, 의료 장비는 치료나 검사를 위해 신체를 일정한 위치에 두도록 설계된다.
우덴베르그는 이러한 물건들의 형태를 변형하고 조합하면서 보호와 편안함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가 신체를 구속하는 장치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다뤄 왔다.
2023년 뉴욕 메러디스 로젠 갤러리(Meredith Rosen Gallery)에서 열린 'Continental Breakfast'에서는 실제 사람이 올라타거나 몸을 고정할 수 있는 조각을 제작했다. 개막 당시 퍼포머들은 사무직 근무자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고 관객을 이동시킨 뒤 조각에 몸을 고정했다.
신체를 지탱하는 조형물이 공연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퍼포머는 관객의 위치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작품의 구조에 몸을 맡겼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명령에 따르는 사람의 관계가 한 인물 안에서 겹쳐졌다.
'White Noise'에서는 사무실과 가구가 중심에 놓였다. 이전 작업에서 사람의 몸을 직접 이용해 보여줬던 움직임과 구속의 관계가 인체를 닮은 조각과 사무용 가구의 결합으로 옮겨간 것이다.
신체의 자율성과 업무 효율성, 조각으로 드러난 긴장
'White Noise'의 조각은 인체공학적 가구가 실제로 건강을 해친다거나 현대 사무실의 모든 설비가 노동자를 통제한다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편안함과 효율성을 제공하는 물건이 사람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물건의 형태에 맞춰 신체가 어느 정도까지 움직임을 조절하는지를 살피게 한다.
사무용 의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인체를 비정상적으로 구부린 조각은 기능과 사용자의 관계를 바꿔 놓았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일한다는 익숙한 행위가 조각에서는 의자에 맞춰 신체가 변형된 상태로 나타난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가구와 설비는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도록 발전해 왔다. 높이 조절 기능과 허리 지지 구조, 사용자 체형을 고려한 설계는 실제 업무 환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덴베르그는 이러한 기능을 부정하는 대신 기능적인 물건이 신체의 자세를 규정한다는 측면을 과장된 조형으로 드러낸다.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도 작품의 형태에서 비롯된다. 사무실의 조명과 가구는 익숙하지만 그 사이에 놓인 인체조각의 자세는 익숙하지 않다. 앉거나 기대는 행위가 편안함과 연결되는 일상적인 경험과 달리 조각 속 신체는 가구에 끼이거나 구속된 형태를 취한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제작된 가구가 사람의 몸을 자신의 구조에 맞추는 장치로 바뀐 셈이다.
현대미술 전시에서 일상의 공간이 다뤄지는 방식
'White Noise'는 조각을 전시대에 올려놓거나 벽에 설치하는 방식보다 작품이 놓이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사무실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옮긴 뒤, 내부의 가구와 설비를 조각과 연결했다. 관객은 개별 작품뿐 아니라 작품 주변의 조명과 칸막이, 가구의 배치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최근 현대미술에서 공간 전체를 작품의 일부로 활용하는 방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건축 구조를 변형하거나 실제 생활공간을 재현하고, 관객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의미를 경험하도록 구성하는 전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공간을 활용한다는 공통점만으로 전시의 성격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직접 조작하는 작품도 있고, 특정한 공간에 들어가 관찰하는 것만으로 감상이 이뤄지는 전시도 있다.
'White Noise'는 실제 사무실을 재현한 환경 속에서 관객이 조각의 구조와 인체의 자세를 살피도록 구성됐다. 조각과 관객 사이에 놓인 붉은 안내선은 이동 범위를 구분하며, 사무실의 가구와 설비들은 작품이 놓이는 위치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한다.
개별 조각을 살펴볼 때는 인체의 형태와 가구의 구조가 중요하고, 전시실 전체에서는 조명과 칸막이, 가구 배치가 만들어 내는 사무실의 질서가 강조된다. 하나의 조각을 가까이에서 감상하는 방식과 공간 전체를 살피는 방식이 함께 작동한다.
안나 우덴베르그의 'White Noise'는 10월 22일 오후 6시 개막하며, 내년 2월 4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공간은 350㎡ 규모의 텔레그래프 갤러리다. 산업 생산시설이었던 건물 안에 현대적인 사무실을 재현하고, 사무용 의자와 인체를 결합한 조각을 배치했다.
사람의 신체에 맞춰 설계된 가구와 가구의 형태에 맞춰 고정된 인체가 함께 놓인 전시다. 편안함과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진 사무실의 구조가 인간의 몸을 어떤 자세와 움직임으로 받아들이는지, 우덴베르그는 일상적인 가구를 변형한 조각으로 구체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