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최기형기자] 5월 1일,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 접수 직후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으며, 회부 후 9일 만에 결론이 내려졌다. 단 한 차례의 공개 변론 없이 이뤄진 이례적 속도의 절차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정치에 반응하는 사법’이라는 구조적 의혹을 증폭시켰다.

공직선거법 사건의 신속 처리를 위한 ‘6·3·3 원칙’(1심 6개월, 2·3심 각 3개월)을 대법원은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최근 유사 사건에서 대법원 상고심 평균 처리 기간이 91.7일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이 사건은 2심 선고 후 36일 만에 결론이 나 평균보다 55일 빠른 초고속 결론이었다. 법원 내부에서도 “30년 동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속도”라는 실명 비판이 제기됐고,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내려진 유죄 취지의 판단은 대법원이 정치적 신호에 과민하게 반응한 것 아니냐는 구조적 의심을 불러왔다.

전원합의체, 독립된 법리 판단인가 정치 반응 메커니즘인가

전원합의체는 통상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고정 구조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두 차례 기일이 잡히며 9일 만에 결론에 도달했다. 공개 변론은 생략됐고, 대법원은 기존 2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해당 사건의 파기환송심이 징역형과 집행유예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된 결정은, 단순한 판결이 아닌 사법 리스크 조정이라는 정치적 기능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치 일정과 맞물려 진행된 이와 같은 절차는, 전원합의체가 독립적 법리 판단의 장이 아니라, 대법원장의 통치적 리더십 아래 일정 조율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전원합의체는 점차 특정 정치사안에만 가동되고 있으며, 법리 충돌보다는 정치적 파급력에 따라 ‘심리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이 법조계 내에서 이어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와 사법통치 기능의 부활

사법농단 이후 위축됐던 법원행정처는 조희대 체제에서 다시 핵심 기획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로 복귀하고 있다. 전원합의체 구성, 기일 조율, 내부 의견 수렴, 선고 일정 설정 등 이번 사건의 주요 절차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법원행정처가 실무를 넘어 판단의 방향성까지 정렬한 결과로 읽힌다. 사법 내 행정권력과 재판권의 분리라는 기본 원칙이 현장에서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 개편 요구는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침묵과 균열 사이

이번 사태에 대한 법원 내부의 공식 대응은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김예영)로 집약되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정치적 중립성과 법원 신뢰 훼손 문제’ 논의를 위한 임시회의 개최 여부를 두고 논란에 휘말렸다. 법관대표 125명 중 26명만이 찬성표를 던져 정족수를 겨우 충족했고, 반대표는 70표에 달했다. 회의 소집조차 쉽지 않았던 점은 사법부 자정 능력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회의 개최 이후에도 구체적 안건이나 책임 규명에 대한 내부 의견은 분산된 채 표면화되지 않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공식 채택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침묵에 가까운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 자정’을 위한 조직으로 도입되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는 침묵하거나 논의를 회피하는 내부 다수의 태도에 가로막히고 있다.

법원 구성원 스스로가 정치화된 사법 구조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지 못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내부 자정 없이 외부로부터의 개혁만을 기대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사법의 독립성을 훼손시킨다. 특히 사법권력의 핵심인 대법원장과 전원합의체 운영, 그리고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대표회의 구조는 삼권분립 체제 하에서 심각한 기능 마비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에 반응하는 사법, 구조적 위기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는 법원노조, 시민사회,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제기됐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은 특검법 발의와 청문회, 탄핵을 거론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사법구조 개혁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국회 어디에서도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사법개혁은 인물 책임 추궁을 넘어 제도 개편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공허한 정치 수사에 그칠 뿐이다. 법치국가의 핵심은 사법의 독립성과 절차의 정당성이다. 지금의 사법부는 정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 중심에서 제도적 무기력함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