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K-패션의 성장은 누구의 비용 위에서 이루어졌는가
창의성이 산업의 중심이 된 시대
[KtN 임우경기자]디자이너패션은 단순한 의류 제작이 아니라, 창의성과 정체성에 기반한 문화산업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한국 디자이너패션산업은 약 1조 3,571억 원 규모로 추정됐다. 2020년 팬데믹으로 한 차례 하락했던 시장은 2021년 이후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며, 글로벌 소비 회복 흐름에 다시 편승했다. 겉으로는 성장하는 산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제대로 보상받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면, 그 성장은 다르게 읽혀야 한다.
1인 창업의 현실, 창의성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75.9%는 개인사업자이며, 평균 종사자 수는 3.3명에 불과하다. 이 중 절반에 달하는 브랜드가 대표 1인만으로 운영된다. 창의성은 브랜드의 출발점이지만, 사업 지속 여부는 디자이너 한 명의 체력과 자본, 관계망에 좌우된다. 브랜드 수는 평균 1.1개로 제한되어 있으며, 평균 자본금은 4,829만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단순한 영세성의 문제가 아니다. 디자이너패션산업은 창의성과 디자인 정체성을 상품화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 서사를 전달하는 고유의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획자와 생산자, 유통관리자와 마케터의 역할을 한 사람이 떠안고 있다. 창의성이 직무 과중 속에서 소진되고 있는 셈이다.
실패조차 허용되지 않는 구조, 실험은 사치가 된다
창의성은 실험을 전제로 한다. 실패 가능성이 있어야만 독창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생태계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연평균 SKU는 98.2개에 이르지만, 평균 판매율은 60.8% 수준에 머문다. 재고의 85.7%는 할인 판매로 전환되며, 소각 비율도 존재한다.
결국 디자이너는 기획의 독창성보다 판매율에 최적화된 생산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브랜드의 정체성 약화, 미학적 표현력의 축소, 창작자의 실질적 소진으로 이어진다. 산업은 성장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창작자는 점차 사라진다.
창업은 많지만, 성장 구간은 없다
디자이너 브랜드 창업은 증가하고 있다. 5년 미만의 기업 비중이 44.7%에 이르며, 3년 미만도 22.5%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 중 몇이 5년을 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산업계의 공백으로 남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지원 경험이 있는 브랜드는 전체의 58.6%로 비교적 높은 편이나, 그 대부분은 창업 초기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 브랜드가 매출을 안정시키고, 브랜드 정체성을 외부와 소통하며,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중간 성장 구간’에 대한 전략적 지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화 리스크를 줄이는 데 집중된 현행 정책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장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창의성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의 언어, 권리로서의 창의성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산업 내에서 존중받으려면, 그것이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창의성이 ‘개인의 탁월함’ 혹은 ‘시장성 있는 감각’으로만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창의성이 구조적 보호 없이 지속되기 어렵다면, 그 산업은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기형적이다.
지원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브랜드가 아니다. 디자이너가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이는 단지 산업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산업으로서의 한국 패션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려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설정의 문제다.
생태계가 먼저다
2025년 5월, K-패션은 여전히 '한류'라는 이름 아래 해외 무대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에서 겨우 버티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브랜드 중심의 지원이 아니라, 디자이너 중심의 생태계 설계다. 창의성이 상품이 아닌 구조로 존재할 때, 비로소 산업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지금까지의 K-패션은 사람을 앞세워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이제는 구조를 앞세워 창의성을 지키는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창의성은 더 이상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산업적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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