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심층 르포] “웬치(園區)의 감금된 도시” —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구조와 인권 실태
“탈출하면 폭행”… 캄보디아 ‘웬치’ 단지의 노예형 사기 공장
웬치, 온라인 사기와 인신매매의 교차점… 국제 인권 위기 현장
폐쇄형 범죄단지 ‘웬치’, 감금·폭행·성착취가 일상인 사기 도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웬치에서 구조된 한국인의 증언
[KtN 김상기기자]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강가를 따라 늘어선 고층 리조트형 건물들은 겉보기엔 신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쪽엔 철문, CCTV, 무장 경비원, 그리고 탈출을 막는 전기 울타리가 있다. 이곳이 바로 ‘웬치(園區)’ — 동남아 전역을 잇는 국제 온라인 사기 거점이자, 인신매매·강제노동의 현장이다.
‘웬치’의 구조: 감금된 도시
‘웬치’는 중국계 범죄 조직이 주도해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국경 지역에 조성한 폐쇄형 범죄단지다. 표면상으론 “테크 산업단지”나 “투자 구역”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온라인 사기와 불법 도박, 마약 유통, 성매매까지 포괄하는 복합 범죄 허브다.
단지 내엔 호텔형 숙소, 식당, 헬스장, 병원, 심지어 교회와 카지노까지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모두 내부 인원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근무자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외부 출입은 경비대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부 단지는 주변이 해자나 벽으로 둘러싸여 ‘감옥형 구조’를 띤다.
한 현지 NGO 관계자는 “웬치는 사실상 ‘노예형 사기 공장’”이라며 “감금된 노동자들이 하루 16시간 이상, 전 세계 피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 사기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운영 방식: ‘사기 공장’의 알고리즘
웬치의 운영은 철저히 산업화된 구조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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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한 층은 50~100명 단위의 사기조직이 임대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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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스크립트를 배포하면, ‘콜러(caller)’와 ‘메신저’들이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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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감정, 투자 이익, 긴급 송금 등 다양한 패턴이 자동화된 시나리오로 구성된다.
가담자들은 매일 정해진 실적(송금액, 대화 유도 횟수 등)을 채우지 못하면 폭행을 당하거나 식사를 제한받는다. 일부는 전기충격과 채찍질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또한, 인신매매형 채용 시스템도 확인됐다. 중국, 한국,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월 500만 원 고수익 해외 IT일자리”라는 광고로 모집한 뒤, 현지 도착 즉시 여권을 압수하고 강제로 ‘사기 업무’에 투입한다.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면 감금실에 보내지고, 신체적 폭행을 당한다.
한국인 피해자와 가담자의 경계
최근 송환된 한국인 64명 중 일부는 스스로 피해자임을 호소했다.
처음엔 정당한 아르바이트로 알고 출국했지만, 현지에서 여권을 빼앗기고 “목표금액을 채워야 나갈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증언이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다수는 이후 자발적으로 사기에 가담하거나 다른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경계가 흐릿한 ‘이중 신분’ 구조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생존을 위해 범죄에 협조했을 수 있지만, 범죄 실행에 참여했다면 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며 “피해자 보호와 책임 추궁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지 인권 실태: ‘감금·폭행·성착취’의 복합 지옥
국제 인권단체들은 웬치를 “21세기형 노예단지”로 규정한다.
피해자들은 여권이 압수된 상태에서 하루 14~18시간 일하며, 식사는 제한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감금·폭행·고문을 당한다. 여성은 ‘고객 유인용 대화방’이나 성매매 강요에 투입되기도 한다.
캄보디아 인권센터(LICADHO)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만 웬치 관련 구금 피해자 1,200명 이상이 구조되었다. 하지만 구조 이후에도 상당수는 여전히 정신적 트라우마와 신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인 피해자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 전체가 이런 조직의 피해자”라며 “해외 취업 사기 경고와 인신매매 방지 협약을 확대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 공조와 한계
한국 경찰은 캄보디아 내무부, 인터폴,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등과 함께 국제공조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AI 기반 자금추적 시스템을 활용해 웬치 내 서버와 국내 계좌를 연결하는 금융 흐름을 분석하고, 범죄조직 간 연결망을 차단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현지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웬치는 여전히 살아남고 있다. 일부 단지는 현지 권력층이나 외국계 기업과 결탁해 보호를 받고, 단속이 예고되면 조직은 즉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현지 소식통은 “웬치는 단순한 사기 조직이 아니라, 거대한 경제 생태계”라며 “단속만으로는 근본적 해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망과 과제
전문가들은 웬치 단지의 해체를 위해선 단순한 범죄 단속이 아니라, 국제 인신매매 대응체계와 사이버금융 공조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동남아 각국과 협약을 확대하고, ‘해외 온라인 사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해 자국민의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계획이다.
한편 귀국한 피해자·가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과 심리적 치유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국제 인권 전문가는 “그들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제 조직범죄의 인질이었다”며 “법과 인권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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