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알바라더니 감금·폭행”… 캄보디아서 구조된 20대 청년들
김병주 의원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청년들, 먼저 구출해야”
‘웬치 단지’ 이어 프놈펜 호텔까지… 확산하는 동남아 온라인 사기 조직
“고급 호텔의 이면은 감금소”… 캄보디아 로맨스 스캠 실태 드러나
[KtN 김 규운기자]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 감금돼 ‘로맨스 스캠’에 동원됐던 20대 한국인 청년 3명이 현지 경찰 급습으로 구조됐다.
이들은 “촬영 장비 정비 일을 하면 월 5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입국했지만, 여권을 빼앗기고 하루 10시간씩 온라인 사기를 강요받았다.
현장 구조를 지원한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청년들, 먼저 구출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7일 밤 9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중심부의 한 고층 호텔. 현지 경찰이 긴급 출동해 잠긴 1313호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한국 청년 3명이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이들은 각각 20세, 23세, 26세로, 한국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다 ‘촬영 장비 정비 알바’를 제안받고 캄보디아에 입국했지만, 도착과 동시에 여권을 빼앗기고 로맨스 스캠(가짜 연애 사기) 조직에 감금돼 있었다.
이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재외국민안전대책단장 김병주 최고위원의 제보로 밝혀졌다. 김 의원은 “15일 출국 직전, 한 부모가 연락해 ‘아들이 캄보디아에서 감금돼 있다’는 구조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모(20) 씨의 구조를 시도하던 중, 함께 갇혀 있던 또 다른 두 명의 한국 청년도 발견돼 동시에 구출됐다.
이들이 감금된 곳은 프놈펜 시내 중심가의 한 호텔 겸 레지던스였다. 겉으로는 관광객을 위한 고급 숙소지만, 내부 일부 층은 온라인 사기 조직의 작업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정씨가 친구에게 몰래 보낸 사진이 단서가 되어 구조 위치가 특정됐다.
김 의원에 따르면 청년들은 매일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건물 14층 사무실에서 ‘로맨스 스캠’ 범죄에 동원됐다. 이들은 SNS나 메신저를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호감과 신뢰를 쌓는 초기 단계(‘접촉 파트’)를 맡았다. 이후 피해자가 ‘관계 형성 단계’에 들어가면, 다른 조로 이관되어 금전 요구까지 이어지는 구조였다.
피해 청년들은 “하루 10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피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대화 내용은 매뉴얼대로 정해져 있었고, 잠시라도 대화를 멈추면 감시자가 욕설을 퍼붓거나 몽둥이로 때렸다”고 증언했다. 옆사람과의 대화는 금지됐고, 휴식 시간조차 감시당했다. 일부는 감금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조직의 정확한 규모와 수뇌부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조직의 총책은 중국인으로 추정되며, 감금된 인원 중 한국인 외에도 베트남·필리핀 국적자가 있었다. 김 의원은 “이들은 피해자이자 범행에 이용된 가해자”라며 “구출된 청년들의 여권은 이미 폐기됐고,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긴박했던 구조 작전
김 의원은 현지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캄보디아 행정 절차상 ‘회의 후 단속 결정’까지 2~3주가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김 의원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의 지속적인 요청 끝에, 17일 밤 긴급 작전이 실시됐다. 그러나 최초 수색한 객실은 비어 있었고, 경찰은 호텔 다른 동까지 수색해 1313호에서 청년 3명을 발견했다. 일부 조직원은 도주했으며, 현장은 범행 흔적이 남은 상태였다.
구조된 청년들은 김 의원과 면담 후 현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후 이민국 추방 절차를 거쳐 귀국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청년들이 ‘이상하게 많은 돈을 주는 일은 사기’라며 다른 또래에게 경고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했다.
웬치 단지와 연결된 국제 조직
이번 사건은 최근 드러난 ‘웬치(園區)’ 범죄단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에 위치한 웬치는 중국계 조직이 운영하는 폐쇄형 범죄 구역으로, 여권을 압수한 채 사람들을 가둬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사기, 마약 거래 등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근무자는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며, 실적이 부족하면 폭행과 전기 고문을 당한다.
최근 한국 경찰은 웬치 단지에서 구금된 한국인 64명을 송환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취업 사기 피해자였고 일부는 범죄에 가담한 인물로 밝혀졌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웬치를 “21세기형 노예형 사기공장”으로 규정하며 국제사회에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 대응과 향후 과제
한국 정부와 경찰은 캄보디아 당국과 공조를 강화해 해외 범죄단지 내 한국인 피해자 구조 및 가담자 조사에 착수했다. 외교부는 재외공관 중심으로 해외 취업·투자 사기 경보 체계를 강화하고, 경찰청은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 예방 교육과 빅데이터 수사망을 확장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캄보디아 범죄단지는 단순 범죄조직이 아니라 글로벌 자금 세탁과 사이버사기 허브”라며 “피해자 보호와 함께 인권 중심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병주 의원은 “청년들이 위험한 해외 취업에 내몰리는 사회 구조를 돌아봐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일자리·청년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호텔에 갇혀 ‘사기 노동’에 내몰린 한국 청년들의 구조는, 해외 취업 사기와 국제 범죄의 교차 현실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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