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셀럽, 그리고 3억 유로의 제국… 한 인물이 완성한 디지털 럭셔리의 초상

2025년 봄/여름 시즌,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은 발망(Balmain)을 통해 패션과 예술, 그리고 인간성을 직조해냈다. / 사진= Balma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5년 봄/여름 시즌,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은 발망(Balmain)을 통해 패션과 예술, 그리고 인간성을 직조해냈다. / 사진= Balma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2011년, 프랑스 하이패션 하우스 발망은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스물네 살의 젊은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파리 패션계는 놀라움과 기대 속에 움직였다. 당시 발망은 명성에 비해 젊은 세대와의 연결이 약했고,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서도 뒤처져 있었다. 루스테잉의 발탁은 세대교체를 넘어 브랜드의 철학을 재정립하는 전환점이었다. 흑인 디자이너로서 발망의 모든 창의 부문을 이끈 최초의 인물이자, 파리 패션계 최연소 수장으로서 루스테잉은 구조적 변화를 상징했다.

발망은 루스테잉 체제 아래 완전히 새로워졌다. 전통적인 오뜨꾸뛰르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브랜드의 방향성을 확장했다. 강한 어깨선, 금장 단추, 정교한 자수, 밀리터리 감성이 어우러진 시그니처 스타일이 등장했다. 발망 특유의 화려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정체성으로 발전했다. 루스테잉이 제시한 ‘파워 글램’ 미학은 자신감과 주체성을 상징하는 새로운 언어가 됐다. 발망은 상류층의 상징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재정의됐다.

루스테잉은 패션 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가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자리 잡기 전부터 SNS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했다. 셀러브리티와 소비자가 동시에 참여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했다. 킴 카다시안, 비욘세, 리하나, 제니퍼 로페즈가 참여한 ‘발망 아미(Balmain Army)’는 패션 하우스 역사상 유례없는 브랜드 공동체였다. 런웨이는 더 이상 초대받은 소수의 공간이 아니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온라인으로 관람하고, 실시간으로 발망의 이미지를 공유했다. 루스테잉 체제의 발망은 패션을 폐쇄된 예술에서 열린 문화로 전환시켰다.

2015년에는 글로벌 SPA 브랜드 H&M과의 협업을 성사시켰다. Balmain x H&M 컬렉션은 출시 직후 전 세계 매장에서 완판됐다. 럭셔리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의 협업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고급스러움과 접근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럭셔리’ 전략은 럭셔리의 문법을 새롭게 썼다. 발망은 단 하루 만에 수천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고, 브랜드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이후 여러 하이패션 하우스가 이 방식을 차용하며 시장 구조 전체가 바뀌었다. 루스테잉은 럭셔리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24세 흑인 디자이너가 바꾼 파리, 올리비에 루스테잉과 발망의 시대. 사진=olivier_rousteingOlivier Rousteing 인스타 갈무리

성공의 그림자도 존재했다. 발망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지나치게 강렬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즌마다 유사한 실루엣이 반복되고, 장식적 요소가 과도하다는 비평이 나왔다. 화려한 비주얼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변화를 제한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셀러브리티 중심 마케팅에 대한 피로감도 커졌다. 일부 패션 비평가들은 상업적 접근이 장인정신을 약화시킨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루스테잉은 패션을 사회의 언어로 이해했다. 디자인의 화려함은 단순한 미적 실험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방식이었다.

루스테잉 체제의 발망은 실적에서도 두드러졌다. 2011년 매출 약 3,040만 유로에서 2024년 3억 유로를 넘어섰다. 14년 동안 10배 이상의 성장이다. 하이패션 브랜드가 장기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하는 사례는 드물다. 신흥시장 진출, 남성복 강화, 협업과 라이선스 전략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발망은 크리에이티브 브랜드에서 수익형 하우스로 진화했다. 루스테잉의 리더십은 창의성과 경영 감각이 결합된 새로운 모델로 기록됐다.

패션 산업의 변화 속도는 루스테잉의 재임 기간과 궤를 같이했다. 최근 10년간 럭셔리 하우스의 디자이너 교체 주기는 짧아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동시에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되는 존재가 됐다. 루스테잉의 14년 재임은 예외적인 장기 집권이었다. 현대 패션계에서 한 인물이 이토록 오랜 기간 브랜드를 주도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그러나 긴 재임이 안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변화와 세대 교체는 산업 생태계의 필수 조건이다. 발망의 소유주 메이훌라와 CEO 마테오 스가르보사는 루스테잉 체제의 성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조직 구조를 예고했다. 스타 디자이너 중심 모델에서 팀 기반 창의조직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봄/여름 시즌,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은 발망(Balmain)을 통해 패션과 예술, 그리고 인간성을 직조해냈다. / 사진= Balma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5년 봄/여름 시즌,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은 발망(Balmain)을 통해 패션과 예술, 그리고 인간성을 직조해냈다. / 사진= Balma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루스테잉은 퇴임 성명을 통해 발망을 인생의 중심이자 창조적 여정의 터전으로 표현했다. 14년 동안 쌓아올린 경험을 새로운 도약의 밑거름으로 남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패션은 사회와 세대의 대화”라는 루스테잉의 철학은 발망의 정체성으로 남았다. 디자이너의 이름이 아닌 브랜드의 언어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점은 장기적 유산으로 평가된다.

퇴임 소식이 전해진 이후 시장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예상되지만, 발망이 보유한 재무적 안정성과 디지털 역량은 새로운 도약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루스테잉의 혁신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적 헤리티지를 복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업계에서는 발망이 아시아 시장 확장과 지속 가능한 럭셔리 전략을 중심으로 다음 단계를 준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발망의 80주년 쇼는 루스테잉 시대의 대미를 장식했다. 루스테잉은 클래식과 현대, 전통과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드는 패션 언어를 완성했다. 하이패션의 문턱을 낮추고, 디지털 세대와 문화적으로 연결된 럭셔리를 만들어냈다. 발망은 루스테잉의 시대를 통해 “패션은 메시지이며, 사회의 거울”이라는 진리를 증명했다. 루스테잉이 남긴 14년은 단순한 재임 기록이 아니라 패션 산업이 변화한 시간의 기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