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가 만든 수면의 위기
[KtN 홍은희기자]밤은 길고 잠은 짧다. 많은 청년이 매일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누워 피곤한 눈을 비비며 시간을 흔들고 있다. 시곗바늘은 다음 날을 향해 흘러가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다. 잠을 잃은 사회에서 청년층의 수면 위협은 삶의 질을 송두리째 흔드는 문제로 떠올랐다. 공부와 업무, 관계와 경쟁 사이에서 긴장을 내려놓기 어려운 현실이 수면을 갉아먹는다. 누워 있어도 생각이 이어지고, 생각이 이어지면 잠은 도망간다.
수면 문제는 단순한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불안과 진로 스트레스, 취업 난관 속에서 하루가 끝나도 완전히 멈춰 서지 못하는 삶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잠을 잘 자야 다음 날을 버틸 수 있지만, 불안이 잠을 가로막는다. 밤마다 불확실한 미래와 씨름하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청년들은 홀로 남는다. 생각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큰 압박이다.
커리어 설계에 대한 높은 부담이 특히 깊은 야간 각성을 불러온다.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지금 방향이 맞는지, 뒤처지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과정은 끊임없이 정보를 탐색하게 만든다. 소셜 미디어에서 남의 성공을 볼 때마다 조급함이 높아지고, 조급함은 잠을 깨운다. 휴대전화 화면을 꺼내 비교와 평가를 반복하는 사이 수면 시간은 더 짧아진다.
학업과 업무 사이를 전력 질주하듯 살아가는 청년층은 낮 동안의 긴장을 밤까지 끌고 들어간다. 업무 메신저 알림은 집에서도 끊기지 않는다. 과제 마감과 프로젝트 일정이 머릿속에 머물고, 내일 준비해야 할 일을 상상하면 심장이 빨라진다. 침대는 휴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튿날을 대비하는 계획실로 변한 지 오래다. 기계가 꺼져야 충전되듯 사람도 멈춰야 회복되지만 현실은 좀처럼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관계 스트레스도 수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까운 친구와의 갈등이나 소외감, 연애 관계의 불안정성이 밤 시간대에 증폭되기 쉽다. 감정은 조용한 밤에 더 크게 울린다. 분명 사소한 문제였던 감정적 불편이 불면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흔들린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속으로 파고드는 생각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수면 의학 관점에서 볼 때 청년층의 생활 패턴도 문제를 키운다. 늦은 저녁 식사, 카페인 섭취, 스크린 사용 시간 증가 등의 요인이 생체 리듬을 망가뜨린다. 잦은 야식과 배달 음식 문화는 깊은 수면을 방해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억울하다. 불규칙한 생활을 탓할 수는 있지만 불규칙을 만든 사회 구조를 먼저 살펴야 한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공부와 일, 교통 소요 시간, 주거 환경 불안정 등은 모두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현실적 해결책 없이 개인 책임만 강조되는 구조는 문제 진단부터 잘못되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의 증가도 수면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진 탓이다. 침대에서 공부하고 침대에서 일하며 침대에서 휴식하는 생활은 공간과 역할의 혼선을 만든다. 몸은 쉬라고 알려 주고 싶은데 머리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어디까지인지 불명확해지고, 휴식이 죄책감으로 바뀌는 현상도 쉽게 발견된다. 이 죄책감이 밤에 더 깊어진다.
정신 건강과 수면의 밀접한 연관성도 이미 여러 연구로 확인되었다. 불안과 우울은 수면 질을 떨어뜨리고, 수면 장애는 다시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청년층에서 고민 상담과 심리적 지원을 찾는 비율이 높아진 사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신호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잠도 함께 흔들린다. 회복을 위해서는 둘을 함께 다루는 접근이 필요하다.
잠을 잃은 청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수면 보조 기구, 영양제, 명상 앱, 루틴 관리 도구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위생 개선을 위한 노력도 증가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잠을 지키는 행동이 확산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모임 횟수를 줄이고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관찰된다. 자율 회복 능력을 키우는 시도가 사회적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업무 일정에 여유가 없다면 충분한 수면은 불가능하다. 경쟁이 과열된 환경에서 심리적 긴장을 낮추는 데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안전망과 정신 건강 지원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청년들은 계속해서 잠을 빚지고 살아가게 된다. 잠의 빈곤은 결국 삶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수면 격차는 건강 격차이자 기회 격차다.
이제 수면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해결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수면은 몸의 회복을 넘어 기억과 감정, 에너지와 집중력을 결정하는 요소다. 제대로 자지 못하는 삶은 성장 동력이 약해지는 삶이다. 청년층이 잠을 잃는다는 사실은 사회가 미래를 잃는다는 경고로 읽어야 한다. 안정된 잠을 지키는 일은 곧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불안이 잠을 위협할 때, 잠을 지키는 태도는 용기다.
잠드는 일이 투쟁이 되어버린 청년 세대 앞에 새로운 건강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지친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기본 에너지의 원천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다. 휴식권을 보장하고 불안 요인을 줄이는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잠을 돌려주는 사회는 희망을 돌려주는 사회다. 건강한 잠을 통해 청년들이 다음 날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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