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통계보다 생활의 문제에 가깝다

[KtN 전성진기자]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숫자 가운데 가장 자주 호출되는 것은 출생아 수다. 해마다 발표되는 통계는 늘 비슷한 충격을 안긴다. 아이가 줄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감소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지자체는 지원금을 늘리고, 언론은 통계를 앞세워 위기감을 키운다. 일자리와 주거, 돌봄과 복지, 결혼 비용과 경력 단절 같은 이유가 줄줄이 뒤따른다. 모두 맞는 말이다. 다만 숫자와 제도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한국의 저출산은 돈이 모자라서만 생긴 현상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둘러싼 삶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졌고, 한 가정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 무거워졌으며, 부모가 된다는 일이 기쁨보다 부담의 언어로 먼저 다가오는 사회가 된 결과에 가깝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아이를 집안의 미래로 여겼다. 자식은 집안의 대를 잇는 존재였고, 부모를 모실 사람이었고, 집안의 명예를 이어 갈 사람이었다. 농경 사회에서는 노동력이었고, 유교 질서 안에서는 가문의 연속성이었다. 아들이라는 말에 권한과 기대가 집중됐고, 딸에게도 집안의 체면과 혼인이라는 부담이 따라붙었다. 아이는 한 개인이 아니라 집안 전체와 연결된 존재였다. 출산은 사적인 선택이기보다 가족 질서 안에서 거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결혼과 출산, 양육과 상속, 제사와 부양이 하나의 흐름 안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결혼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출산은 더더욱 그렇다. 가족의 규모는 줄었고, 개인의 선택은 넓어졌으며,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전통적 역할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대를 잇는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었고, 자녀가 노후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기대도 약해졌다. 제도와 관습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선택의 자유만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집안과 공동체가 나눠 가졌던 부담이 이제는 한 커플, 더 정확히는 한 여성과 한 가정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는 일은 전보다 더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전보다 훨씬 외로운 선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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