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바탕에는 오래된 질서와 빠른 학습, 높은 긴장이 함께 놓여 있다

[KtN 전성진기자]이제 한국을 설명하는 말 앞에는 자주 문화가 붙는다. 산업국가, 수출국가, 제조 강국이라는 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가 한국을 떠올릴 때 먼저 거론하는 장면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와 웹툰, 예능과 게임, 음식과 패션, 미술과 관광이 한꺼번에 엮이며 한국은 문화 강국이라는 말을 낯설지 않게 만든 나라가 됐다. 해외 대도시의 전광판과 스트리밍 플랫폼, 공연장과 서점, 백화점과 식당가에서 한국 문화는 더는 이국적인 유행 정도로 머물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반복적으로 참조되고, 다른 나라의 산업과 감수성에까지 영향을 주는 단계로 들어섰다.

한류 초창기만 해도 한국 콘텐츠의 힘을 설명하는 말은 비교적 단순했다. 제작 속도가 빠르고, 감정 표현이 진하고, 서사가 강하며, 배우와 아이돌의 경쟁력이 뚜렷하다는 식의 설명이 많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오래 버티고, 반복 소비되고, 다른 포맷으로 재가공되는 이유는 단순한 완성도나 속도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더 깊은 바탕을 봐야 한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품어 온 질서와 감각, 관계와 긴장, 경쟁과 학습, 상처와 회복의 문법이 콘텐츠 안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K-콘텐츠는 갑자기 솟은 산업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 온 생활의 결이 바깥으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성씨와 본관은 사라진 듯해도 사람의 배경과 계통을 읽는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부는 학교의 일이 아니라 신분과 기회를 가르는 질서로 오래 작동해 왔다. 유교는 제도로는 약해졌지만 예절과 위계, 품행과 절제의 문법으로 남아 있었다. 수난의 기억은 한국 사회의 자의식을 눌렀고, 오래된 자부심은 그 위에서 반작용처럼 커졌다. 저출산은 아이를 낳지 않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삶의 무게가 너무 커진 사회의 결과였다. 이 모든 축은 따로 흩어져 있지 않다. 한국 콘텐츠를 움직이는 긴장과 속도, 감정과 질서도 이 축들 위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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