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 드레스’와 ‘스켈레톤 드레스’, 초현실주의와 패션이 맞물린 1930년대 파리

The V&A Announces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the First UK Exhibition Devoted to the Historic Maison. 사진=V&A Announces "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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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우경기자]런던 V&A 박물관 ‘스키아파렐리: 패션, 예술이 되다’ 전시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구역은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협업을 다룬 자리다. 옷 위에 랍스터가 올라가고, 드레스 표면에는 갈비뼈와 척추가 솟아 있다. 찢긴 천을 연상시키는 프린트와 자수, 인체와 사물을 비튼 이미지가 한 공간에 놓였다. 1930년대 파리에서 미술과 패션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었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중심에는 살바도르 달리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작업이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화가와 디자이너의 단순한 협업으로 보기 어렵다. 스키아파렐리는 달리의 이미지와 상징을 옷 위로 옮겼고, 달리는 의복을 캔버스 바깥의 또 다른 표면으로 다뤘다. 그 결과 나온 작품들은 장식적 쿠튀르를 넘어 당시 초현실주의가 패션 안에서 어떤 형태를 취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옷은 1937년 ‘랍스터 드레스’다. 흰 실크 오간자 드레스 위에 붉은 랍스터가 크게 그려진 이 작품은 지금 봐도 낯설다. 이브닝드레스의 단정한 형식 위에 식탁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생물을 올려놓은 방식 자체가 그렇다. 달리가 그린 랍스터 이미지를 스키아파렐리가 의복으로 옮긴 이 드레스는 우아한 쿠튀르와 불편한 상징이 한 벌 안에서 충돌하는 장면을 만든다.

당시 이 작품이 크게 회자된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랍스터는 달리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였고, 성적 상징과 불안, 우스꽝스러움이 함께 얽힌 대상이었다. 스키아파렐리는 그 이미지를 여성용 정장 드레스의 표면으로 끌어왔다. 고급 의복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낯선 기호를 얹는 방식은 당시 상류사회 취향과도 긴장을 일으켰다. 윈저 공 부인이 되기 전의 월리스 심프슨이 이 드레스를 입고 촬영한 사진이 널리 알려진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The V&A Announces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the First UK Exhibition Devoted to the Historic Maison. 사진=V&A Announces "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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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전시장에서는 이 드레스가 달리의 ‘랍스터 전화기’와 가까운 맥락 속에 놓였다. 같은 모티프가 가구와 의복을 오가며 다른 물성을 얻는 장면이다. 사물의 본래 쓰임을 비트는 달리의 방식과, 옷의 표면에 다른 차원의 이미지를 밀어 넣는 스키아파렐리의 방식이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1938년 ‘스켈레톤 드레스’는 더 직접적이다. 검은 실크 저지 드레스 위에 패딩 기법으로 갈비뼈와 척추, 골반을 입체적으로 솟아오르게 만든 이 옷은 몸을 감추는 드레스의 관습을 뒤집는다. 피부를 덮는 의복 바깥으로 신체 내부 구조를 꺼내놓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다. 몸을 장식하는 옷이 아니라 몸 자체를 다시 그리는 옷에 가깝다.

이 드레스는 달리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해부학적 이미지와도 닿아 있다. 스키아파렐리는 죽음이나 공포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여성복의 실루엣 안에 뼈의 형상을 밀어 넣어 살아 있는 몸과 안쪽 구조를 한 표면에서 마주치게 한다. 우아한 저녁 드레스와 해골의 이미지가 한 벌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은 초현실주의가 즐겨 다루던 낯섦과 전복의 감각을 패션 언어로 옮긴 결과다.

같은 해 나온 ‘티어스 드레스’도 빼놓기 어렵다. 달리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천이 찢긴 듯한 프린트와 안감 효과를 활용해 표면이 갈라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멀리서 보면 프린트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찢긴 천이나 벌어진 피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게 정리된 이브닝드레스의 외형 안에 파손과 균열의 이미지를 심어 넣은 사례다. 스키아파렐리가 패션을 매끈한 완성품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도 이 작품에서 분명해진다.

The V&A Announces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the First UK Exhibition Devoted to the Historic Maison. 사진=V&A Announces "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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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아파렐리의 협업은 달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장 콕토와 함께 만든 자수 재킷과 드레스는 선의 감각을 옷으로 옮긴 경우에 가깝다. 얼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두 인물이 마주 보는 형상으로도 읽히는 콕토의 드로잉은 스키아파렐리 옷 위에서 하나의 이미지 장치가 된다. 한 번에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형상이 드러나는 방식은 스키아파렐리가 즐겨 다룬 착시와도 잘 맞는다.

전시장에 함께 놓인 드로잉과 소도구, 무대적 배경은 당시 파리 예술가 공동체의 분위기도 함께 전한다. 스키아파렐리에게 패션은 고립된 산업이 아니었다. 화가와 시인, 사진가, 무대미술가가 공유한 시대 감각이 옷으로 옮겨오는 과정에 가까웠다. 전시는 그 점을 작품 배열로 보여준다. 옷은 벽면의 회화와 떨어져 서 있지 않고, 같은 상상력의 연장선에서 읽히도록 놓였다.

이 시기의 스키아파렐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쇼킹 핑크’다. 전시장 곳곳에 등장하는 강한 분홍빛은 메종의 상징 색으로 자리 잡은 색채다. 향수 ‘쇼킹’ 관련 자료와 드레스, 그래픽 요소가 함께 놓이면서 스키아파렐리가 색을 단순한 장식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도 드러난다. 강한 색채 자체를 하나의 태도이자 기호로 다뤘던 것이다.

전시 후반부의 다니엘 로즈베리 작업과 나란히 놓고 보면 연결점도 보인다. 로즈베리는 엘사와 달리가 함께 만든 초현실주의적 형상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금속 장식, 과장된 비례, 해부학적 자수, 입체 오브제를 통해 오늘의 레드카펫 언어로 바꿔낸다. 몸의 구조를 드러내는 장식, 시선을 즉각 붙드는 표면, 우아함과 낯섦이 동시에 오는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1930년대 작업과 연속성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달리와의 협업 구역이 갖는 의미도 거기에 있다. 스키아파렐리는 초현실주의를 참고해 옷에 장식 몇 가지를 더한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달리와 콕토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당대 시각문화를 공유했고, 그 결과를 의복이라는 형식 안에 밀어 넣었다. 랍스터 드레스와 스켈레톤 드레스, 티어스 드레스는 스키아파렐리의 이름을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패션이 어디까지 미술과 맞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