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협상, 이스라엘 변수, 트럼프 관세가 겹친 중동…사우디·UAE 문화시장은 위기 속 성장축으로 이동

2025년 중동콘텐츠산업동향 사우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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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전성진기자]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온 유조선과 LNG선의 움직임이 다시 포착됐지만, 중동 정세가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과 이란은 협상 신호를 주고받고 있고, 이스라엘 변수는 여전히 협상장을 압박하고 있다. 전쟁과 협상 사이에 놓인 중동은 원유와 LNG, 해운과 보험, 환율과 통상 비용을 동시에 흔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같은 시기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문화산업 투자는 멈추지 않고 있다. K콘텐츠가 중동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한류 팬덤의 확산만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통상 리스크가 겹친 글로벌 재편 속에서 중동이 한국의 새 전략시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호르무즈 해협을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병목으로 분류한다. 최근 집계에서 호르무즈를 지나는 석유류 흐름은 하루 2,000만 배럴을 웃도는 수준으로, 세계 석유 소비와 해상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해협 통항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받는 충격은 원유 도입 가격에 머물지 않는다. LNG 조달비, 석유화학 원가, 항공·해운 운임, 해상보험료, 환율, 소비심리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유조선과 LNG선 일부가 중국, 파키스탄, 인도 방면으로 이동한 사실은 해상 물류가 부분적으로 풀리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통항량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걸프 해역에는 여전히 수많은 선박과 선원이 묶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은 협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닫힐 수 있다는 위험을 완전히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도 같은 불확실성 안에 있다. 양측은 일부 진전을 언급했지만, 이란 핵 활동, 우라늄 비축, 제재 완화, 항만 봉쇄, 해협 통항 조건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미사일 역량을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고, 미국 내부에서도 협상 방식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이어진다. 중동 리스크는 단기 군사 충돌 여부보다 협상 조건과 해상 통항, 제재 완화의 속도에 따라 한국 경제와 기업 전략을 흔드는 구조로 들어섰다.

중동 경제는 전쟁 비용과 산업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구조에 놓여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중동 전쟁이 에너지 생산과 수출, 항공, 물류, 금융시장에 파급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금융시장은 지역 경제를 넘어 아시아 수입국과 글로벌 기업의 투자 판단까지 바꾸는 통로다.

사우디와 UAE는 이런 불안정 속에서도 문화산업을 국가전략 안에 넣고 있다. 사우디는 엔터테인먼트, 관광, 스포츠, 콘텐츠 산업을 탈석유 전략의 한 축으로 키우고 있고, UAE는 미디어와 관광, 플랫폼 유통을 결합한 허브 전략을 강화해왔다. 중동을 에너지 위험지역으로만 보면 현재의 절반만 보게 된다. 같은 지역에서 원유 수송로는 흔들리고 있지만, 콘텐츠·공연·관광·브랜드 시장은 새 투자처로 열리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UAE비즈니스센터의 중동 한류 분석은 한류가 이미 팬덤 단계를 지나 산업화·제도화 단계로 이동했다고 정리한다. 초기 한국 드라마 수용, 디지털 팬덤 확산, OTT와 공연·브랜드 제휴의 결합이 이어지면서 중동 한류는 온라인 취향에서 플랫폼 계약과 현지화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자료는 중동 한류를 드라마, 음악, 예능,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까지 장르별로 나누고, 플랫폼 변화와 로컬라이징 구조를 핵심 축으로 제시한다.

중동에서 K콘텐츠가 강점을 갖는 배경은 문화적 수용성이다. 가족 중심 서사, 연장자 존중, 비교적 낮은 성적 노출, 감정 중심의 드라마 구조는 이슬람권 시청자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중 콘텐츠로 받아들여졌다. K팝도 음악 소비를 넘어 패션, 뷰티, 음식, 언어 학습으로 확장됐다. 다만 중동 시장의 우호적 수용이 무조건적 개방을 뜻하지는 않는다. 종교적 가치, 국가정체성, 도덕성, 성 표현, 젠더 표현은 여전히 심의와 편집, 비공개 조치의 변수다.

OTT는 중동 K콘텐츠 시장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샤히드, 넷플릭스, Viu, OSN+ 같은 플랫폼은 한국 드라마를 별도 카테고리와 현지어 서비스로 묶고 있다. 아랍어 자막과 더빙, 공개 시점, 독점 계약, 편집 기준은 흥행을 좌우하는 조건이 됐다. 샤히드는 CJ ENM과의 계약을 통해 프리미엄 K드라마를 MENA 지역에 공급했고, Viu는 한국 드라마를 영어·아랍어 자막과 더빙으로 제공하며 사우디와 UAE 시청층을 넓히고 있다.

K콘텐츠 소비는 이미 지불시장으로 바뀌었다. 한국 콘텐츠 소비자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UAE와 사우디가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중동 한류를 단순 호감도나 팬덤 규모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사우디와 UAE의 시청자는 콘텐츠 구독, 공연, 굿즈, 뷰티, 식품, 관광으로 이어지는 소비 전환율이 높은 시장이다. 한국 기업이 중동을 장기 성장축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웹툰과 게임은 드라마·K팝 다음의 IP 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우디의 망가 아라비아는 한국 웹툰을 아랍어로 정식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모바일 중심의 MENA 게임시장은 한국 게임사에 별도의 성장 기회를 열고 있다. 중동의 젊은 인구 구조, 높은 모바일 사용률, 아랍어권 확장성은 한국식 IP 비즈니스와 맞물린다. 드라마가 팬덤을 만들고, K팝이 참여 문화를 키웠다면, 웹툰과 게임은 장기 라이선스와 2차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품목이다.

트럼프 관세 리스크는 한국 기업의 중동 전략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백악관은 미국의 국제수지 문제를 이유로 10% 임시 수입관세를 발표했고, USTR은 대통령 관세 조치를 별도 항목으로 공개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법원이 일부 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었지만, 항소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일시 정지하면서 관세 불확실성은 계속 남아 있다.

관세는 제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K팝 공연 장비, 앨범 패키지, 굿즈, 촬영 장비, 뷰티·패션 협업 상품, 식음료 연계 제품은 모두 물류비와 관세,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 시장의 비용이 올라가면 기업은 수익률이 높은 대체 시장을 찾게 되고, 중동은 유력 후보가 된다. 반대로 호르무즈 리스크가 커지면 중동 행사와 물류 비용도 함께 오른다. 한국 콘텐츠 기업은 미국 관세와 중동 해상 리스크를 별개의 변수로 나눠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글로벌사우스 전략에서도 중동의 위치는 달라졌다. 사우디와 UAE는 고소득 소비시장이고,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는 아랍어권 인구시장이다. 걸프 자본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유럽을 잇고, 중동 플랫폼은 아랍어 콘텐츠 유통의 관문이 된다. 한국 콘텐츠가 중동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사우디와 UAE에 드라마를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랍어 자막과 더빙, 플랫폼 계약, 공동제작, 브랜드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사우스 문화 유통망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와 LNG의 길이고, 샤히드와 Viu는 한국 드라마의 길이다. 트럼프 관세는 미국 시장의 비용을 바꾸고, 사우디·UAE의 문화투자는 한국 콘텐츠의 대체 성장축을 넓힌다. 중동을 위험지역으로만 보면 K콘텐츠의 성장 기회를 놓치고, 신시장으로만 보면 에너지·통상·안보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한국의 중동 전략은 이제 콘텐츠 수출, 에너지 안보, 통상 대응, 글로벌사우스 확장을 함께 묶는 방식으로 재설계될 수밖에 없다.